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잡월드

#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by 황여사

유치원 교사직을 끝으로 나는 결혼과 동시에 가정주부로 이직을 했다.

결혼과 동시에 선물 같은 첫 아이의 임신과 출산을 순식간에 해치운 나는 육아에 전념하며 엄마로서 느끼는 행복을 만끽했다.

그 행복은 둘째 아이가 합류한 후에도 지속되었고, 두 아이를 양육하며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인생이란 이런 것인가 하며 오만방자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지루할 만큼 평온한 삶을 살던 나는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 엉겁결에 대학원 공부를 하게 되었고, 학위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 좋게 나는 부모교육 강사가 되어 있었다.

사주에 입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운명이라 집에 가둬놓아도 나가서 통반장이라도 해야 숨 쉬고 산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나는 마이크를 잡는 순간 나의 사주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신들린 수다를 털어냈고, 대중들 앞에 서있는 나는 이미 관종 그 자체였고, 나는 드디어 나의 천직을 찾아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나의 인생은

둘째 아이가 엘리트 운동선수의 길을 선택하게 되며 커다란 소용돌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운동이라곤 숨쉬기를 제외하고는 적대시하던 나는 험하다고 소문난 운동부 부모들의 공간 속에 들어서면서 마이크를 잡던 손으로 흙범벅이 된 운동복을 손빨래하기 시작했고, 강의를 하기 위해 서울 인접지역을 다니던 나의 애마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지방 곳곳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비겁한 자기변명이지만, 엘리트 선수를 만들기 위한 길은 아이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프레임에 갇혀 나는 점점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내가 아닌 아들을 위한 삶을 살기 시작했고, 그 허무함을 깨닫게 되는 데까지 몇 년 걸리지 않았다.


나의 아이에게는 이제 더 이상 나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았고, 나의 관심과 헌신보다는 물질적인 서포트가 훨씬 더 필요하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 나에게는 경단녀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좌절할 틈도 없이 온정성을 다해 작성한 이력서를 준비해서 더 치열하고 험한 정글로 뛰어들었고, 마침내 나는 다시 은퇴했던 사회라는 무대에 컴백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살아왔다.

솔직히 돌아보면 자의에 의한 상황변화로 업종을 변경한 경우가 더 많기는 하다.

둘째 아이의 진학에 따라 근무지를 변경해야 하기도 했고, 아이의 훈련이나 경기 일정 때문에 근무일이나 시간을 조정해야 하기도 했기에 또 다른 직장을 찾아야만 하기도 했다.


어느 날 새로운 곳으로 이직을 하기 위해 면접 준비를 하는 나를 보던 큰 아이가 질문을 던졌다.

"엄마 또 직업을 바꾸는 거야? 엄마는 잡월드 같아"

신박한 큰 아이의 비유에 나도 모르게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 참고로 잡월드는 경기도 분당에 위치하고 있는 아이들 대상의 직업체험테마 공간이다.***


맞다!

나는 잡월드였다.

누군가는 한 우물을 파지 않는 나를 색안경을 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다양한 업무를 거쳐서 현재까지 버텨왔다는 것은 누구보다 참 성실하게 업무 수행을 잘해왔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나의 경력에 녹아있는 땀과 눈물과 시간들이 인정받지 못했다면 그렇게 많은 직업을 거쳐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

잡월드라 불리는 나의 화려한 이력들은 치열하지만 열정적으로 버티고 살아온 나에게 수여한 훈장이라 생각한다. 반 백 살이 넘은 지금도 현장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법 기특하지 아니한가...


나는 여전히 가슴에 빛나는 훈장을 달고 오늘도 전쟁터로 출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