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처음이자 마지막 무급 계약직
어떤 한 남자를 만나면서 내 인생 유일하게 무급으로 일을 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 남자는 자만과 오만으로 둘러싸여 거침없이 살던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로 흔들었다.
내 나이 서른 하고도 세 살에 강렬하게 만난 그 주인공은 바로 나의 아들이다.
출산 전부터 아들이 태어나면 운동선수로 키우겠다는 남편의 철저한 계획에 의해 그는 유치원에 다니기도 훨씬 전부터 동네 Gym에서 체력단련을 시작했고,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상위 5%의 운동능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나서는 수영, 태권도, 축구, 등 다양한 운동 레슨을 소화해 냈다.
그러던 중 그가 본격적으로 선택한 종목이 바로 야구였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시작한 아들의 엘리트 선수 생활은 우리 가족 삶의 패턴을 바꿔 놓았다.
나는 하던 일을 중단하고 아들의 경기 스케줄에 맞춰 모든 일정을 조정했고, 졸지에 세 살 터울의 큰 딸은 엄마 없는 소녀가장이 되어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 놀라운 자립심을 키우게 되었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 정말 미안하고..... 고맙고.....사랑해 )
아들이 동계훈련을 위해 아랫 지방으로 가게 되면 나는 여지없이 도우미로 일주일을 선수들과 함께 체류하면서 소위 뒷바라지라는 걸 해야 했다.
모든 업무를 마치고 함께 도우미를 하는 어머니들과 방 한편에서 조용히 수다떨며 감독, 코치님 몰래 들이키던 알코올의 시원함을 잊을 수가 없다
중학교 야구부에 진학한 아들을 아침, 저녁으로 등, 하교를 시키던 어느 날 감독님으로 부터 야구부 총무 역할을 제안받았다. 말이 제안이지 그것은 군대의 명령과도 같았기에 나는 그날부터 야구부 총무가 되었다.
나의 업무는 아이들이 학교수업이 끝나갈 무렵 학교로 출근을 하며 시작되었다.
출근하자마자 운동복으로 환복 하느라 전쟁터가 된 야구부 휴게실에 청소기를 돌리고, 아래 윗 층의 청소가 끝나면 당시 선수들에게 직접 식사를 준비해서 먹일 때라 전 날 미리 주문해 둔 식재료를 씻고 다듬는 일부터 시작한다. 조리를 담당해 주시는 실장님은 셰프가, 나는 주방 보조가 되어 실장님의 지휘아래 부지런히 움직여 저녁을 준비하고나면 땀과 흙이 범벅된 아이들에게 배식을 시작한다.
한 시간이 넘게 준비한 저녁 식사는 불과 십여 분 만에 끝이 나고 그제야 실장님과 한술을 뜨기 위해 자리에 앉는다.
몇 십 마리의 닭을 튀겨 낸 날은 땀과 기름냄새에 절어 식사를 건너뛰기도 했다.
솔직히 지금까지 쌓아온 나의 커리어들 중에 이처럼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휴일 근무도 부지기수이며, 연차나 반차는 물론 육아휴직도 없이 업무 강도가 센 일은 없었다. 더군다나 무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고 보니 내가 경험한 업무들 가운데 가장 강한 소속감을 느꼈고, 가장 짜릿한 성취감도 느꼈으며 유일하게 명예로운 퇴사를 했던 직업이 야구부 총무어머니였다.
솔직히 나는 봉사정신이 투철하거나 이타심이 불타오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로지 아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덕분에 가장 행복 했던 추억을 퇴직금으로 받았다.
지금도 나의 아들은 대학에서 학생이자 선수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고3 시절,
모두가 될 거라고 장담했던 프로 드래프트에서 탈락을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목놓아 우는 아들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인생 첫 실패를 경험한 아들의 눈물은 너무나도 아팠다.
하지만 아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이제 내년이면 4학년이 되어 다시 드래프트에 도전을 하게 된다.
결과에 상관없이 열한 살부터 시작한 야구를 10년이 넘게 꾸준히 해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같은 일을 10년 이상 해 본 경험이 없는 나기에 험하고 거친 운동세계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는 것만으로도 아들의 끈기와 오기를 높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숨쉬기만 해도 땀이 나는 무더운 올 여름, 비 오듯이 땀을 흘리며 운동장을 뛰고 또 뛰어도 그는 아직도 야구가 재미있냐는 나의 질문에 웃음으로 대답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를 목놓아 응원한다!
야구하는 원숭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