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매니아 18

맨 인 블랙

by 능선오름

울트라매니아 18


한동안의 정신없던 동영상 촬영을 끝으로 한동안 자유로웠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이렇듯 여유로운 시간 이라곤 없었다.

넓은 아파트와 자가용. 그리고 가족들의 지나친 환대와 기대.

회사 대표와 프로젝트 관련자들의 융숭한 대우.

내 주변의 가까운 모든 사람들이 들떠 있었고,

뭔가 새로운 미래를 잔뜩 기대하고 있는 듯 보였다.

눈에 띄게 회사는 풍족해져 갔고,

나 또한 그 과정에서 겪은 수모 아닌 수모는 서서히 잊어가며 느지막이 꽃 피워진 내 입지에 대해서 나름 만족을 하려고 했다.

다만 슬픈 건,

그 모든 것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느 날 뚝 떨어진 내 육신의 변화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건 내 노력의 결과도 아니고,

언제 어떻게 없어져도 하등 이상 할 것이 없는 행운 아닌 행운.

어느 날 평소와 같이 과격한 액션을 촬영하다가 갑자기 능력이 사라져 즉사 한 다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그런.


첫 시작이 자살시도로 인한 것이었지만,

어느 정도 돈을 벌고 풍족해지면서 삶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만에 하나, 어느 날 능력이 소멸되어 버리더라도 살아갈 수 있도록 특별 인센티브 같은 것 들은 따로 챙겨 놓았다.

내 뜻하지 않은 출세가 무엇 때문 인지를 모르는 아내에게 돈을 다 주어 버리면,

그저 좋아라 하고 다 써버릴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착실하게 모아서 부자가 된 사람은 절대 낭비하지 않는다.

늘 어려울 때에 대비할 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복권에 당첨되어 떼돈을 벌게 된 사람은 몇 년 못 가서 망한다.

노력과 무관하게 주어진 행운이 영원하리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어지는 혜택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한다.

그게 사람들의 속성이고, 세상의 이면을 많이 들여다본 나는 그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내 늘어진 티셔츠를 입던 아내는 이미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능력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던 나로서는 만에 하나를 대비해야 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자가용 안에서 나는 습관처럼 면도날로 손등을 긋곤 했다.

내 나름 방식의 자가 테스트인 셈이다.

아무 변화가 없을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반면 또 다른 이유로 한숨을 쉬곤 했다.

이 대단한 능력의 부작용이라면, 허기를 채우거나 갈증을 해소하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습관처럼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지만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배가 고프지도, 갈증이 나지도, 용변이 급하지도 않았다.

마치 로봇이,

아무런 의미 없이 벌려진 입으로 음식을 털어 넣고 나중에 배 부분을 열어 쓰레기통을 비우는 행위와 같다고 할까.

테스트 기간 동안 한참을 굶고, 물을 마시지 못하고, 배변을 할 수 없었음에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건 몹시 기이해서, 처음엔 오히려 달가울 지경이었다.

원래 미식가도 아니었던 데다,

직장생활이라는 게 움직이기 위해 급히 아무거나 먹고, 닥치는 대로 마시고 하는 게 일상이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사람이 포만감을 느끼지도 못하고,

갈증을 해소할 때의 느낌도 못 느끼고,

배설의 묘한 쾌감도 못 느낀다는 게 얼마나 불행한 것 인지를 곧 깨달았다.


아무런 재미가 없었다. 티브이에선 늘 ‘ 먹방 ’ 이 넘쳤다.

온갖 종류의 음식들을, 온갖 방법으로 요리하고 먹는 프로그램들이 홍수를 이뤘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것을 보며 입맛을 다시 기도 하고, 나를 졸라 외식을 나서기도 했다.

그렇게 가족과 단란한 모습으로,

이제 금액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배부름도 느끼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저 고역이었다.

내 나름대로는 이 능력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온 가족이 다 행복할 수 있다면 괜찮다는 생각도 했다.

어느 날 특별히 촬영 계획도 없어서 느지막이 출근을 하자 대표로부터 호출이 있었다.

한동안 회사의 해외 주식시장 상장이다 뭐다 바빴던 대표 인지라 얼굴 볼 일도 없었고,

그게 편하기도 했는데.

이따금 업데이트 영상을 찍을 때 열광적으로 참석하던 대표도 어느 순간부터는 식상한 듯 현장에는 아예 얼굴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그러니 본래의 사옥에서 보안이 철저하게 강화된 작은 규모의 Z 프로젝트 사무실에 대표가 들르는 일도 덩달아 적어졌고,

이따금 마주치기라도 하면 ' 어유, 우리 보물 우 부장 수고가 많아! '운운하며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과장된 몸짓을 하지만,

그 표정에는 돈은 되지만 예쁘진 않은 애완동물을 억지로 키우는 듯한 티가 너무 났었다.


그런 대표가 갑자기 사무실에 출근해서 나를 찾는다?

뭐 또 새로운 아이디어라도 생긴 건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표실을 들어섰다.

그곳에는 대표와 팀장, 관리이사가 몹시 어색한 조커 같은 미소를 지으며 엉거주춤 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어리둥절하며 어디 앉아야 하나 생각을 굴리고 있는데 대표 맞은편 소파에 앉아 뒤통수만 보이고 있던 사내 두 명이 일어섰다.

놀랍도록 닮지 않았음에도 쌍둥이처럼 보이는 두 사내는 만면에 세일즈맨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손을 내밀어 맞잡자 사내가 손아귀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내게는 갓난아기가 손을 잡은 정도의 느낌도 아니었지만,

사내의 손아귀가 하얗게 변한 걸 보니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있는 대로 힘을 쓰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내 표정에 전혀 변화가 없자 대표는 소리 없이 비웃음을 배어문 게 곁눈으로 보이고,

사내는 시뻘게진 얼굴로 더 힘껏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체구도 곱절인데 온통 근육질로 보이는 사내의 힘이 내겐 별로 감흥이 없었다.


이윽고 사내는 손을 놓고 한숨을 축 쉬더니 품 안에서 명함을 꺼냈다.

마치 그 동작이 영화에서 권총을 뽑는 느낌이라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그리고 엉겁결에 사내가 내민 명함을 받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분명 명함 크기에 명함 용지는 분명 한데, 뭔가 이상했다.

하얀 고급 명함지 바탕에 인쇄된 글자는 어딘지 낯설었다.

그 옆에 서 있던 사내가 내민 명함도 거의 비슷했다.

선명한 명조체. 그리고 단 세 글자.

‘ 임묘한, 기이한 ’ 이게 그들 각각의 명함에 박힌 각각의 이름 같은 세 글자.

그게 끝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소속도, 직책도, 전화번호 도, 주소도.

이 쌍둥이 같은 놈 들이 장난을 치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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