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별다른 선택권은 없어 보였다.
당장, 목숨이 오락가락할 일은 없었다.
현재의 내 몸 상태로는.
오수 속에 잠겨 있었을 때 때론 차라리 죽게 해 달라 애원도 했었지만.
무려 삼주를 오수에 잠겨 있었다는 증거라는 게, 고작 씻어도 풍기는 냄새 따위뿐이니.
정작 나는 일주일 정도라 생각했는데 내가 무려 삼 주간을 그 속에 있었다는 것은 팀장에게 듣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모르지만 이후에도 내 주변에 다가오는 실험자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서도 구역질을 해댔다.
어차피 안 죽는 거 아예 락스로 온몸을 닦았다.
멀쩡했다. 오수 냄새가 빠지고 이젠 락스 냄새가 남았다.
그날 이후로 괴롭힘은 더 이상 없었다.
대신 이전 입소 때와 같은 진료버스가 와서 또 샅샅이 내 온몸을 들여다보았다.
그때와 같은 의료진 외에도 새롭게 정신과 전공이라는 작자가 추가되었다.
그가 나에게 한 시간은 걸림직한 설문지를 내밀고 또 한 시간이 넘도록 분석이라는 걸 하더니,
결론은 아주 말짱하다는 거였다.
그 외에도 모든 것이 지극히 정상이고 체중변화도 없다는 말에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런 거라면 나는 이제 숨을 쉬지도, 먹지 않아도 안 죽는 불사신이 되었다는 건가.
사람이란 참 간사한 존재라서 관리이사와 면담 아닌 면담을 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갇힌 상태임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에서 사람다운? 시설에서 잠을 자고,
보통의 사람들처럼 일어나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지내는 며칠간 내게 현실이 돌아왔다.
알량한 주공아파트의 대출은 무려 십 년이 넘게 남아 있었다.
아이들 에겐 월급 태반이 들어갔다.
아내도 늘 내 늘어진 티셔츠에 내 구멍 난 트렁크 팬티를 입고,
돋보기를 추켜가며 반도체 조립 부업을 한답시고 좁은 거실 한가득 자루를 쌓아 놓곤 해도,
살림은 거기서 거기였다.
쭈그리고 앉아 열중하는 아내의 벌려진 트렁크 사이로 희미하게 거웃이 보이곤 했었다.
내 몸이 불사의 몸이 되었다고 해도 그걸 로는 해결이 되지 않을 일이다.
그랬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는 불사의 몸이 아닌 경제적 몸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전의 나는 그 경제적 몸에서 아주 거리가 멀었었다.
내가 원해서는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 사이 나는 경제적 몸뚱이가 되어버렸다.
그게 일반적인 업무능력이나 노력 같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랬다.
돌이켜보면,
오수처리장 속에서 삼 주를 보내며 지옥 같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 전의 평범한 삶도 내겐 지옥과 그리 다르지 않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 달 화살처럼 날아드는 대출이자와 고지서들, 아이들의 생활비 들.
직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냉대와 따돌림들.
어쩌면 이 황당한 몸이 된 이후로 받게 된 주변의 관심 아닌 관심만큼을,
이전의 삶에서 누려본 적이 과연 있었던가.
돈 때문에 평생 건강진료 한번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나인데.
일주일 쉬는 기간 동안 회사의 도움으로 좀 더 큰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뚜벅이 생활만 하던 내게 중형급 법인차를 내주었다.
차 키를 내주며 관리이사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 너한테 굳이 종합보험을 들어줄 필요는 없을 건데.
아무리 차 사고가 나도 넌 안 죽을 거 아니냐.
그런데 보험사에는 그런 경우의 할인이 없네. 거 참. "
꿈도 꾸지 못하던 법인 카드가 나왔다.
아내는 늘어진 내 셔츠를 벗어던지고 망사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물론 그 잠옷은 거꾸로 그녀의 늘어진 몸을 역력하게 드러내 주는 역할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은 여기저기 학원을 다니느라 바빠졌다.
그리고 나도 옷을 맞췄다. 물론 회사에서.
시궁창 속에서 빠져있던 절망적 마음은 좋아진 집과 아내와 아이들의 환한 미소로 서서히 덮어졌다.
회사에서 내게 맞춰준 옷은 상당히 민망했다.
그것은 일종의 전신타이즈 같은 것이었는데,
캐릭터가 히어로 인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
난 그들이 내게 뭔가 히어로스럽게 몸을 만들도록 운동을 시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맘껏 먹고 살을 찌워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타이즈에 드러난 내 몸매는 거의 타이어 광고 캐릭터 같았다.
얼굴에는 대머리 캐릭터가 그려진 복면까지 붙은 전신 타이즈.
그 훤히 드러난 타이즈 앞에는 우스꽝스럽게도 넥타이 그림까지 인쇄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온몸이 울퉁불퉁 드러난 부푼 풍선 몸매인데 그림은 정장을 입고 있는 듯한.
웃기는 캐릭터가 내 콘셉트인 것이었다.
프로젝트 팀에서 기획한 내 공식 이름은 울트라 좀비였다.
그리고 별칭으로 좀비 샐러리맨이라는.
그것은 곧 출시를 앞둔 온라인 게임의 타이틀과 같았다.
주인공은 뚱뚱한 직장인이고,
그 주인공이 좀비가 되어 온갖 공격과 방해를 막고 피해 가며 가족을 구하러 간다는,
유치하고 저열하며 대신 단순한 스토리의 1인칭 RPG 게임이었다.
이를테면 안티 히어로 인 셈이다.
물론 내 신분은 철저히 보안에 붙여졌다.
사내에서도 몇을 빼고는 모델이 누군지 알지 못해 의견이 분분 했다.
첫 시작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었다.
‘리얼, 실시간 영상’이라 이름 붙이고 울트라 좀비를 향해 탱크가 덮치는 장면이 시작이었다.
먼저 포탄을 쏘고, 먼지와 화염 속에서 멀쩡히 내가 걸어 나오고,
다시 화염방사기를 쏘고, 그래도 멀쩡하게 내가 걸아 나가면 나중엔 탱크가 나를 덮쳐 깔고 지나가는,
그 이후에 먼지 자욱한 흙바닥에서 내가 기어 나와 엄지를 들며 ‘아일 비 백’이라 중얼거리는.
우습고 유치한 영상이었지만,
회사의 ‘조작되지 않은 실제 영상’이라는 보충설명이 덧붙여져 회사 홈페이지의 게시판은 트래픽으로 마비가 되었다.
홍보는 게임의 엄청난 사전 가입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 난리의 와중에, 나사의 신소재로 만들어졌다는 전신타이즈의 견고함에 놀랐다.
그 타이즈는 나만큼 이나 강했다.
적어도 그 엉망진창 공격에서도 부분적으로만 구멍 날 정도로.
안 그랬으면 정말 창피한 상황이 벌어졌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