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위하여
울트라매니아 24
브리핑을 받고 나서 나는 임묘한 과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매끈한, 군더더기 없이 사무적인 테이블 위에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마주하고 임 과장과 나는 마주 앉았다.
그들에게 강제로 끌려온 지 반년이 넘도록,
나는 무기력할 정도로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중간에 집에 서너 번 통화를 하는 것 말곤 군대 시절보다 더 지독한 감옥살이 아닌 감옥살이를 해왔다.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나름 잘 나가는 회사의 직원을 거두절미하고 데려오고, 자기들 마음대로 무엇이든 부리는 이들
집단의 정체는 몰랐지만 그게 거대 권력이란 것은 알고 있었고,
내 의견이 크게 먹힐 부분이 아니란 것쯤은 알았다.
그래서 아무 말 않고 그들에게 가타부타 묻지를 않았었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과 내 용도를 알게 된 지금은, 달랐다. 달라야 했다.
나는 특별한 애국자가 아니다.
게다가 군인도 아니다.
내가 핵시설을 파괴한다는 건, 제 아무리 내가 죽지 않는 자라고 해도 장담할게 아니다.
그리고 이전에 회사 옥상에서 투신하던 그 마음의 나는 아니다.
삶에 욕심도 생겼고,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
그들이 누구이건, 자신에게 요구할 일은 아니다.
나는 결심을 굳히고 임 과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 임 과장님. 제가 왜 저 일을 해야 하죠? 전 분명 민간인입니다.
제게 저런 일을 지시할 권한 같은 건 당신들에게 없지요.
전 군대도 다녀왔고, 국가에 대한 제 의무는 끝입니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임 과장은 일전에 본 것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악어 같은 놈.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 우 부장님. 알아요. 안다고요.
당신에게 무슨 의무 따위가 있겠습니까. 근데요. 당신 능력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란 거죠.
그건 이미 국가기밀 이 되었어요.
이전의 동영상들은 다 조작한 걸로, 해프닝으로 다 퍼뜨렸어요.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당신과 그 가족들의 유전자 조사 겸 두루두루…….
아무튼 당신과 가족들을 좀 고단하게 할 방법은 아주 많다는 걸 명심하시죠.
아예 당신 가족 모두를 지우는 것도 가능하다는 건데, 인간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건 좀 아니지 않소? 잘 생각해 봐요.
어차피 저쪽 애들이 자꾸 핵미사일 만드네 뭐네, 그러니까 또 자꾸 미국 애들도 선제공격을 하네 뭐네,
세계가 시끄럽고 우리나라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당신 가족들도 예외가 아니지 않겠소?
기왕 하늘로부터 인지 뭔지는 몰라도 그런 굉장한 초능력을 부여받았다면,
뭔가 영웅다운 기여를 해야 하지 않겠소?
그리고, 어찌 되었건 당신은 안 죽을 거 아니오.
살아 돌아오고, 영웅 되고, 그러고 나면 충분한 대가를 치러 줄 거고,
해피하게 살면 되는 거지. 훈장도 받고 말 이오. “
미리 준비라도 되어있었다는 듯 청산유수로 답을 늘어놓는 그 작자의 얼굴을 후려갈기고 싶었다.
이전의 나 라면 택도 없겠지만 어쨌거나 육 개월간 인간이 받을 수 있을법한 훈련은 다 받아본 나였다.
" 과장님. 미안하지만 내가 왜 그걸 해야 하는지 난 이해가 안 가요.
그거야말로 당신들이 할 일 아니오? 게다가 핵폭발이라니.
아무리 내가 죽지 않는 몸뚱이가 되었다지만 그걸 내가 어떻게 견딘다는 말이오?
더구나 내 식구들에 대한 안전보장을 어찌 믿는단 말이오? "
다시 임 과장의 눈매가 가늘게 변했다.
' 글쎄요? 아마 우 부장님은 몰랐겠지만 그간 우 부장님에게 제공된 식사들에는 방사성 동위원소들이 꽤 들어있었지요. 보통 사람이라면 한 끼만 먹어도 바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을 거요.
게다가 우 부장님 방에 있는 전등들도 늘 방사선을 뿌리는 특수 등입니다.
생명체가 살아있을 수 없을 환경에서 지금 말짱하게 살아있잖아요?
게다가 우 부장님을 수시로 검진해봐도 몸에 축적된 방사능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어요.
심지어 분비물이나 용변에서도 말이죠.
그것은 방사선 따위는 우 부장님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만약 당신이 이 작전을 거부한다면 우린 당신 가족들에 대해 '특별'히 국가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시죠. "
임 과장의 무시무시한 협박 아닌 협박을 들으면서,
내게 애초부터 선택권 같은 건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결국 이들에게 있어서 나란 존재는 써먹기 좋은 비밀 무기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내 언짢은 표정을 읽었는지 임 과장이 갑자기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입을 열었다.
“ 당신도 그렇지만, 당신을 그곳까지 데려갈 인원들.
그들은 군인 이긴 하지만 죽을 각오를 하고 그곳을 몇 번 다녀온 사람들입니다.
당신처럼 불사신이 아닌데 말이지요. 그 과정에서 죽어나간 군인들도 꽤 됩니다.
물론 그들이 택한 군인의 길이니 그들 몫이라 하겠지만,
그들조차 당신이 없으면 이 작전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물론 당신의 작전이 성공을 한다 해서 그들이 무사히 복귀하리란 보장도 없고요.
그들은 한마디로 목숨을 걸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일념, 그것뿐이거든요.
부탁드립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한번만 힘을 좀 써 주세요.
그리고 이 부탁은 대통령의 부탁이기도 합니다.”
맙소사.
대통령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