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을 읽고
처음에는 작가의 이름만 보고 일본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열어보니 엉뚱하게도 1920~1950 년대 영국 귀족가문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와서 생뚱맞았다.
그 가문의 집사인 1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로 2차 세계 대전까지를 아우르는 근대 격변기에 가문의 주인인 달링턴 경이 정치적 막후에서 어떤 일을 하였으며,
집사인 주인공은 대영제국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 오가는 달링턴 홀에서 벌어진 다국적 모임과 행사를 어떻게 치러냈었는지에 대한 기술들이 섬세하게 기술되고,
스스로 일급 집사라고 자부하는 자신은 거기서 어떤 역할들을 해왔었는지를 기술한다.
그 과정에서 하인들의 총무인 켄턴 양과의 일화들도 등장하고,
현재 시점에서는 달링턴 경이 영광스럽던 과거와 달리 나치를 지지했다는 오명을 쓰고 쇠락했던 일화, 그 이후 달링턴 홀이 미국의 신흥 부자에게 팔리면서 대폭 줄어든 하인들을 데리고 주인공이 여전히 집사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모습들이 그려진다.
사실 역사적 순서 외에는 잘 알지 못하는 시기, 잘 알지 못하는 영국 귀족들의 생활도 생소했지만, ‘집사’라는 직업에 그토록 의미를 부여하고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려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표 같은 내용들은 내심 공감이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집사였던 아버지가 하필 중요한 회합을 여는 행사 중간에 돌아가시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여전히 손님들을 응대해야 했다는 회고,
훗날에도 자신이 그렇게 행동했음에 대해 최고의 집사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들.
게다가, 오래전에 달링턴 홀을 떠난 켄턴 양의 편지를 읽고,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인 주인의 호의로 주인의 자동차를 타고 휴가를 떠나는 것조차 켄턴 양을 만나 다시 달링턴 홀의 총무로 들어오는 것을 제안하려는 목적으로 방향을 잡은 것조차도 주인공이 뼛속 깊이 ‘집사’라는 역할에 충실하려고 애썼다는 것.
주인공은 자기 자신만의 미래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다.
독립된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최고의 집사 역할에 대해서만 몰두한다.
예전 주인이었던 달링턴 경이 어떤 잘못된 선택을 했던지, 전쟁 이후 그 잘못된 선택에 대해 세상에서 얼마나 비난을 받았는지 와는 상관없이 외경심을 가지고 달링턴 경을 회상한다.
세월이 흘러 본인도 ‘노인’이 되었음에도 무심하고, 달링턴 홀과 함께 그 건물에 ‘부속’인 집사와 하인들도 함께 ‘사들인’ 미국계 신흥 부자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집사가 될까에 몰두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만난 켄턴 양이 온갖 세월의 질곡을 겪긴 했지만, 결혼생활에서 이제 안정을 찾으려 하고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는 것을 깨닫곤 왜 켄턴 양을 만나러 왔는지 이야기 조차 하지 못하고 돌아오게 된다.
정작 켄턴 양은 달링턴 홀에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위해 노력하던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자신이 뭔가 놓치고 있는지, 아니면 살아온 과정들이 옳았는지에 대해 약간의 회한을 가지면서 소설은 끝난다.
원작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리뷰를 보았다.
‘남아 있는 나날’ 이 아니라 ‘그날의 흔적’ ‘그날의 잔영’ 정도의 번역이 맞는다고 하는데 소설 전반적인 내용으로도 그게 맞는 번역일 듯하다.
사실 현재의 시선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이 공감하기에는 워낙 시간과 공간이 생소한 세상의 이야기라 공감을 했다고는 하기 어렵다.
다만, 자신이 가진 신념이 투철한 한 사람이 일평생에 걸쳐 가져온 그 고집스러운 신념에 의해서 실제의 나 자신은 없이 신념에만 붙들려 일생을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계층이 엄격한 근대 영국사회에서, 본인의 계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거기서 최선을 다해 해당 계층에서 인정받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생소하지 않았다.
드러난 계층사회는 아니어도 현대 사회에서도 분명 계층은 존재하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계층은 더 두드러지고, 그 안에서 일군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가진 환경 안에서 또 최선을 다해 인정받으려고 일생을 투자하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일종의 삶에 대한 신념을 고집스럽게 자신에게 강요하거나 아니면 완벽하게 몰두해서 살아가니까.
그러다가 어느 먼 훗날 자신의 생을 돌아보니 결국 ‘타인’을 위해서 일생을 살아왔구나 하는 회한이 없다면 거짓일 것이다.
물론 그게 일반화는 아니지만, 다수의 대중은 모두 보다 높은 계층의 누군가를 위해 삶을 살아간다.
선택을 바꾸기도 하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써보기도 하지만 완고하게 짜인 삶의 틀을 빠져나온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책을 읽고, 이 책이 외국에서 대단히 높은 평판을 받은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시대를 배경으로 했을 뿐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가 담담하게 적어 나갔다는 이해를 하게 되었다.
게다가 자신이 막 태어나기도 이전의, 거기에 실제로 이방인에 속하는 동양인이 저토록 철저하게 영국의 제국주의 시대상들을 상세하게 기술한 능력에 대해서는 경외감을 가진다.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료들을 채집했는지가 궁금할 노릇이다.
살아보지 않은 시공간에 대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여주는 것.
그게 그 작가의 능력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더불어, 나 또한 작중 화자인 스티븐스처럼 실체가 아닌 나 만의 '신념' 같은 것에 막연히 기대어 세상을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회한도 느낀다.
정작 내가 애써 노력해야 했던 것들은 외면하고 내가 옳은 길이라고 선택했던 길들 또한 세상의 구조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자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