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매니아 15

기사회생

by 능선오름

울트라매니아 15


사내를 둘러싼 콘크리트 조각들이 시끄러운 포클레인 소리가 멈추자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내는 몸을 꼼지락거리며 움직여 보았다.

오랜 기간 오수에 담겨 있던 사내는 의외로 멀쩡해 보였다.

눈물을 흘리는 것 빼곤. 눈물인지 몸에 스며든 오수인지는 모르지만.

사내는 어둠과 지나치게 밝은 투광기 조명이 범벅된 오수처리장 옆 차디찬 바닥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얼마가 된지는 모르지만 콘크리트에 온몸이 결박되어있던 상태에서 올라온 것 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부드러운 동작으로 몸을 일으킨 사내는 피부에 남은 콘크리트 잔여물들을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투광기가 만든 창백한 불빛 아래 그 광경을 바라보는 몇몇의 사람들이 고개를 흔드는 게 보였다.

때로 그들 중 누군가는 탄식인지 탄성인지 모를 소리를 저도 모르게 내뱉고.

사내는 물끄러미 그 어둠 속 그림자들을 응시했다.

오물로 가득한 물속에서 물을 흡입하던 콧구멍에 다른 냄새가 섞인 비교적 맑은 공기가 흘러든다.

그럼에도 사내는 그 공기에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 자신이 진짜 괴물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알몸뚱이로 어둠 속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몸에 묻은 콘크리트 잔해를 털어내는 꼴을 바라보는 사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드는 생각이었다.

어둠 속.

팀장이 입을 열었다.


" 야, 저 새낀 저렇게 있었어도 미치지도 않는구나. 포기했다. 포기했어. "


새로운 숙소는 외딴 고급주택이었다. 넓고 지나치게 보안시설이 되어 있는.

그곳 거실에는 대표와 관리이사가 널찍한 소파에 앉아 있었다. 팀장 놈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사내를 떠들썩하게 맞이하며, 고생 많았다, 문제가 있었다, 하며 일단 샤워부터 하고 나오라 했다.

사내는 뜨거운 물에 몸을 씻으며 그들이 주절거린 말들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들은 사내가 감금처럼 잠겨 있었다는 걸 몰랐다고 했다.

실험팀이 좀 오버를 했다는 말이다.

그동안 팀장은 외부 출장 중이어서 몰랐다고만 했다.

그게 진실 일까. 그럴 리가 있을까.

그러면 어떻게 자신이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사내를 앉혀 놓고 따뜻한 수프를 권유하며,

그들은 사내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정작 오랜 기간 굶주렸어도 사내는 살이 빠지지도, 혈색이 나빠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눈가가 젖고 시선이 멍청해진 것 외 에는.

그리고 일반적인 세정제도 아닌 강한 약품으로 온몸을 씻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사내에게서는 약품 냄새에 섞여서 여전히 오수처리장의 형용하기 어려운 역겨운 냄새가 났다.

대표와 그 외의 인물들은 역겹다는 표정을 숨기지도 않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사내의 생각에 신기한 동물을 쳐다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이 천천히 늘어놓은 이야기는 이랬다.

팀장과 실험자들이 대표에게 보고하지 않은 상태로 사전에 계획되어 있지 않은 생존 테스트를 했다.

그것이 바로 오폐수 처리장이었다.

본인들 말로는 하룻밤만 테스트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크게 교통사고가 나서,

팀장을 제외한 당시 작업인원 모두가 사망하고 팀장은 삼주가 넘도록 혼수상태였다 고 한다.

그동안 백방으로 사내 – 우부장 – 의 행방을 찾다가 못 찾았는데,

하루 전에 팀장이 의식을 회복하여 사내가 잠긴 오폐수 처리장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

의도 한건 아니지만 정말 미안하다는 것.

빨리 회복되기를 원하지만 그리 크게 상한 것은 없어 보이므로,

의도치 않은 사고였다는 점을 감안해서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

그게 대표가 한 시간 반이 넘게 주절거린 내용의 요지였다.

사내는 묵묵히 죽은 사람의 시선처럼 초점 없는 눈동자로 대표의 말을 듣고 있었다.

대표는 아무 대답이 없는 사내의 반응에 머쓱했던 듯, 며칠간 몸조리를 하고 보자,

라고 말을 마치곤 사라졌다.


거실에는 사내와, 그의 입사동기인 관리이사 만 남았다.

사내는 헤아리기도 어려운 시간 탓에 머리가 혼란스러웠지만,

그나마 심연 같이 혼탁했던 물속에서 한줄기 희망처럼 붙들고 있던 생각을 관리이사 에게 띄엄띄엄 늘어놓았다.

비록 자신의 처세에만 약빠르고 신뢰가 가는 인간형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회사에서 유일하게 자신과 더불어 가끔 점심을 먹는 동료 이긴 했으므로.

사내는 자신이 만약 이 프로젝트를 더 진행하지 않고 퇴사하겠다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죽진 않았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괴로웠던 시간이었다고,

자신의 생존능력에 대한 한계를 모르기에 언제까지 그 어둠이 이어질 것 인지 예측도 할 수 없기에 너무 괴로웠다고.

그냥 그만두고 평범한 일을 찾고 싶다고,

그러면 안 되겠느냐고 사내는 관리이사에게 반은 울다시피 하며 사정 아닌 사정을 했다.

이사는 사내의 말을 한참 듣고 나서 말없이 연달아 담배를 피우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담배만 피우던 이사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 야, 우둔호. 정신 좀 차려라. 너 왜 이렇게 상황판단을 못하니.

네가 그 사건 이전에 회사를 나갔다면 아마 쌍수를 들어 환영했을지도 모르지.

근데, 이 말도 안 될 것 같은 프로젝트에 그간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 그래.

대표가 그걸 그냥 놔두겠냐고. 게다가 네 가족 생각은 안 해?

십 수년만의 진급에다 월급도 배로 올라서,

나름 애들 학원비에 이것저것 한껏 꿈에 부풀어 계획 세우고 난리였을 텐데 그걸 다 어쩌려고.

너 그러다간 이혼 당해.

그리고 이건 불필요한 말 인지 모르겠지만 네 상태를 잘 생각해봐라.

넌 죽지만 않지 무슨 슈퍼맨이나 엑스맨같이 힘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걸 가지고 나가본 들,

만약 대표가 네 정보를 정부기관 같은데 흘리기라도 한다면 넌 꼼짝없이 붙들려가서 실험실 모르모트 되는 거지.

어쩌면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네 죽지 않는 비밀을 풀겠다고 온갖 실험도 할 거고.

어쩌면 역학조사랍시고 네 가족들까지 다 붙들려가서 말이지. 안 그럴 것 같아?”

관리이사는 사내의 희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산산조각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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