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매니아 20
나는 몹시 불편할 자세로, 뒤틀린 자동차 내부에 접혀 있었다.
무지막지한 유압 프레스로 인하여 몇 번 뒤집히며 몇 겹으로 차체가 접혔고,
나는 그 틈새에 깨어진 유리창, 터진 시트 등과 엉킨 채로 일정한 공간 속에 들어가 있었다.
온몸을 꼼짝달싹 할 수도 없고 어두컴컴하게 접힌 철판 무덤 속이었으나,
그래도 틈바구니로 빛이 스며들고 바람도 들어와서,
나는 이 덩어리가 그 상태 그대로 트럭 같은 것에 올려져 이동하는 것을 느꼈다.
움직이진 못해도 고통은 없었으나, 새로운 걱정거리가 다시 밀려왔다.
잠시 잊고 있었던 오폐수장에서 의 감금이 다시 떠올랐다.
이놈들이 나를 그건 곳에 이 상태로 처박으면 어떡하지, 혹시 이대로 바다에 던지는 것 아닐까.
정말 죽지도 살지도 못한 상태 그대로. 끔찍하다.
차는 의외로 멀리 가지 않은 듯했다.
차가 멈췄다.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다시 무엇인가가 내가 갇힌 덩어리를 집어 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곤 다시, 어딘가로 옮겨지는 느낌. 그리고 다시 던져진 느낌.
뭔가에 풍덩 하듯 빠진 느낌. 그러나 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전 오수장에서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폐소 공포에 사로잡혔다.
눈부실 만큼 밝은 노란빛의 세계.
뭔가 타는 것 같은 냄새들.
먼저 순식간에 나와 엉켜있던 소파들에 불꽃이 바로 붙더니 순식간에 타올랐다.
내가 입고 있던 옷조각은 말할 것도 없이 한 줌 불꽃을 피우며 사라져 버렸다.
주변의 유리조각들이 젤리로 변한 것처럼,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 등장하는 시계들처럼 흐느적거리며 녹아내린다.
그 서슬에 여기저기 빈틈이 생기며 간신히 운신할 공간 들이 생겼다.
나를 휘감았던 철판들이 초콜릿 녹듯 흐느적거린다.
이곳이 어디쯤 인지는 모르지만, 이 장소가 어디인지는 알았다.
이것은 쇠를 녹이는 용광로 속인 것이다.
주변에는 육중한 비중을 가진 쉿 물들 이 끓어 넘친다.
내 몸은 비중이 낮으므로 오히려 둥실 떠올랐다.
물론 무거움은 느껴졌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이전에 Z프로젝트에서 온갖 실험을 다 당했고 화염에 들어간 일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용광로까지는 그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쇠가 달궈지는 냄새.
그리고 단단한 쇳덩이들이 흐느적거리며 녹아내려 이내 물처럼 변해버리는 상황들.
이런 모든 것들을 다 맨눈으로 지켜보는 내가 더 황당할 일이지만 익숙하다.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내겐 열기도 무게도 그 무엇도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으니.
이미 옷은 다 타 버린 지 오래라 또다시 알몸뚱이.
주변에 녹은 쇳물들이 끓다시피 거품을 튀겨대고 있다.
나는 낑낑대며 반쯤 잠긴 몸을 끌어내었다.
다행히 비중은 높으나 이미 충분히 녹은 쇳물이 나를 가두지는 않았다.
오히려 비중 차이 덕분에 나는 수월하게 용광로의 끄트머리로 이동했다.
다행히 용광로는 단지 형태가 아니라서, 조금만 발돋움을 하면 탈출이 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약간 기울어져 있기도 했고.
어쩌면 쇳물을 부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쇳물과 함께 쏟아져서 그대로 굳어 버린다면.
그건 내겐 더할 나위 없는 산지 옥이 될 터였다.
쇳덩이 속에 박제된 살아있는 인간이라니.
나는 허우적대며 용광로의 모서리를 잡고 기어올랐다.
연기가 자욱했지만 거리낄 게 없었다.
아차, 하는 순간 나는 용광로 위에서 떨어졌다.
높이가 꽤 되어서 충격이 있겠지만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도 떨어진 실험은 있었으니까.
그러나 약간의 느낌 이외엔 아무렇지 않으니 서둘러 용광로 아래를 벗어났다.
언제 저 쇳물이 쏟아질지 모르니까.
아랫부분은 무슨 컨베이어 같이 보였는데,
나는 서둘러 벗어나기에 바빠서 자세히 보지 못했다.
그리고 용광로로부터 제법 떨어졌다 생각하고 한숨을 돌릴 때.
멀찍이 떨어져서 나를 지켜보는 사내들이 보였다.
거리가 있어서 그들의 표정까진 알 수 없었지만,
일제히 끼고 있던 팔짱을 푸는 모습으로 보아 조금 당황하는 듯 보였다.
한두 번 본 반응이 아닌지라, 나는 한숨을 쉬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달리기 나 무엇으로 해도 결국 저 들에게 붙들릴 것이었고,
알몸뚱이로 과연 어디를 갈 것 인가.
달리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대충 짐작은 갔다.
저들은 아마도 무슨 정보원 같은 곳에 근무하는 요원들일 것이다.
재미있는 건 명함에 조차 이름 외에 전화번호 하나 안남기는 작자들이,
왜 하나같이 똑같아 보이는 검정 양복을 입고 있느냐는 거다.
단체로 조문이라도 가는 것처럼.
저런 식이라면 요원 몇 명만 보이면 일반인들의 시선에는 당연히 노출될 거 아닌가 말이다.
누가 봐도 뭔가 심상치 않은 무리로 보이는데.
내가 죽지 않는 몸뚱이가 된 건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왜 불사의 몸이 되었는데 힘은 여전히 예전과 같으냐는 거다.
그건 불만스러운 사항이었다.
어차피 죽지 못하는 몸뚱이가 되었으면 그에 맞는 힘도 생겨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안되면 나는 슈퍼맨도 아니고 그저 죽지만 않는 존재에 불과하니,
저런 놈들에게도 만만한 존재가 되는 거 아니냔 말이다.
세상이 원래 공평하지 않은 건 알고 있지만, 이건 좀 가혹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불사의 몸이 되었다고 해도 결국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이제 회사보다 더 '센'기관에서 전혀 모를 이유로 이렇게 내돌림을 당해도.
정작 당사자인 나는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거.
이건 참 반쪽짜리 울트라맨 이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