테스트 매니아
울트라매니아 12
사내, 승진하여 우 부장이 된 사내는 새로운 사무실에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출근하는 장소가 바뀌었다.
대표의 지시에 의하여 모종의 신규 극비 마케팅 프로젝트에 투입된 사내는,
집에 승진 사실을 알리자마자 3개월간 해외 출장을 가야 한다고 시킨 대로 말했다.
회사에서 시킨 그대로.
오지라서 연락도 거의 안 될 거라고 아내에게 얘기 해 두었다.
게임회사가 왜 인터넷조차 안 되는 오지를 간다는 건지 의아해하던 아내는,
그건 섭섭하지만 그 나이에 갑자기 진급도 하고 급여도 세 배로 올랐으니 너무 다행한 거 아니냐며 전혀 섭섭하지 않은 얼굴로 생색을 냈다.
오히려 아내도 아이들도 매우 반기는 분위기라고 우 부장은 느껴버렸다.
그동안 너무 좀팽이처럼 집과 회사만 오갔으니 기왕 나간 김에 일 잘하고 오라는.
어찌 보면 몇 년 만에 첨으로 주어지는 방학을 즐기는 듯 보여서 씁쓸했다.
남편이 대체 무슨 봉변을 당하러 가는 건지는 관심도 없는 상태로.
막연하긴 했지만 대표가 말했던 것들이 별로 호락호락해 보이진 않을 일들 일 터인데.
그렇다고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할 정도로 우 부장이 속이 없진 않았다.
어쨌거나.
만년 과장으로 언제든 내쳐질 수 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는 마누라는 남편의 느닷없는 승진을 실로 감격스러워했다.
남편이 늦은 시간에 어디선가 싸구려 새양복과 새 구두를 신고 들어왔었는 것도 눈치 못 챌 정도였지만.
남편의 느닷없는 승진과 올라간 급여로 인해서 아내는 희희낙락하며 주변 이웃들에게까지 요란스러운 자랑을 해댔다.
오죽했으면 처음 아파트 이사 왔을 때도 안 돌렸던 떡을 주문해서 아파트에 돌렸을까.
그런 아내의 마음을 익히 짐작한 우 부장은 한편 미안했고 한편 씁쓸했다.
저 여편네가 남편이 사실은 사옥에서 떨어졌었다는 걸 짐작이나 할까.
그들이 어처구니없는 과정 때문에 집안의 유일한 수입원인 가장을 잃을 뻔했다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
며칠간 갑자기 밥상에 그간 구경도 못하던 굴비에 고기반찬이 오르는 걸 보면서 우 부장은 역시나 사람이 출세? 하고 볼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평소 답지 않게 아이들의 탐욕스러운 젓가락질을 아내가 제지하며 자기 앞으로 고기 접시를 밀어주는 것도.
그렇게 사내는 파주 일대의 영화 촬영장 세트장 근처 어딘가로 출근을 했다.
참으로 황송하게도 차창에 온통 검은색 필름을 두른 밴이 아파트까지 찾아왔다.
서민 아파트에서 구경하기 힘든 수입밴을 본 사람들이 연예인이 온 거냐며 수군거리는 가운데,
검정 양복을 입은 보안팀 직원들이 차 문을 열어주고 거기 오르게 된 우 부장은 민망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몇몇 얼굴이 낯익은 아파트 주민들은 자가용도 없이 살던 우 부장이,
트렁크를 보안팀 직원에게 넘기며 커다란 밴에 오르는 걸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차는 한참을 달렸다.
겉으로 보기보다도 차 내부는 굉장히 호화로웠다.
다만 겉에서 보았을 때 선팅으로 생각했던 창문은 실제로 검은색 시트로 발려져서 밖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뒷좌석과 운전석 사이도 마찬가지로 불투명한 금속판으로 막혀 있어서 외부를 전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대신에 커다라 모니터가 칸막이에 붙어 있어서 어둡거나 갑갑하진 않았다.
그곳이 파주라는 것도 보안팀 직원이 말해줘서 그런가 보다 생각을 할 뿐.
지하로 들어간 밴에서 내려보니 그곳은 어쩐지 모텔의 지하주차장 같은 느낌이었고,
밴이 들어왔음직한 주차장 출입구는 셔터로 굳게 닫혀있었다.
건물의 구조나 형태가 영락없이 모텔 같은데,
모든 것이 새로 꾸며진 듯 공사가 막 끝난 아파트 냄새가 났다.
보안직원이 데려간 방은 생각보다 꽤 넓은 것이 아마도 모텔의 방 몇 개를 틔워서 새로 꾸민 것으로 보였다.
티브이. 오디오는 있는데 외부와 연결될 법한 컴퓨터나 전화기는 없었다.
다만 아무런 다이얼도 없는 호텔식 인터폰만 있었다.
보안직원의 설명으로는 그 인터폰을 들면 언제든지 편의를 봐주는 직원이 받을 거니 걱정 말라하며,
참고로 이 건물 주변은 휴대전화가 안되게 차단되어 있으니
외부 연락이 꼭 필요하면 팀장에게 말해서 처리하라는 거다.
그런데 방 크기에 비해서 욕실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컸다.
크긴 한데, 그게 미적으로는 절대 점수를 줄 수 없을 정도로 마감이 되어 있다는 건 좀 실망스러웠다.
욕실은 그냥 검은색 타일로 온통 도배가 되어 있다시피 한데,
일반적인 수도꼭지 외에 마치 실험실에서나 쓸법한 강한 살수용 노즐 같은 게 잔뜩 붙어있었다.
그 외에도 보통의 세정제나 샴푸 같은 것 외에 큰 통에 해골 표시,
빨간색의 X표가 그려진 화학약품 기호들이 있는 것들이 잔뜩 있었다.
생각과는 많이 다른 숙소의 모습에 우 부장이 살짝 질려 창문을 열어보니,
역시나 창문은 굳게 닫혀있는 데다 아예 외부가 보이지도 않는 창문이었다.
누군가 가 방에 들어왔다.
그 얼굴을 본 우 부장은 미간이 일그러지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재수 없게도 영업팀장이 비밀 발령을 받아 해당 프로젝트 팀장이 되었다.
사내로서는 마뜩지 않았지만,
그건 나름 비밀이 퍼져 나가는 걸 막자는 대표의 안배였을 것이니 뭐라 할 게 못되었다.
프로젝트 이름은 Z 였다. Z 프로젝트.
영업팀장이 처음 그 프로젝트명을 듣고 대표에게 물었다.
“ 근데 대표님. 왜 Z 프로젝트인가요?
혹시 마지막 생존자를 그렸던 공상소설 오메가 맨을 살짝 영문 알파벳으로 바꿔 Z가 된 거 아닙니까?”
만면에 비굴한 미소를 띠며 팀장이 대표에게 굳이 안 해도 될 질문을 하게 된 것은,
어쨌든 대표가 엄청나게 기대를 하는 프로젝트의 팀장이 된 이상.
스스로의 영특함을 과시하고픈 마음에서였는데 결과적으론 또 욕을 먹는 계기가 되었다.
“ 야 인마. 오메가 맨? 그건 또 뭐야? 무슨 스쿠알렌 광고하냐? Z 맞잖아.
우둔호 저 새끼. 좀비 같잖아?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는. 좀비의 이니셜이잖아. 멍청아.
상상력이 부족하다니까……. 이과 놈이 말이야.”
‘ 아, 씨바. 영화 나는 전설이다 원작 몰라? 무식한 새끼.
게다가 좀비는 안 죽는 놈이 아니라 죽었는데 움직이는 시체인 거라고.
이과 아니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도무지 제멋대로 생각하는 건 변함이 없네. 젠장.’
속으로 욕을 퍼붓는 팀장이었다.
Z프로젝트의 기본적인 틀은 간단했다.
어떤 복잡한 일도 아주 간결하게 단순화시키는 게 대표가 살아남은 방법이었고 수단이었으니까.
사내, 우부장은 세트장 내부에 급조된 각종 시설에서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관련 인원을 최소화 가기 위해서 나름 선별된 TF팀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작업들을 묵묵히 해냈다.
그들 모두가 대표에게 개인적으로 많은 채무를 지고 있는 사람들이라,
달리 마음먹을 여지가 없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심부름센터 같은 탈법적 일에 익숙한 이들이라 입도 무거웠다.
한 달에 걸쳐서 우 부장은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살인 방법에 대한 모르모트가 되었다.
살인이라기에도 그렇고, 재난에 가까운 상황들이 늘 연출되고 우 부장은 거기서 살아남는 것이다.
어지간히 거친 일에 익숙한 TF팀 인원들 조차 얼굴이 희게 질릴 정도의 재난 상황들.
그 기괴하고도 거대한 계획들을 처음 대표로부터 들었을 때,
고 팀장은 치미는 욕지기를 억지로 참아내야 했었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영업팀장이라는 위치가 언제든 갈아치우기 좋은 자리임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라도 대표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아이디어라도 힘을 보태야만 했다.
자신에 대한 신뢰가 뛰어나서 뜬금없이 영업팀장이던 자신을 이런 기괴한 프로젝트의 팀장으로,
그것도 임원 연봉에 새 차까지 주어가며 대표가 임명했을 거라 생각할 정도로 고 팀장이 순진하지는 않다.
당연히 비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는 대표 특유의 보안 강박 때문일 거고,
서로가 서로의 목에 밧줄을 걸어서 절대 배반할 수 없는 올가미를 씌운다는 대표의 생존 방식임을 안다.
그러나 고 팀장이 아무리 그다지 좋지 않은 성격과 인격의 보유자라고는 해도,
사람을 대상으로 이런 막무가내식 실험을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처음 실험을 시작한 후 며칠간 고 팁장은 그 답지 않게 식욕도 잃었고 늘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보통의 직장인에게는 너무 가혹한 실험이라서 그걸 지시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매일 마치 살인 지령이라도 내리는 악당 같은 심정이 들었었던 거다.
대표의 변에 따르면.
사내를 앞세워 회사 홍보 차원의 어마어마한 퍼포먼스를 하다가,
만약 사내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그건 회사 홍보가 아니라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이란 거였다.
때문에 일정한 극한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자동차 회사에서 신개발 차량에 극한 테스트를 하듯이.
아니, 오히려 자동차보다 더 극심한 끝판 테스트를 해보고,
그러다 죽으면 할 수 없는 거고,
거기서 살아난다면 그건 딱 대표가 생각하는 회사 홍보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Z프로젝트의 극한 테스트는 원래의 계획이었던 한 달을 넘어 6주에 걸쳐 진행되었다.
사내는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