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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Sep 17. 2023

생물 선생님, 글을 씁니다.

학교 0

나는, 감수성이 풍부하다. 그래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뿐인 나뭇잎을 보고도, 역경에 버티고 이겨내는 모습이라 느끼며 감동한다. 바람은 나뭇잎을 떨어뜨리기 위해 계속해서 몰아치는 고난 같고, 흔들리는 나뭇잎은 그 고난에 흔들리며 괴로워하면서도 꿋꿋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기특한 청춘 같다. 사실은 그냥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나뭇잎일 뿐이지만. 그리고 나는, 감성적이다. 그래서 거위나 네모나 후라이의 꿈을 담은 노래를 들으면 한동안 그 가사에 빠져 몽글몽글한 감정을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어느 날은 노래를 부르다가 눈물이 터져 그 자리에서 한참을 펑펑 울기도 했다. 그때 그 노래는 임창정의 ‘소확행’이었는데, 정확히 왜 울었는지는 그때의 내 마음만 안다. 그만큼 나는, 예민하다. 나와 눈을 마주치는 사람들의 눈빛, 표정, 심지어 공기의 변화까지 감지하고 신경을 쓴다. 마치 하루 내내 쉬지 않고 작동하는 고감도 센서와도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소심하다. 남들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혼자 상처받기도 하고, 또는 내가 다른 사람을 상처입혔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이런 나의 성격은 학교생활을 힘들게 한다. 학교에서 남들과 똑같은 일을 겪어도 나는 남들보다 그 일이 마음에 더 깊이 박히고, 생각이 더 넓게 뻗친다. 그래서 쉽게 주눅 들고 우울해하고 절망한다. 학교생활 하기에 참 힘든 교사다.




너무 힘이 들 땐 종종 글을 썼다. 그때그때 내 마음 따라 시를 쓰기도, 일기를 쓰기도, 소설을 쓰기도 했다. 퇴근길에 마음속으로 쓰기도 하고, 거실에 자리를 깔고 앉아 연필로 꾹꾹 눌러 쓰기도 하고, 휴대폰 메모장에 타자로 토독토독 쓰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놀랍게도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시를 쓸 때는 나의 힘든 감정이 감상으로 바뀌고, 감정이 노래가 되어 나를 위로했다. 그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힘든 마음이 잠시나마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일기를 쓸 때는 내가 지금 왜 힘든지가 구체적으로 정리되었고, 감정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는 내 감정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다. 소설을 쓸 때는 나와 내 감정이 소설 속 주인공으로 치환되었고, 힘든 내 감정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었다. 나는 전지적인 작가였기 때문에 주인공인 나의 감정을 마음껏 결정할 수 있었다.


나에게 글은 신기했다. 어떤 형태든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절망의 늪에 빠진 나를 꺼내주거나, 스스로 늪에서 걸어 나오도록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종종 글을 쓴다. 내 마음을 활자로 꾹꾹 눌러 담아 온종일 그 속에서 춤을 춘다. 글은 내 이름처럼, 내 마음이 가물었을 때 내리는 촉촉한 단비 같다. 그래서 나의 필명 역시 ‘단비’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글을 쓰면서도 학교 이야기를 제대로 써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의 감정들이 가장 크게 요동치는 곳이어서, 본능적으로 회피한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부터 학교 이야기를 제대로 써 보려고 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학교의 일상을 이야기로 바꾸고, 나를 힘들게 하는 예민한 감정을 일기로 남겨 보려고 한다. 나는 작은 일에도 예민하고 소심해서 학교와 잘 맞지 않는 교사일지도 모르지만, 남들이 놓치기도 하는 많은 것을 보고 느껴서 여린 학생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줄 수 있는 섬세한 교사이기도 할 테니까, 글을 쓰면서 힘든 학교생활을 슬기롭게 지내보고자 함이다. 또, 나와 같이 예민하고, 소심하고, 섬세한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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