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아빠한테 여자친구가 생겼어요.
어느 날, 여섯 살 우미가 등원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교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매일 엄마 손을 잡고 등원시간보다 10~15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자유놀이를 즐기던 아이인데,
어쩐 일인지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이 등원을 하지 않아서 궁금해하고 있었다.
우미는 '나는 귀하디 귀한 외동딸이에요'라는 냄새를 온몸에서 풍길 정도의 해맑음(?)으로 학급분위기를 잡아야 하는 학기 초, 요주의 인물 중 1순위였던 아이였다.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도착해서 교실 안에 있는 모든 교구들을 마치 자기 것 인양 주인행세를 하기도 하고, 그런 소유권 전쟁으로 친구들과 자주 다퉈서 늘 아침시간에는 피의자(?)의 신분으로 솔로몬의 심판이 열리게 했던 주인공이었다.
때론 자신은 의자에 앉아있는 게 너무 힘들다며 수업 중에 갑자기 소꿉방으로 걸어가 벌렁 누워버리기도 했고, 점심시간 자신은 이걸 먹으면 기침이 나와서 힘들다며 끝까지 김치를 거부하기도 했던 그녀였다.
그래도 가끔은 그동안 받아 온 사랑의 양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정이 많은 아이었고, 특히나 미술시간에는 남다른 감성과 집중력으로 나를 놀라게 할 때가 많은 그녀와 나는 애증의 관계였다.
그런 그녀가 없는 교실의 평온함이 오히려 불안하기 시작했고, 나의 시선은 자꾸 창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올 때쯤 드디어 그녀가 커다란 선글라스를 쓴 엄마 손에 이끌려 교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남기고 어머니는 우미의 손을 나에게 바통터치하시고는 쏜살같이 사라지셨고, 나는 점심시간 배식을 시작하느라 잠시 그녀를 잊고 있었다.
하나둘씩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교실로 올라가기 시작할 때,
그제야 밥알을 세고 있는 그녀를 마주하게 되었다.
"입맛이 없어?" " 어디가 아파?" "반찬이 맘에 안 들어?"
그렇게 쉼표 없는 질문을 마구 던지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그녀는 조용히 돌덩이를 던졌다.
"아빠한테 여자친구가 생겼대요"
순간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하는지 표정관리가 안되던 나에게
해맑은 그녀의 다음 대사가 더욱 커다란 바위가 되어 던져졌다.
"그런데 엄마는 아빠 여자 친구가 싫대요. 그래서 엄마랑 아빠가 싸웠어요.
나는 남자친구들보다 여자친구들이 가 더 좋은데..."
아이들은 지나치리만큼 솔직하게 자신들의 가정사를 교사인 나에게 고백한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목소리를 높여서.
자신들이 누구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버린지도 모른 채.
이십 대 초보 교사였던 나에게는 아이들의 논높이에 맞춰 어른들의 세상을 일일이 이해시킬 능력은 없었다.
단지 그들의 관심을 돌릴만한 놀잇감으로 재빨리 그 순간을 모면할 뿐.
슬픈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 같은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 하는 그녀와의 점심시간은 나의 재촉으로 그렇게 끝을 맺었다. 우미 아버님의 여자친구이야기는 그렇게 영원히 묻어둔 채로.
세상 해맑았던 그녀는
지금쯤 어느 하늘아래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