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잡월드

# 5. 굿바이, 나의 스파이!

by 황여사

일을 하면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동료로 만났다.

그중에는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에 온 이방인들도 제법 있었다.


초등 전문 어학원에서 교수부장을 할 때 만난 비앙카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명문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 5년째 되는 검은 피부색의 미혼 여성이었다.

그녀는 차분하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보였고, 미팅 때나 회식 자리에서도 나서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이라기보다는 조용히 경청하는 편이었고, 모든 나의 질문에는 거의 단답형 대답이 돌아오곤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와는 왠지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학부모님의 컴플레인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사건인 즉, 자신의 아이가 같은 클래스의 학생이 뒤에서 밀어서 교실문에 머리를 부딪혔고, 지금 혹이 크게 났다며, 매우 흥분한 말투로 15분 가까이 정황 설명을 이어가셨으며 식을 줄 모르는 화는 점점 고조되어 교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담당선생님에게로 화살을 돌리셨고 그 화살은 담당선생님이었던 비앙카를 향해 날아갔다.


일단 사건 정황을 확인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흥분한 학부모님을 진정시킨 나는 비앙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당황한 표정의 비앙카는 자신은 쉬는 시간이라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다며 그 사건의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다는 말과 설령 그런 일이 있었으면 아이들이 먼저 이야기했을 텐데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며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비밀이 하나 있다.

원어민 선생님과의 수업시간에는 No speaking Korea! 절대 한국말을 쓰지 않는 것이 수업의 규칙이다.

그러나 영어에 서툰 아이들이나 장난기 많은 아이들은 원어민 선생님이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고 한국말을 사용할 때가 종종 있다. 심한 경우 원어민 피부색에 대해 비하하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철없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모르고 있는 일급비밀.

비앙카의 한국어 실력!

비로 그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5년째 살고 있던 비앙카는 당장 한국어 능력시험에 응시해도 될 만큼의 듣기와 말하기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비앙카가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하고 발칙하게 한국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의 말들을 그녀는 모두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났다는 그날은 아이들 사이에서 전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기에 비앙카는 전혀 몰랐다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나는 바로 원장님에게 보고를 했다. 그리고 그 교실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확인했다.

확인해 보니,

그 아이는 쉬는 시간 뒤쪽을 바라보며 교실로 들어오다 교실문에 머리를 부딪혔고,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아이가 뒤따라 들어오면서 그 모습을 보고 웃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피해자를 자처했던 그 아이의 메서드 연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학부모님에게 다시 전화를 드렸다.

예상했던 대로 CCTV에 찍힌 모습을 전해 들은 학부모님은 나의 예상대로

"우리 애가요? 그럴 리 없는데... 확실해요? 라며 재차 물으셨고, 본인이 직접 확인해야겠다며 빛과 같은 속도로 학원으로 오셨다가 영상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시더니 아까와 같은 속도로 학원을 떠나셨다.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을 만나 보면 자신의 아이들과 관련된 문제 앞에서는 이성을 놓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모든 사건의 전후를 살필겨를도 없이 자신의 아이가 겪은 모든 일들이 블록버스터 액션물이 되고, 심하면 스릴러로 장르가 변경되기도 한다.

나 역시도 과거에 그런 감정을 잠시 느낀 적이 있었던 터라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메서드 연기를 펼쳤던 그 아이도 부모님의 집요한 추궁(?)에 못 이겨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던진 한마디에 자신도 모르게 일이 커져버려 차마 수습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순간, 떠오르는 얼굴.

비앙카......

학부모님의 등장으로 좁은 교실에서 노심초사하고 있었을 비앙카에게 일은 잘 해결되었으니 이제 안심하라는 말을 전하는 순간, 그녀는 비로소 엷은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Thank u!"를 연신 던졌다.

아마도 타향에서 자기편이 되어주고 자기 대신 학부모님을 상대해 진실을 밝혀준 내가 고마웠을 듯.


그 일이 있은 후

아이들은 여전히 그녀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한국어를 사용했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급 못 알아듣는 연기를 하는 비앙카는 곧장 나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른바 스파이가 되었다.

누가 다른 학원으로 가려고 한다는 둥,

누가 어떤 아이를 왕따를 시키고 있다는 둥,

비앙카는 종횡무진 나의 눈과 귀가 되어주었고, 우리 사이의 거리감은 점점 좁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원장님의 개인 사정으로 학원문을 닫게 되어 나는 다른 학원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내가 나오고 얼마 후에 비앙카는 공부를 좀 더 하고 싶다며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들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그녀와 제대로 된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했는데...


그녀가 스파이였다는 사실은 영영 나의 기억너머에 묻어둔 채 이 글을 통해 못다한 인사를 전해야겠다.


Good Bye, my s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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