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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Oct 05. 2023

9점짜리 인생을 위하여

생각 1

종종 견딜 수 없는 우울감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무심코 나의 지나온 하루를 후회하고, 나의 성격과 행동을 질책하곤 한다. 이 예고 없는 우울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우울감을 조금이라도 덜 느낄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안고 지나온 나의 우울감들을 오랜 시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대부분의 우울감이 ‘지나친 이상’에서 온다는 것이다.


한때 연예인의 화려한 외모를 부러워하고 그들처럼 되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적이 있다. 연예인처럼 얼굴이 작아지고 싶었고, 예뻐지고 싶었다. 연예인처럼 예뻐지기에는 큰 얼굴이 콤플렉스여서, 수입이 생기자마자 얼굴 축소 관리를 알아보며 월급의 절반 이상을 에스테틱에 쏟아붓기도 했다. 심지어는 턱과 광대를 깎아버리는 성형 수술을 고민하기까지 했으니, 그 열망이 어땠는지 알만하다. 그래서, 그 열망대로 과연 얼굴은 작아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No'다. 수입이 생기기 시작한 해부터 3년여의 긴 시간을 얼굴 축소 관리에 집중했지만, 내 얼굴은 전혀 작아지지 않았다. 탄력은 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절망했다. 나는 왜 이렇게 얼굴이 크지? 나는 왜 연예인처럼 예쁘지 못하지? 턱과 광대를 소멸시켜주겠다는 성형 광고를 손에 간절히 쥐고 그렇게 불평을 했다. 얼굴 크기에 0점부터 10점까지 점수를 매긴다면, 내 얼굴 크기는 3년여의 노력을 쏟아부어도 결코 10점이 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얼굴이 크지?'에 대한 답은 사실 간단했다. 타고난 머리뼈가 크니까. 이 타고난 두개골이라는 것은 성형으로도 줄이기 어렵다. 나에겐 선천적으로 타고난 골격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열심히 노력한다고 갑자기 쪼그라드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 얼굴 축소 관리를 3년이 아닌 5년, 10년을 했어도 내 얼굴은 작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성형으로 뼈를 깎아낼 수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타고난 얼굴뼈가 작은 사람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복잡한 후 관리와 부작용에 대한 위험 부담도 안아야 했을 것이고.




내가 연예인 같은 작은 얼굴에 집착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10점 만점에 10점이 되기를 원한다. 10점짜리 외모, 10점짜리 재능, 10점짜리 인생. 하지만 모두가 모든 항목에서 10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평생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각자가 가질 수 있는 점수의 최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리가 짧은 체형을 타고난 사람이 완벽한 롱다리를 갖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누구는 어떤 항목에서 점수의 최대치가 9점인 반면 누구는 그 최대치가 5점일 수 있다. 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10점이 되지 못할 것이다. 최대치가 10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부인한 채 10점을 목표로 계속 노력한다면, 결국 그 끝은 실패와 절망, 우울과 자존감 상실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어떤 항목에서 타고난 점수의 최대치가 10점인 사람이 나이가 들거나 어떤 사건을 겪음으로써 최대치가 낮아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이가 들어 무릎에 퇴행성 관절염이 왔거나,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를 크게 다친 경우, 손상이 온 다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손상이 오기 전의 완벽한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다. 노화 또는 사고로 인해 다리가 손상을 입으면서 다리 건강의 점수 최대치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거 아프기 전의 10점짜리 건강한 다리에 집착한다면? 역시 스트레스와 우울이 끝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노력 끝에 허무함과 실망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우울이 끝을 차지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 10점짜리 가장 최고의 모습만을 목표로 삼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최대치를 인식하고 그 최대치에 가까워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9점이 최대치라면 9점, 또는 9점 가까이 가는 것을 목표로 하면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면 된다. 그 노력의 과정 자체를 사랑하면 더 좋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갖지 못할 10점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작은 얼굴에 대한 목표는 그 방향이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연예인처럼 얼굴이 작아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내가 작아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작은 얼굴을 가지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그래서 최대한 턱을 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얼굴이 부어 보이지 않고 나에게 어울리는 적절한 헤어스타일을 연구한다. 다이어트를 한다. 셀프 괄사 마사지를 한다. 여전히 작은 얼굴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목표의 크기는 많이 줄어들었다. 그랬더니 스트레스가 줄었다. '나는 왜 이렇게 얼굴이 크지?'와 같은 고민이 무의미해졌다.


많은 우울은 '절대적으로 내가 못나서' 생기지 않는다. 많은 우울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상과 나의 현실이 달라서' 생긴다. 따라서 내가 가진 한계를 바르게 인식하고, 그 한계 내에서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것이 우울감에서 해방되기 위한 첫 번째 과제이다. 나는 과연 이 항목에서 10점의 최대치를 타고났는가? 나는 10점을 가질 수 있는가?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오늘의 나 역시 10점이 아닌, 9점짜리 인생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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