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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Nov 02. 2023

생각 놓아두기

학교 1

수업이 일찍 끝난 어느 날이었다. 점심시간을 앞둔 4교시 3학년 수업, 남은 시간 학생들은 자습을 하고 있었고, 나는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30분이 되면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는데, 28분쯤이었나, 학생들이 어수선한 것이 느껴졌다. 30분 종이 땡 치면 곧바로 뛰쳐나가 밥을 먹으려고 그러는 것일 터였다. 나도 작업 중이던 문서를 저장하고 컴퓨터를 종료했다. 그러던 중에 29분이 되었던 모양이다. 학생들이 나 몰래 뒷문으로 슬금슬금 나갔는데, 내가 아차 하는 순간에 나가지 말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학생들 대부분이 우르르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아직 수업 종료령이 울리기 전이었는데. 뒤늦게 말리기에는 너무 많은 학생들이 단체로 나가버렸고, 아주 순진하고 착한 학생 한두 명만이 내 눈치를 보며 교실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리고 종이 울렸다. 멀뚱하게 서 있는 학생과 눈을 마주치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교실 밖을 나오니 그제야 교실 밖으로 빠져나오는 다른 교실의 학생들이 눈에 보였다. 유독 우리 반만 수업이 마치기도 전에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하루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내가 있는 교실의 학생들만 다 나가버렸을까, 다른 반 학생들은 다 착하고 순한데 내 반의 학생들만 그렇지 않았던 걸까, 내가 나가지 말라는 말을 안 해서 다 나가버린 걸까, 나는 왜 제때 말하지 못했을까, 그런데 말했다면 학생들이 안 나갔을까, 쓸데없는 생각들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마침 선생님들끼리 3학년 학생들이 너무 착하고 순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아닌데요. 안 순한데요.’ 이렇게 삐죽였다.


생각이 계속 확장되었다. 내가 만만해서 학생들이 막 행동하는 건가, 이제 그만 생각하고 싶은데 왜 자꾸 생각이 날까, 내가 소심해서 그런가, 이런 소심한 성격으로 교사를 계속할 수 있을까, 교사가 내 적성에 맞긴 할까, 고작 29분에 학생들이 단체로 나간 사건 하나로 여기까지 생각이 뻗쳤다. 은근슬쩍 선생님들에게 물었다. ‘3학년 학생들이 4교시에 종 치기 전에 저 몰래 나가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랬더니 선생님들은 다들 쿨하게 대답했다. ‘나가지 말라고 하면 되죠.’. ‘나가지 말라고 해도 나간다면요?’ 내가 되묻자 부장님께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럼 교권 침해라고 하세요.’. 뭘 그런 걸 걱정하냐는 의미를 담은 농담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생님들의 이 쿨한 대답들에 나는 더 의기소침해졌다. 나는 왜 쿨하게 이 상황을 넘기지 못하는 걸까?


지나치게 생각이 확장되는 것이 우울의 큰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담임교사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숱하게 겪었다. 상대방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나 혼자 그 사건과 상황에 갇혀서 끙끙대다가 스스로를 못난 사람으로 질책하고, 상처 입히고, 결국엔 무너지곤 했다. 나를 무너지게 만든 학생이 나를 보고 ‘힘내세요’ 응원한 아이러니한 상황도 있었다. 그만큼 별거 아닌 사건으로도 나는 잘 무너졌다. 그리고 그 모든 무너짐의 원인에는 생각의 확장이 있었다. 친구와의 아주 큰 다툼이 되짚어보면 작은 실수 하나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나를 삼키는 우울과 절망을 되짚어보면 작은 사건 하나가 있었다. 그냥 넘길 수도 있었던 아주 작은 사건이.


그러니까 결국 생각이 문제다. 이미 끝난 사건으로 끙끙대며 나를 상처 입히는 말로까지 생각을 확장하는 것이 문제다. 하기야, 이제 와서 어쩔 건가. 나갔던 학생들을 교무실로 불러서 왜 나갔냐고 윽박을 지를 건가, 내가 만만하냐고 소리라도 지를 건가. 생각해 봤자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붙잡고 계속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 외에. 그러니 지나간 일은 빨리 잊고,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지, 다짐을 하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내가 만만하나, 소심하나, 적성에 안 맞나,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저 멀리 던져버리는 편이 좋다. 그런 생각들이 나를 정말로 만만하고, 소심하고, 적성에 안 맞는 사람으로 만들므로.


그래서 이제 그만, 이렇게 글을 쓰는 것으로 내 생각을 덮어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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