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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Jun 28. 2024

천사, 우리 부장님

학교 4

작년에 부장님이 나를 차로 집에 데려다주신 적이 있다. 굉장히 내성적인 나는 부장님이 데려다주겠다고 하셨을 때, 집에 가는 길이 어색할 거라는 생각에 긴장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평소 친한 선생님이 데려다주겠다고 했을 때 좋아하며 수락하는 모습을 부장님에게 많이 보였기 때문에 부장님의 제안을 거절하기는 곤란했다. 그래서 그날, 부장님과 단둘이 퇴근길을 함께 하게 되었다.


10여 분의 짧은 퇴근 시간이 지나고 부장님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데 문득, 내 얘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장님은 계속 나에 관해 물어봐 주셨고, 나는 거기에 대답을 열심히 하다 보니 10여 분을 나 혼자 나불나불 떠들다 집에 도착한 것이다. 덕분에 나는 어색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처음의 긴장과 걱정을 신경 쓰지도 않고 아주 편안하게 집까지 갈 수 있었다. 참 좋은 부장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다행스럽게도 이때까지 나의 부장님들은 대부분이 좋은 분이었다. 천사 같은 부장님들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부장이라는 것을 하게 될 텐데,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부장님이 되고 싶다. 천사 같은 부장님이고 싶다. 어떻게 하면 좋은 부장이 될 수 있을까? 좋은 부장의 조건은 무엇일까? 이때까지 나의 부장님들은 어떤 좋은 점을 가지고 있었나? 한 번 정리해 보기로 했다.




1. 사소한 실수를 지적하지 않는다.


업무에 있어서 중대한 실수는 지적해서 고치도록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업무에는 아주 사소한 실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내용상 아무 문제가 없지만 공문서 작성 요령에 조금 어긋나는 종류의 실수나, 날짜나 시간 같이 내용이 잘못됐지만 활자 하나만 바꾸면 되는 작은 실수 같은 것들이다. 이런 사소한 실수를 나도 종종 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부장님은 본인이 직접 잘못된 부분을 고쳤고, 나에게 어느 부분을 고쳤는지, 내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일일이 지적해서 알려주지 않았다. 대부분은 뒤늦게 내가 실수를 스스로 깨달아서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사소한 곳에서 부장님의 작은 배려를 느낄 수 있다. 모든 실수가 고쳐질 때까지 지적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실수가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실수는 그날만, 우연히 발생하기도 한다. 아마 부장님은 내가 ‘오늘만 우연히 실수했을 것’이라고 믿고 아무 지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원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해야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부원을 신뢰하고 존중한다.


신뢰라는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부장이 부원을 신뢰하는 것은 당연히 매우 중요하다. 내가 출결 업무를 맡았던 해의 부장님은 사례별로 출결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애매한 상황일 때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항상 물어보셨다. 그리고 내가 내는 의견을 경청하고 적극 반영해 주셨다. 일의 절차는 사실 부장님이 나보다 더 잘 아실 텐데도 담당 부원의 말에 먼저 귀 기울이신 것이다. 그만큼 부원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원을 신뢰하는 만큼 부원의 의견을 존중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또, 당시 부장님은 중간중간 일을 잘 진행하고 있는지 과하게 점검하지도 않았고, 사소한 절차 하나하나에 직접 관여하지도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부원이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있을 것이라 믿고 기다렸다. 이것 역시 부원을 신뢰하는 데서 나오는 행동일 것이다. 그 속에서 부원은 오히려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3. 화(또는 잔소리)를 내지 않는다.


부장의 입장에서는 부원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부원의 행동에 화가 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까지 나의 부장님들은 한 번도 나에게 화를 낸 적이 없다. 내가 큰 실수를 저질러도 태연하게 수습해 주시고, 오히려 주눅 들어 있는 나를 격려해 주셨다. 부장님 혼자서 수습이 힘든 경우에는 같이 해결 방안을 고민해 주시기도 했다. 부장님은 화를 내지 않았는데, 그래서 나는 오히려 더 반성이 되었다.


4. 곤란한 상황을 책임져 준다.


업무상 말하기 곤란한 부탁이나 의견을 다른 부서에 전달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부장님은 부원 대신 본인이 책임지고 곤란한 부탁이나 의견을 다른 부서에 직접 전달해 주셨다. 또, 업무상 문제가 생기면 담당자인 부원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러라고 부장이라는 자리가 있는 거야.’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하시던 부장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필요할 때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주는 것. 그런 든든한 바람막이 아래서 부원들은 부장을 믿고 자유롭게, 당당하게 일할 수 있다.


5.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실없는 이야기라도 눈을 맞추며 공감한다. 자기 이야기를 길게 하기보다는 부원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궁금해해 준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는 것만큼 원초적인 기쁨은 없다. 또, 지나가다 툭 던진 말도 기억해서 세심하게 챙겨준다. 새로운 학교로 옮겨야 하는 해에 내가 지나가는 말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부장님은 그 지나가는 말을 기억해서 내가 떠나기 전날 ‘새로운 곳에서도 적응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 주셨다. 정말 감동이었다.




정리해 보면 천사같이 좋은 부장님의 조건은 ‘너그러움, 신뢰, 책임감’인 것 같다. 부원을 너그럽게 대하고, 부원을 신뢰하며, 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진다.


부장님들의 이런 모습은 여유로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스스로 여유가 없으면 결과가 잘못될까 불안하고, 남을 불신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갈등과 불편으로 표출된다. 결국 마음에 가득한 여유가 너그러운 태도와 신뢰와 책임감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니 좋은 부장님들의 특징을 나열하고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먼저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겠지.


언젠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책임감을 가진 채 부원을 신뢰하는 천사같이 멋진 부장님이 되기 위해, 지금부터 노력해야겠다. 항상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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