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벤츠에게 지고만 나
강남 대치동에 있는 입시컨설턴트 회사에 다닐 때 일이다.
그곳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으로 컨설팅 상담을 신청한 고객님 댁에 직접 방문 상담을 나가서, 학생을 테스트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부족한 과목에 대해 담당강사를 지정해서 수업을 매칭시켜 주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회사였다.
큰 아이의 입시를 경험해 본 게 전부였던 나는 포털사이트를 통해 입시컨설턴트 강사모집에 용감하게 이력서 날렸고, 부모교육강사 이력을 높게 평가받아 다행히 합격되었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고 했던 어느 야구선수의 말처럼,
나는 대표님 이하 매니저들 앞에서 입시 관련 PPT를 준비해서 발표해야 하는 테스트를 통해 나의 강의 능력을 평가받아야만 했다.
자기 주도적으로 입시를 치렀던 큰 아이 덕에 크게 관심 없었던 나는 대한민국 입시전형들을 밤새워 공부하고 제작한 PPT를 여러 번 암기하고 수정하고를 반복한 후에 살 떨리는 테스트를 멋지게 통과했다.
그러나 인생에는 늘 예기치 못한 불행이 조용히 찾아오듯 입사 후 코로나로 인해 강의일정은 모두 사라지고
당분간은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때를 기다리자는 대표님의 말씀으로 나는 그날로 입시컨설턴트 매니저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입시컨설턴트 매니저 팀장님으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은 나는 살짝 황당한 근무 시스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상담이 마무리되면 수업진행에 앞서 계약금의 일부인 오만 원을 선금으로 받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노쇼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라는 것이었다.
방문 상담도 어색한 나에게 수금(?)을 해오라니... 이건 마치 방판을 하는 영업사원과 다를 바 없었다.
첫 방문상담을 반포의 한 아파트로 나가게 된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할 수 있다!'를 외치며, 큰 호흡을 여러 번 한 뒤 초인종을 눌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랜 시간 우수한 의료기술로 관리를 받아 온 듯한 느낌을 풍기시는 어머니가 교양을 듬뿍 담은 어투로 나를 맞아주셨고, 간단하게 회사 소개를 마친 나는 바로 학생 테스트를 시작했다.
테스트 결과, 나는 열변을 토하며 30분 넘게 학습상담을 해드렸고, 학생 학습상태의 심각함을 감지하신 어머니는 그동안 학생이 다니는 학원을 믿고 있었다며, 이렇게 관리가 안되고 있는 줄 모르셨다며, 자신의 관리 소홀을 자책하듯이 처음과 다른 안색으로 변하셨고 제발 훌륭하신 강사를 하루빨리 섭외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드디어 선금에 대해 말해야 할 타이밍이 되었다.
나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미소를 장착한 채 계약서를 내밀었고 용기를 내서 선금에 대해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어머니의 핸드폰이 울렸고, 어머니는 투정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아마도 학생 아버지와의 통화이신 듯했다.
"응... 아니야. 여보 나 속상해... OO이 성적 때문에...."
세상 제일 슬픈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대사를 이어가던 그 순간,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꺄악~~~~~~진짜? 진짜야?
지금? 지하주차장에?
정말? 알았어 금방 내려갈게"라고 급하게 통화를 마치시고는 흥분된 어조로 말씀하셨다.
사실 내일이 자기 생일인데 남편이 벤츠를 선물해서 지금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며
그래서 지금 내려가 봐야 한다고...
좀 전에 세상이 무너져버린 것 같았던 그 어머니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다.
정신없는 반전 상황에 당황해하는 나에게 오늘은 그냥 가시고 다음에 다시 와달라는 말을 남긴 채 뒤도 안 돌아보고 현관문을 나가버리셨다.
결국 나는 그렇게 선금 오만 원을 받지 못한 채 씁쓸하게 그 집을 나왔다.
그날 나는 벤츠에게 그렇게 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