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매니아 14

길들이기

by 능선오름

울트라매니아 14


나는 노여움에 찬 눈으로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응시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겠다.

물속은 물이라기엔 너무 탁하고 검어서, 거의 보이질 않았다.

보통의 수영장에서 물속에 잠수하여 앞을 바라보더라도 어느 정도는 물결도 보이고 일렁임이 보이지 않나.

그러나 이곳은 많이 달랐다.

이따금 어두운 수면에 희미하게 언뜻언뜻 빛처럼 보이는 실금 같은 게 일렁이면,

그게 낮 일 거라고 짐작할 뿐.


이상하게 변해버린 신체 덕에 아무 고통도 아무 통증도 없고 물속임에도 숨을 쉬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얼굴 표면을 빼곤 몽땅 콘크리트 블록에 굳혀진 상태라서 팔다리 무엇도 움직일 수 없었다.

팀장 놈이 마지막 테스트라며 관처럼 보이는 박스 속에 나를 넣고 콘크리트를 부을 때만 해도 그냥 그랬다.

어차피 별의별 것을 동원해서 내 몸에 생채기를 내고 싶어 안달한 건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놈들이 굳어진 나를 트럭에 싣고 가서 하수 종말 처리장 속에 빠뜨릴 때만 해도 곧 꺼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어쨌거나 수조에 빠져본 적도 있었고 그 보다 더한 괴롭힘을 당한 것이 그동안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었으니까.

그런데, 시커먼 물속에 잠긴 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나는 알 수 없었다.

그게 끝이었다.


나는 며칠이 지나지도 모를 어둠 속에서 정신을 잃지도 죽지도 못한 상태로,

걸쭉한 오수가 흐르는 침전조 속에서 한없는 심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이 상태로 놈들이 나를 버리고 간 것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정말 끔찍한 예상이었다.

그들이 나를 이렇게 영원히 방치한다면 나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닐 터였다.

이따금 잠을 잤다.

어찌 된 것인지 몸뚱이가 이상하게 변화된 이후로는 잠도 그리 오지 않았었다.

놈들이 나를 실험한 내용에는 잠을 안재우는 것도 있었다.

과거 나치들이나 일제 치하에서 거나 군사정권 시절의 공안경찰들이 사람을 안재우는 고문을 했단 말은 읽어봤었다.

하지만 일주야를 잠을 안 재우고 계속 시끄러운 소음과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조명을 켜놓고 해서,

나도 한번 버텨보자 하고 잠을 자지 않았는데 그것은 내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었다.

그저 습관적으로 잠을 자던 시간에 눕지 않고 계속 멍청한 티브이 영상이나 바라보는 게 지겨울 뿐.


그러나.

이 오수 속을 바라보는 것이 영원한 인생이라면 그건 지옥이었으나,

콘크리트를 부술 힘이 없는 나로선 방법이 없었다.

하긴, 맞아도 죽지 않고 아프지 않을 뿐 나를 테스트하던 사내 하나를 제압할 힘이 없던 나였으니까.

이따금 잠들고 눈을 뜨면 여전히 어둠이었다.

육신은 분명 멀쩡했지만 내 정신은 점점 현실인지 꿈 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처음 가졌던 분노는 없어졌다.

분노가 떠난 자리를 메운 것은 체념과 두려움이었다.

이대로 이 오수 속에서 살지도 죽지도 않은 상태로 일생을 지내야 하는 건지.

그렇게 생지옥을 경험할 만큼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 인지.

내가 살 인생이란 것 이 이런 끝을 예약하고 있었던 건지.

차라리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렸을 때 죽었다면 이런 고통을 겪진 않을 텐데.

육신은 멀쩡했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늘 오수에 잠겨 어둠 속을 응시하고 있자니 점점 나는 나약해져 갔다.

어쩌면 이대로 미쳐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육체적인 고통에서는 해방이 된 나였지만, 이렇게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어둠만을 바라본다는 것이 육체의 고통 못지않은 생지옥임을 새삼 깨달았다.

너무 견디기 힘겨운 고립감에 혀를 깨물어 보았으나 안타깝게도 아무런 생채기 하나 남지 않는.

이 빌어먹을 강인한 육체의 방어막은 자살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눈을 뜨거나 감거나 뜨거나 상관없이 내 시야는 늘 막혀있었다.

그 더러운 오수를 콧구멍 속으로 호흡하고 내뱉는 걸 느끼면서도 호흡 곤란으로 죽지도 않았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육신이 절반쯤 콘크리트 덩어리에 파묻혀서 아무 동작도 하지 못하면서,

때때로 어디선가 어두운 물속 어딘가에서 새로운 오수가 들어오는 소리와 빠져나가는 소리들을 들으면서 그 외에는 절대 정적 속에 어둠을 한없이 응시하는 것.

생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 일 거다.

이따금 그 어둠 속에서도 뭔가 벌레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얼굴에 와닿는다.

벌레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나였지만 얼굴 외에 움직일 육체가 갇혀 있었으니 도리가 없다.

견디다 못할 지경이 되면 보이지도 않는 그 스멀스멀한 무언가를 입으로 빨아들여 으적으적 씹어버리는 게 내가 그 벌레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다.

나는 마치,

더러운 물속에 잠긴 인간 파리지옥이 된 것 같은 느낌.


잠이 들다 깨다 한 것 같았는데 갑자기 내 몸이,

정확히는 내 몸과 일체가 되어 있던 콘크리크 덩어리가 오수 위로 당겨져 올라가는 걸 느꼈다.

나는 흥분하여 눈을 부릅떴다.

이윽고 물의 느낌이 없어졌으나, 여전히 어두웠다.

그러나 물속에서 볼 수 없던 눈부시게 밝은 조명이 시커먼 수면에 일렁이고 있었다.

밤이었고 대형 크레인이 내 콘크리트 관을 통째로 수면 밖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내 몸이 담긴 콘크리트는 하수처리장 잔디밭에 놓였고,

대기하고 있던 포클레인이 사정없이 나를 감싼 콘크리트를 분쇄하기 시작했다.

눕혀진 콘크리트 관 안에서 무력하게 누워있던 내 귀와 콧구멍에서 오수들이 흘러나오는 감각이 생생하다.


갑자기 눈물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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