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투라 매니아 31

epilogue

by 능선오름

우 부장이 입을 열었다.


“ 좋아. 당신들을 따라가기로 하지.

하지만 담배 한 대만 더 피고 갑시다.

하다못해 사형수라도 그 정도는 해주는 법 아니오? ”


모든 걸 체념한듯한 우 부장의 말에 임묘한과 기이한이 약속한 듯 시선을 마주쳤다.

이내 임묘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기이한이 품에 손을 넣었다.

그가 권총이라도 꺼내는 줄 알고 대표와 관리이사, 영업팀장이 흠칫거렸지만,

기이한의 손에는 담뱃갑이 들려있었다.

말없이 우 부장이 담배를 입에 물자 기이한이 정확한 동작으로 라이터를 켰다.

우 부장이 말없이 담배를 피우고, 사내들이 줄지어 서서 기다리는 기이한 대치가 계속되었다.

우 부장은 홀가분해 보이는 표정으로 임묘한에게 손짓했다.


“ 잠시 앉으시죠. 당신들도 위에 보고를 할거 아니에요.

굳이 취조실 같은 곳으로 가지 말고 여기서 얘기하죠. ”


우 부장의 말에 기이한이 잠시 당황한 듯 대표와 관리이사, 영업팀장을 훑어보더니 이내 임묘한에게 시선을 향했다.

임묘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은 우 부장이 앉아 있는 일 인용 소파 좌우로 길게 놓인 소파에 줄줄이 늘어 앉았다.

마치 우 부장이 회의를 주관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모두 자리에 앉고 양복쟁이들이 문 앞으로 창문으로 방벽 비슷하게 자리를 잡자 임묘한이 우 부장에게 말했다.


‘ 말해 보시오. 대체 어떻게 거기서 살아난 거요? “


우부장은 피식 웃으며 머리카락 한올 없는 파리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 눈앞에서 콘크리트 벽이 녹아내리는 정경이 아직도 생각이 나.

그리고 일어난 폭발에 나는 어디로 떨어진 건지도 몰랐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방이 다 트여 있더구먼. 모든 건물이 다 없어졌더라고.

그리고 온통 시체 투성이었어. 아니, 그걸 시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 녹아서 온갖 잔해들이 엉겨 붙은. 난 그 죽은 자의 길을 걸어 끝없이 걸었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어.

그곳을 벗어나자 군인들이 엄청나게 달려오더구먼.

물론 내 몰골이야 볼 게 없으니 그들의 관심대상은 아니었지만.

의외로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을 뻗는 사람들이 있었어.

그들이 보기에 아마 내가 폭발 주변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 보였을 테니까.

그런데 말이야.

이상하게 조금의 시간만 지나면 그들이 헛구역질을 하면서 쓰러지더라고.

코피를 줄줄 흘리기도 하고.

난 당황했어.

아마 그 원폭피해 같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

아무래도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으니까.

당황한 나는 그들을 피해 계속 남쪽으로 생각되는 방향으로 이동했었어.

그렇게 숨어 숨어 도망을 쳐도 가끔 그들의 검문에 걸리기도 하고.

근데 한결같더군.

나를 구속하려 하던 군인이든 뭐 경찰 같은 건지는 몰라도 제복들.

그들 모두 나와 대화를 나누곤 조금 있으면 다 픽픽 쓰러지는 거야.

이건 내게 새로이 주어진 능력이 아닐까?”


우 부장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대표와 관리이사, 영업팀장이 억지로 구토를 참는 게 보였다.

이내 임묘한도 기이한도 코피가 흘러내리고,

뒤에서 인의 장벽을 쌓고 있던 양복쟁이 무리들도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러건 말건 우 부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 임 과장. 혹시나 싶어 얘기하는 건데, 쓸데없이 지원 요청하지 마시오.

내가 그 난리가 난 지역을 그냥 온전히 왔겠어?

그러니 쓸데없이 죄 없는 군인들 죽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당신들 에게 손을 쓸 필요는 없을 거야. 원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저주 일지도 모르지만 그 사건 이후로 없던 힘이 생긴 후유증 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난 살아있는 재앙이더라고.

오는 길 내내 마주치는 사람들이 다 무슨 가스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쓰러지기에 남쪽으로 넘어와선 나도 이것저것 알아보았지.

그게 아마도 급성 방사선 증후군이라고 하더구먼.”


말을 끝낸 우부장이 소파에서 흐느적거리는 기이한의 양복 깃을 잡더니 담뱃갑을 아예 꺼내 들어 다시 새로운 담뱃불을 붙였다.

그의 행동을 맥없이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사색을 넘어 절망적인 표정이 되었다.


“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몰라.

어쨌든 나는 원자로 폭발에도 죽지 않는 몸뚱이란 건 알았어.

게다가 그 후유증인지 능력인지 몰라도 내 몸에서 엄청난 방사선이 방출되는 건 알겠더군.

나와 마주친 사람이란 한결같이 다 픽픽 쓰러졌으니까 말이야.

아마 당신들도 곧 다 그렇게 될 거야.

아쉬운 일이지.

당신들이 좀 더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은데. ”

서울의 여기저기에 방사능 이 유출되었다는 뉴스가 긴급 보도되었다.

석 달여 전 북한지역에서 발생한 사고로 기화되었던 방사능 구름이 특정 지역에 소나기로 내린 게 아니겠느냐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보도 자료로 첨부되었다.

군에서는 긴급 방독 처리반이 투입되었지만 범위가 좁고 길어서 방사능 제거 작업에 난항이 예상되었다.

애꿎은 사람들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병에 걸리거나 죽어갔다.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 생존대책을 강구하라는 소요가 매일 여기저기서 벌어졌고,

방송에서는 긴급한 일이 아니면 가능한 출근을 억제하고 재택근무를 권장했다.

어쩔 수 없이 야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방사선을 차단하는 비옷을 입으라고 하여 근본도 없어 보이는 방사능 차단 비옷이 날개 돋치듯 팔렸다.


남해 무인도에 이따금 푸르스름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는 밤 낚시꾼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유령 이라고도 하고,

언젠가 유튜브에 존재했던 울트라 맨이 사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들을 했다.

그 무인도 근처에 낚시를 하러 접근했던 사람들이 자꾸 암에 걸리거나 급성 방사선 증후군에 걸리자 남해군에서는 해당 무인도 주변 수역에 접근금지 표지판을 설치했다.

그리곤 세월이 지나자 모두의 뇌리에서 잊혔다.


우 부장의 가족들은 갑자기 출장을 떠났던 우 부장이 ’ 국가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을 했다고 하니 어리벙벙해졌다.

존재감이 오직 경제적 이유 외에 없던 가장이지만,

그랬기에 더 충격을 받고 한동안 울음바다가 있었다.

그래도 국가에서 보상금이 나오고, 이주할 주택이 나오고,

매 달마다 연금이 지급된다고 하니 우 부장의 가족들도 점차 안정이 되어갔다.

때론 거칠게 때론 고요하게 일렁이는 바닷물을 바라보는 우 부장의 시선은 고요했다.

이제야 모든 짐에서 벗어난 것 같은 기분.

자신의 은퇴라는 게 일평생 돈벌이를 해도 끝이 안 날거라 막연히 짐작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더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된다면 어찌어찌 또 살아가겠지,

막연한 마음으로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 은퇴‘라는 게 차마 이런 식으로 오게 될 줄은 짐작조차 못했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에게 짐을 지우던 존재들은 모두 사라진 셈이니.

굶어도 괜찮고 물을 마시지 않아도 괜찮다는 건 한편으론 축복이지만,

그럴 낙도 없다는 건 또 한편으론 사는 재미라곤 없는 일상이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이 년의 시간을 보냈던 우 부장은 이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갈 수 도 없고 사람들과 접촉도 할 수 없게 된 셈이지만.

우 부장은 해변의 조약돌을 주워 물수제비를 띄웠다.

몸이 이렇게 변해도 우 부장의 물수제비 실력은 나아지지 않아 퐁당 두 번만에 가라앉았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평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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