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고도에 내리는 비
아이와 함께 여행을, 그것도 추석연휴에 한다는 것은 참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도 마땅히 방문할 친척도 없는데 긴 연휴 내내 집에서만 있기도 그렇고 해서 아이가 바라던 부산행을 했다만 딱히 부산에 안 가본 곳도 별로 없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서 경주를 향했다.
아뿔싸.
추석 귀경길은 생각 못했네.
도리없이 시간이 걸렸지만 경주에 도착은 했다.
마치 장마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아이가 유일하게 가보고 싶다던 첨성대를 시작으로 기다림과 주차난의 고행길이 시작되었다.
기다리는 게 싫어서 맛집 멋집 모두 패스하고 옆집으로 가는 나 이지만, 아이에게 나중에 기억될 여행길은 참고 참아내야 하는 법이다.
첨성대는 내 오랜 기억보단 높았지만 빗길에 흙탕길이었다.
그나마 명절 무료입장이라 억울함은 없었지만.
불국사로 가는 길은 실로 정체의 연속과 인내의 길.
비는 굵어지는데 평소 않던 일회용 비옷을 다 사서 입고 천왕문을 거쳐 다보탑 석가탑 순회를 한다.
아이는 요즘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이라고 꽤 집중한다.
정말 온 김에, 두 번 오기는 힘들 거란 마음에 석굴암을 가기로 했다.
예전처럼 등산은 아니라 차량으로 토함산을 오르는데 산이 구름으로 둘러져있다.
환상적이기보다는 앞도 희미한데 시속 2km 가까운 속도로 석굴암 주차장에 도달하기까지 사십 분.
그리고 걸어서 석굴암에 가는데 거기서도 빗속에서 줄 서서 기다림.
정작 석굴암 본존불 앞에서 보는 시간은 이삼 분. 뒤에 줄 선 사람들에 밀려 쫓기듯 운해 속으로 내몰렸다.
여행 감상할 시간은 없었다.
기나긴 기다림의 기억이 있을 뿐.
그래도.
아이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면 되었다.
명절 연휴에는 국민 관광지가 무료다.
하지만 가려면 많이 참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