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잡월드

# 3. 아이가 되어버린 아버지

by 황여사

반백살이 되면서 앞으로 내가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솔직히 20대의 나는 내가 50대 문턱에 들어서면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국적이고 특색 있는 문화들을 경험하면서 사는 그림을 그리곤 했었다.

삶이란 역시 내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았고, 난 여전히 나의 불안한 미래를 위해 준비를 해야만 한다.


그때쯤 나의 시선을 끈 것이 바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영역을 교육을 하는 실버강사였다.

성격 급한 나는 관련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두뇌 훈련, 인지 교구, 미술, 음악 등 순차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얼마 되지 않아서 의왕시에 있는 주간보호센터로 수업을 나가게 되었고, 인지발달등급이 다른 어르신 40명을 대상으로 인지발달 교구 수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첫 수업일.

살짝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수업 내용을 계속 떠올리며 센터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때 입구부터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시는 남자 어르신을 바라보게 되었고, 혹시 오늘 수업을 들으러 오신 분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며 인사를 드려야 하나마나를 망설이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려버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급하게 센터로 들어가시는 어르신을 보며 나의 추측이 맞았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뒤에서 같이 내리던 젊은 남성이 어르신을 향해 소리쳤다.


"아빠? 잘 지내다 오셔. 이따 저녁에 모시러 올 때까지 기다리고 계세요. 네?"


아들이었다.

아들은 뒤로 안 돌아보고 센터로 들어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문이 닫힐 때까지 바라보다 뒤돌아 섰다.


몇십 년 전,

아마도 유치원이나 학교 등교를 위해 아들은 아빠의 손을 잡고 함께 걸었을 테고, 그렇게 교문을 들어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다 발길을 돌리셨을 거다.

그랬던 두 사람이 세월이 흐르고 흘러 각자의 역할이 바뀐 지금. 서로의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보호를 받던 아들은 이제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었고,

아들에게 든든한 울타리였던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아들을 지켜줄 수 없다...


기억의 어느 만큼을 지워버린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연민이 고스란히 전해지던 그때의 강렬한 느낌은 지금도 나에게 고스란히 남아있다.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것이 슬픔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이 앞으로 더 자주, 더 빠르게 나를 위협할 것이다.

어디론가 새어나가는 나의 기억을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엄습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일들을 미리 걱정하고 있기에 반백살은 여전히 젊다.


누군가 나에게 남은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70세에도 핑크 컬러의 앞 트임 스커트에 7센티 펌프스 힐이 잘 어울리는 세련된 할머니가 되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지금도 근무하지 않은 휴일이면 아직도 허벅지가 드러나는 반바지를 즐겨 입고, 강렬하고 매트한 레드 립스틱을 선호하며, 결정적으로 스물다섯 딸내미와 의상을 공유하는 반백살이라 세상의 어떤 잣대에도 나의 늙음은 언제나 당당하고 싶다.


내가 7센티 힐에서 내려오는 날.

그때쯤에는

나의 딸과

나의 아들도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나의 손을 잡아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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