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서 내린 곳은 비행장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을 한다기에 당연히 김포공항을 생각했었는데 그곳은 생전 처음 보는 곳이었다.
활주로는 크지 않은 데다 회색빛 시멘트 블록이 울타리로 둘려진 이상한 곳.
그 시멘트 담장 위로 군대에서나 보던 원형 철조망이 흉하게 드러나있고,
일정한 간격으로 cctv 카메라들이 보란 듯 우뚝 우뚝 솟아있었다.
바람이 스산한 활주로 뒤로 둥근 지붕의 격납고들이 보이고,
영화에서나 봤었던 진회색 혹은 진한 국방색의 덩치 큰 비행기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다.
생경스러움에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임묘한이 말을 걸었다.
" 여긴 군용 성남비행장이오. 서울비행장이라고도 불리지.
처음 봤소? "
당연한 이야기를.
민간인이 군용 비행장에 올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가끔 티브이에서 대통령이나 외국의 주요 인사들이 비행기 트랩에서 걸어 나오는 배경으로 언뜻 보았던 풍경 같기는 했다.
고개를 가로젓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들은 나를 데리고 커다란 비행기로 걸어갔다.
그 비행기는 아무리 봐도 짤막하고 퉁퉁한 모양으로, 내가 알던 비행기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게다가 날개에는 사람보다 커다란 프로펠러들이 매달려 있어서 이게 이십 세기에 날아가는 비행기가 맞나 싶었다.
그 비행기는 탑승조차 내가 알던 비행기와는 달랐다.
액션 영화의 특수부대원들처럼 우리는 비행기 하부 뒤편에 내려진 경사면으로 올라갔다.
비행기 안에는 두 명의 군인 같은 인물이 있었는데 부동자세로 임묘한에게 거수경례를 붙이고,
임묘한은 고개만 끄덕였다.
비행기의 내부는 엄청나게 컸으나 내부장식이라곤 없었다.
장식은 고사하고 차가운 철판들이 그대로 노출이 되어있는데 그 벽에 그물 같은 게 얼기설기 늘어져있고,
무슨 시골역의 대합실 의자 같은 딱딱한 의자들이 벽에 일렬로 붙어있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그 비행기가 뜬다는 게 의아할 지경의 '날 것'이었다.
기이한이 내게 말을 걸었다.
" 여기서 옷을 갈아입으셔.
그리고 비행기가 시동을 걸면 너무 시끄러워서 아무 소리도 못 들을 거요.
뭐 딱히 말할 것도 없긴 하지만.
아무튼 내가 손짓으로 앉아라 하면 앉고 일어서라 하면 일어서면 되오.
아무것도 주변 물건들 만지지 말고. 자, 어서 옷 갈아입으시오. "
말을 마친 '기이한' 이 내민 뭉치를 보니 묵직한 국방색인데,
이게 옷이라기에도 뭣한 이상한 옷이었다.
재질은 너무 뻣뻣해서 관절을 구부리기도 어렵고,
뭔가가 치렁치렁 달려있고 철제 고리들이 매달려서 이게 대체 뭐하는 물건인가 싶은 것이다.
곁눈질을 해보니 '임묘한'과 '기이한' 도 같은 옷을 입는데 보아하니 입고 있는 옷 위로 겹쳐 입는 것이다.
게다가 이 옷은 자동차 정비공 옷처럼 위아래가 붙어 있었다.
버둥거리는 나를 비행기 안에 있던 군인들이 도와줘서 간신히 입을 수 있었다.
옷을 입은 그들은 어깨에 배낭 비슷한 것을 걸치는데 내겐 주지 않았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기이한에게 물었다.
" 기 대리님. 그런데 이 낡아 보이는 비행기 안전한가요? "
내 말을 들은 '기이한'의 얼굴이 문자 그대로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보여주던 가면 같은 얼굴 표정이 아니라 의외였지만.
" 우 부장. 당신 어차피 죽으려도 안 죽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비행기 낡은 게 뭐가 문제지? "
하긴, 그건 맞는 말이다.
다시 물어보려던 내 질문은 갑자기 귀청을 틀어막는 엄청난 프로펠러 소리에 묻혔다.
익숙한 듯 두 요원은 의자에 앉고 군인들이 무슨 레버를 조작하자,
우리가 올라온 경사로가 천천히 오르며 비행기는 완전히 밀폐되었다.
이내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육중한 비행기가 질주하는 느낌이 들더니 이내 하늘로 떠올랐다.
몇 번 타본 적 있었던 국내선 여객기보다 훨씬 시끄럽고 느린 비행기에서 정신없이 창밖을 보았다.
알지 못할 산들이 지나쳐가고 이따금 구름이 창문 옆으로 흐르는 게 보였다.
그렇게 얼마간 갔을까.
갑자기 안 그래도 커다란 엔진 소리 가운데 요란한 사이렌이 울렸다.
그리고 비행기 문 옆에 붙은 빨간불이 갑자기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나는 아, 이제 곧 착륙하려나 보다 하며 기이함을 바라보았는데,
그 두 요원은 머리에 마치 전투경찰들이 예전에 데모 진압 때 쓰던 것과 비슷한 안면부에 그물망이 붙은 헬멧을 쓰는 게 보였다.
그러나 내게는 그 헬멧을 주지 않았다.
비행기가 속도를 늦춰 선회하는 것이 느껴졌다.
'기이한'이 내게 일어서라고 손짓을 해서 나는 뒤뚱거리며 일어났다.
이상하게 생긴 옷은 여기저기 묵직하게 패드가 붙어서 움직임이 더뎠다.
군인들은 뭔지 모를 로프 같은 것을 자신들의 벨트에 걸더니 이내 비행기의 문을 열었다.
엄청난 소음과 바람이 비행기 내부를 가득 채워서 나는 비틀거렸다.
그런 나를 '기이한' 이 부축하며 어깨동무를 하는 것이다.
비로소 나는 이들이 지금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내 낙하산은?
설마 하는 사이에 바람이 몰아치는 문에 바짝 붙어있던 군인이 문 밖을 내려다보며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나보다 머리 하나는 커다란 '기이한'이 나를 끌다시피 입구로 걸어가더니 이내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어어? 하는 사이에 허공에 내팽개쳐진 나는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옆으로 날아갔다.
강한 프로펠러 바람에 휘말려 비행기 뒤쪽으로 날아간 거다.
어어 하는 사이에 비행기 꼬리가 휙 지나는 게 보였다.
지난번 투신 사건으로 떨어지는 경험은 있었지만 이런 높이는 아니다.
나는 어디선가 새된 비명소리가 거센 바람소리에 섞여 들리는 걸 깨달았고,
이내 그게 내 비명소리임을 다시 깨달았다.
다시금 똥덩어리가 된 기분으로 아래로 아래로 중력에 이끌려 떨어지는 건 순간.
나는 그 사이 아무 생각 없이 비명만 지른 것 같다.
내가 죽지 않는 몸뚱이가 된 것과는 별개로 그 순간은 그저 공포.
두 발로 땅에서 걷던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두려움밖에 없었다.
산야가 스쳐 지나는 게 언뜻 느껴지는데 엄청난 소리와 함께 나는 땅에 처박혔다.
고통은 없었다.
한번 겪었던 대로, 큰 소리와 엄청난 먼지.
그리고는 정적.
나도 모르게 욕설을 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 멀리 비행기가 떠나는 게 보이고,
낙하산 두 개가 하늘거리며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개새끼들.
최소한 말이라도 좀 하던지.
일어나서 보니, 그토록 견고하던 옷이 여기저기 뜯어져 있고 속을 채운 스펀지가 삐죽 나와있었다.
나는 툴툴대며 그 옷을 낑낑거리며 벗었다.
많지도 않던 뒷머리가 엉망이 되고 흙먼지 투성이가 된 것 말고는 멀쩡하다.
그렇지만 프로젝트 실험꾼들이 내게 가했던 그 무엇보다 심리적인 두려움을 느꼈던 건 사실이다.
차원이 다른 높이였으니까.
나는 내가 비행기에서 떨궈진 장소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산자락이 잔뜩 펼쳐진 어느 계곡의 널따란 분지였다.
멀리 여나믄개의 삭막하게 보이는 건물들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떨어질 때 어딘가 언뜻 바다가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들의 ‘회사’에 묵게 되었다.
그들에게 내민 내 의견 같은 건 가볍게 묵살되었다.
이미 그들은 내 가족들에게 회사를 통해 외국사 장기출장으로 상황을 알렸다고 했고,
그만한 대가를 충분히 지급했다고 했다.
사실 여부를 묻자 그건 알 필요도 없고, 알 권리도 없다고 했다.
그리곤 내게 조국에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영광? 무슨 영광? 내가 아는 영광은 굴비 만드는 곳인데?
그들은 회사에 대하여 막강한 권한을 발휘한 듯했다.
일반 민간기업을 상대로 그토록 전권을 휘두른다는 것은 그들의 존재가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것을 의미했다.
나 도서는 무의미한 저항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이미, 충분히 그동안 나는 ‘길들여짐’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 가족.
그들에겐 나 자신보다 나로 인한 경제능력이 더 중요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이대로, 그전에 해 오던 대로, 그렇게 살면 된다.
며칠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내게 해 주는 대우는 융숭한 편이었다.
시설에 창문이 없어 좀 갑갑하긴 했지만, 숙소는 호텔만큼 좋았고 나오는 식사도 훌륭했다.
그들은 내게 아무런 사전 교육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회사에 온 다음날부터 나는 종일 교육을 받았다.
그들의 교육이란 이과를 전공하지 않은 나 도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지만,
다행히 게임업체에 근무했다 보니 일정 부분 따라가기 좋은 부분들도 있었다.
교육용 방은 제법 넓었고, 그 방에는 방 한가득 알 수 없는 기계장치 들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좀 낙후되어 보이는 아날로그 식의 계기판과 다이얼과 버튼으로 가득한 것이었는데,
무슨 건물의 통제센터 같아 보였다.
그리고 중앙 카운터처럼 생긴 곳에 디스플레이 패널과 키보드, 마우스 등.
무엇을 하는 곳 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떤 알아볼 수 있는 문자도 없이 그냥 번호가 매겨진 다이얼과 버튼 들뿐.
매일 그들이 지시하는 순서에 의해 계기판 다이얼과 버튼 조작을 하게끔 하는 것.
그게 무려 삼개월간을 매일 하는 연습이었다.
요즘 같은 컴퓨터 시대에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아날로그 다이얼들을 조작하다니.
뭔가 한창 시대착오적인 교육 같았지만 내게 질문은 허락되지 않았다.
처음에 멋모르고 시작했지만 너무도 지겹고 지루한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에게 중간에 물어보기도, 다소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묵묵부답.
그들이 내게 하는 주문은 간단했다.
현재의 기기 조작을 얼마만큼 빨리 할 수 있느냐를 숙달하라는 것.
삼 개월 후 나는 눈을 감고도 그 방에 들어서서 해야 하는 조작 순서들을 외워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