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일 잘하는 여우 vs 일 못하는 곰
내가 어렸을 적 읽었던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는 매우 영리하고 이기적인 역할로 자주 등장했었던 것 같고, 반면 곰은 우직하고 성실한 역할을 담당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두 동물이 어떤 캐릭터로 비유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여우와 곰을 운운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만났던 나의 업무 파트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내가 해 온 일들은 타인과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업무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에게 파트너와의 호흡은 업무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어떤 파트너들과 함께 일을 하느냐에 따라 업무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일의 완성도가 향상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만났던 파트너들 중에는 이솝우화 속 여우도 있었고, 곰도 있었다.
일 처리가 빠르고 능숙하지만 이기적이고 영악한 여우 같은 캐릭터의 사람들도 있었고, 일 처리가 서툴고 느려도 성실하고 의리 있는 곰의 캐릭터를 닮은 사람들도 있었다.
근무했던 영어학원에서 운영하는 오프라인 영어도서관에는 여우와 곰이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나이차이는 네다섯 살 정도 났는데 나이가 더 어린 교사가 3년 정도 일찍 입사를 해서 도서관 팀장님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들의 업무는 매 시간 4~5명의 학생들을 나누어서 영어 독서프로그램을 지도하는 것이었다.
매 시간 배정되는 아이들의 인원수가 달라서 그때그때 융통성 있게 학생들을 나누어서 지도하곤 했는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부터 시작되었다.
도서관 프로그램은 담당 학생들에게 책을 선정해 주고 학생의 수업 후 리포트를 작성한 다음 두 교사가 함께 학생들이 읽은 도서를 정리하면 마무리된다. 팀장님은 빠른 일처리로 자신이 맡은 학생들의 수업이 끝나면 신속하게 리포트를 작성하고 후임 선생님의 리포트 작성이 끝나기 전에 도서들을 혼자 정리하곤 했었다.
처음에는 일 처리가 느렸던 후임 선생님은 그런 팀장님에게 미안함을 자주 말하곤 했는데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매번 도서 정리는 팀장님의 몫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도서를 정리하는 팀장님의 표정이 유난히 어두워지는 걸 느꼈을 즈음, 그녀는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솔직히 상담이라기보다 이번 달까지 근무를 하고 그만두겠다는 통보였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일단 나는 사유를 말해 줄 수 있냐고 물었고, 처음에는 개인적인 일이라고 얼버무리던 팀장님은 집요하게 파고드는 나에게 후임 선생님에 대한 푸념을 시작으로 그동안 쌓여 온 고름(?)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후임 선생님의 일처리가 너무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후임 교사가 성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리포트 작성에 서툰 자신을 대신해서 써달라는 부탁을 종종 했었고, 학부모님에게 리포트를 잘못 전달하는 실수를 팀장님이 대신 무마해주기도 하는 등,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도 도저히 업무가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자신이 지속적으로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상황이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팀장님의 하소연에 나는 1시간이 넘게 그녀를 달래고 또 달랬다.
그러나 그녀는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더니, 결국 그렇게 학원을 떠났다.
처음에는 그 정도 일로 매정하게 떠난 팀장님이 야속했지만, 팀장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특히나 팀장님처럼 책임자의 위치에 앉게 될 경우, 자신의 실수가 아닌데도 동료의 실수로 인한 뒤처리를 매번 해야 하는 그런 상황들이 매우 답답하고 불편하다는 것을 경험해 봤기에 떠나가는 그녀를 더 이상 잡을 수는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일은 잘하는데 영악하고 이기적인 여우와 성실하고 노력은 하지만 일에 서툰 곰 중에서 어느 쪽을 파트너로 선택하겠냐고 질문을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여우를 선택할 것이다.
이런 선택은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고, 어쩌면 위험한 선입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켜본 바에 의하면 우리가 흔히 일머리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도 업무 능력이 향상되지 않거나 향상되는 속도가 매우 느렸었다.
그런 동료와 함께 일을 해야 하는 것은 고구마를 열개정도 한 입에 털어 넣은 느낌과 사뭇 다르지 않다는 것을 경험해 본 나이기에 차라리 자기 역할은 거뜬하게 해내고 나서 당당하게 이기적인 사람을 겪어내는 것이 그나마 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파트너들 중에는 여우도 있고, 곰도 있다.
재미있는 점은 누가 여우인지, 누가 곰인지 그들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특별히 여우와 친하다거나, 유난히 곰을 멀리하지 않는다.
그냥 한 발짝 떨어져서 보이지 않는 나만의 거리를 둔 채 그들과 공존하고 있다.
더불어 나는 항상 내가 곰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나이가 들수록 젊은 동료들에게 여우가 되기 위해 처절하게(?) 최선을 다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지켜온 사회생활을 위한 나만의 현명한 노하우이다.
오늘도 늙은 여우는 곰잡으러 출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