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
울트라매니아 19
이 쌍둥이 같은 놈 들이 장난을 치자는 건가.
어딘가 코미디 콩트에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가진 두 놈들은 우스워보였지만,
얼굴에 일체의 표정이 사라진 임원들을 보니 웃을 일은 아닌 듯했다.
쌍둥이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임묘한'이라는 기묘한 명함을 건넸던 사내였다.
자세히 보니 쌍둥이 같기는 해도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내였다.
사내가 입을 여는 방법은 어쩐지 복화술처럼 보였다.
얼굴에 일체의 표정도 없고 입술이 조금씩 달싹이는 것 말고는 얼굴 근육의 변화가 전혀 안보이니 마치 가면을 쓴 사람이 말을 하는 것 같다고 할까.
" 대표께 말씀 들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많이 하신다지요?
고생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
뭐지?
사전에 언질을 받은 부분도 없고, 대표가 내 존재에 대해 철저하게 보안을 지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흘긋 대표와 관리이사를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평소와는 달리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상태로 식은땀을 흘리는 게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지. 그들이 이렇게 긴장을 하는 거 보면 세무조사라도 나왔나.
아니, 세무조사원들이 이런 차림 새였었나?
나는 나를 대리하는 대표와 팀장이 묵묵부답을 하니 소리 없이 그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 고생이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그런데 어디서 나오셨어요? "
너무나 당연한 나의 질문에 쌍둥이들은 미미하게 표정이 변했다.
마치 이런 질문을 받는 것 자체가 모욕이라는 듯.
그리고 대표와 관리이사가 움짤 하는 것도 보였다.
" 아, 그렇지요. 뭐 우리 명함에 뭐가 안 적혀있긴 해요.
그저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나랏일이라.
내가 공무원이었나. 병역 의무도 제대로 치렀었는데.
이제 와서 예비군도 소집해제가 된 나에게 무슨 나랏일이 있는 건가.
반사적으로 다른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과거라면 잔뜩 주눅이 들어서 그냥 그러려니 했을 테지만,
어쩌면 그간 무엇으로도 다치지 않는다 는 결과와 넉넉해진 급여로 배짱이 생긴 건지.
" 나랏일요? 그런데 제가 왜요? 저 세금도 원천징수하고 재산세도 다 내서 뭐 더 할 게 없는데요?
대체 무슨 일이지요? "
이어진 내 질문공세에 잠시 당황한 듯 쌍둥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불쾌한 얼굴을 하면서 일어섰던 의자로 앉아버리면서 대표를 향해 턱짓했다.
마치
'네가 설명해'라는 듯.
세상에. 대표를 턱짓으로 부리는 사람이 있다니.
대표가 두 손을 맞잡으며 내게 입을 열었다.
" 어.. 우 부장. 실은 두 분 다 나라를 위해 일하시는 분들 맞아. 뭐 상세한 건 말하기 어렵고.
어쨌든 이 분들께서 자네의 '능력'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다고 하네?
그러니까.... 파견! 그렇지. 자네가 회사를 대표해서 이분들의 회사에 파견을 간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
적절한 단어를 찾았다는 듯 대표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하지만, 뭐하는 곳인지도 모를 회사에 뭐를 하는지 모를 인물들을 무작정 따라가다니.
이 정도로 나라가 개판 일리가 있나?
나는 예전과 달리 소심함을 버리곤 대표에게 물었다.
" 제가 왜요? 게다가 뭐를 할지도 모르는데 제가 무작정 갑니까? "
뜻하지 않던 반발이라 느꼈는지 대표의 비굴해 보이던 얼굴에서 눈에 불똥이 튀었다.
그러더니 내 손을 붙잡고 방의 구석으로 끌고 갔다.
거기라고 그들에게 말이 안 들리지는 않을 텐데.
" 야, 우 부장. 이 새끼야. 너 죽고 싶어? 저분들은 지금 부탁을 하러 온 게 아니야.
너 생각해봐. 우리 회사가 지금 잘 나간다고 하지만, 나라에서 마음먹고 우리 회사 문 닫게 하려면 순식간에 폭망이야. 회사에서 네 월급 약속대로 지급할 거고 너는 저분들 회사에서도 따로 돈을 더 받을 건데 네 손해가 뭐야? 순순히 따라가는 게 좋을걸. 네가 감히 선택하고 말고 문제가 아냐! "
다급하게 이어지는 대표의 말에 떨어져 앉아있던 쌍둥이들의 가면 같은 얼굴에 미미한 웃음기가 돈 건 내 착각일까.
'죽고 싶냐'는 대표의 협박 아닌 협박은 나조차 피식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제 와서 내게 '죽는다'는게 과연 통할수 있을까 싶으니까.
어쨌거나 내게 선택권도 없고, 어쨌든 돈을 더 벌 수 있다고는 하니 나도 방법이 없었다.
갑자기 집에 전화를 해서 또 장기 출장을 간다고 하니까 아내는 더 신이 난 모양이다.
하긴.
지난번 출장을 다녀오고서 갑자기 집안이 환골탈태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옷을 챙기러 다녀오겠다는 내 요청은 쌍둥이들의 작은 쪽에 의해 간단히 묵살되었다.
" 다 나라에서 지급할 거니 그냥 가시죠."
두 쌍둥이 아닌 쌍둥이와 함께 우부장은 차를 탔다.
그들의 차는 덩치가 제법 큰 국산 세단이었는데 선팅이 짙어서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표로부터는 단지 ‘이 분들 따라가서 일을 하면 된다.라고만 전해 들은 탓에,
그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사람 들 인지, 무슨 이유로 나를 데려가는 것 인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 인지도 알 수 없는 채 뒷좌석에 태워졌다.
아무 말 없이, 게다가 세단의 뒷좌석과 운전석 사이에는 마치 미국 경찰 영화처럼 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국가기관 같은 냄새를 풍기는, 그러나 그게 정상적 기관처럼은 보이지 않는. 운전석과 조수석에 오른 두 사람은 말 한마디 없이 묵묵하게 운전을 하고, 한 명은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부장도 그들에게 말 붙이기 어려운 분위기에 처음에는 긴장한 채였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냥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차는 서울을 벗어나서 경기도 외곽으로 접어들었다.
세단이 달리기에는 좀 버거운 듯 한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어 차가 도착 한 곳은 폐차장이었다.
우부장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리 멀쩡한 차량을 왜 폐차장으로?
차가 폐차들이 잔뜩 쌓여있는 공터 안으로 들어서자 쌍둥이들과 엇비슷한 차림의 사내 서너 명이 나타났다.
황량한 폐차장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양복들을 입고.
우부장은 마치 그들이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스미스’ 요원 복제들과 같아 보인다고 엉뚱한 생각을 흘렸다.
차 시동을 끄지도 않고 두 사내가 내리자 별반 다르게 생기지 않은 사내 하나가 차 뒤편을 흘깃 우부장에게 시선을 던지더니 이내 가속페달을 밟아 차를 옮겼다.
차가 놓인 곳은 폐차용 압축 프레스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시동을 끈 사내는 다시 한번 뒷좌석의 우부장을 흘깃 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우부장은 한숨을 쉬었다.
‘결국 또, 이렇게 테스트를 하는구나. 답답하구나. 언제쯤이나 이런 것에서 벗어날까.’
혹시나 해서 뒷문을 열으려 했지만 역시 잠긴 상태였다.
웅웅 거리며 유압 프레스의 누름 판이 서서히 내려오는 게 느껴졌다.
‘아. 젠장. 또 무엇을 얼마나…….’
천천히 내려오던 것 같은 프레스는 듣기 싫은 괴성을 지르며 우부장이 타고 있는 세단을 납작하게 눌러버렸다.
처음 차의 형태를 하고 있던 세단은 이제 거의 정육면체에 가까운 모습이 되었다.
여남은 명의 사내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임묘한’ 이란 사내가 함께 운전을 해서 온 사내를 향해 입을 먼저 열었다.
“어이. 기대리.”
“ 네, 과장님.”
“ 저거, 일단 5톤 화물칸에 실어라. 철공장으로 가자.”
“ 네. 과장님.”
카고 크레인이 얼기설기 구겨진 쇳덩이로 변한 자동차였던 ‘것’을 들어 올려,
대기하고 있던 트럭의 적재 칸에 실었다.
트럭 운전석에도 양복장이 한 명이 안 어울리게 앉아 있었다.
트럭이 비포장 도로 위로 올라서자, 뒤 이어 여러 대의 세단들이 폐차장을 떠났다.
차량 행렬 들이 비포장 도로 위에 가득 흙먼지를 피워 올렸다.
나는 몹시 불편할 자세로, 뒤틀린 자동차 내부에 접혀 있었다.
무지막지한 유압 프레스로 인하여 몇 번 뒤집히며 몇 겹으로 차체가 접혔고,
나는 그 틈새에 깨어진 유리창, 터진 시트 등과 엉킨 채로 일정한 공간 속에 들어가 있었다.
온몸을 꼼짝달싹 할 수도 없고 어두컴컴하게 접힌 철판 무덤 속이었으나,
그래도 틈바구니로 빛이 스며들고 바람도 들어와서 나는 이 덩어리가 그 상태 그대로 트럭 같은 것에 올려져 이동하는 것을 느꼈다.
움직이진 못해도 고통은 없었으나, 새로운 걱정거리가 다시 밀려왔다.
잠시 잊고 있었던 오폐수장 에서의 감금이 다시 떠올랐다.
이놈들이 나를 그건 곳에 이 상태로 처박으면 어떡하지, 혹시 이대로 바다에 던지는 것 아닐까.
정말 죽지도 살지도 못한 상태 그대로.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