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비 Nov 16. 2023

수능 감독을 했다

본부 관리 요원으로 수능 감독을 했다. 아직 본부 요원이 될 만큼 짬이 찬 건 아닌데, 교무부의 특권(?)으로 봉철 담당 관리 요원이 되었다.


6시까지 출근이었는데, 준비하다 보니 늦어진 데다가 평소 출근 시간과는 타이밍이 다른 신호 체계 때문에 새벽부터 헐레벌떡 뛰어야 했다. 평소 출근길에는 떠오르는 햇볕을 그대로 맞았어야 했는데 해가 뜨지도 않은 시간에 출근하니 눈 시린 햇볕은 없어서 와중에 기분이 좋았다.


시험지 상자 수량 확인을 돕고, 시험 본부와 감독관 대기실을 세팅하고, 아침을 먹고, 봉철 요원 연수를 하고, 시험실 별로 문제지 및 답안지와 바구니를 준비하고 나니 어느새 1교시 감독관이 입실할 시간이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감독관을 시험실로 보냈다.


책을 많이 읽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라는 책을 1년 내내 읽고 있는데, 오늘이 그중 20%를 읽은 날이다. 1교시 시작 전에 갑자기 교문 밖으로 사라진 아이, 다른 학교로 잘못 간 아이, 갑자기 기침이 시작된 아이, 아픈 감독관, 종소리가 울리는 옆 학교... 정신없었던 시간이 무색하게 책을 읽는 시간은 고요하고 잔잔했다. 본부 요원의 장점(?)이라면 일반 감독관일 때에 비해 시간 감각이 무뎌진다는 것이다. 핸드폰이 없는데도 시간이 잘 갔다. 어느새 1교시가 시작되고 어느새 1교시가 끝나고 그랬다. 일단 서 있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점심시간이 참 짧았다. 시험 마무리와 시작을 책임져야 해서 2교시 시험이 한창 진행 중인 11시 40분쯤 밥을 먹으러 급식실로 갔다. 10분이면 밥을 먹겠거니... 싶었는데, 한창 먹고 있는데 본부 요원들 빨리 올라가야 한다고 해서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쑤셔 넣었다. 선생님들이 어~ 소리를 내며 안타까운 반응을 했다. 좀 조신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점심시간이 더 길었으면.


간식을 많이 먹었다. 심심하면 귤이며, 차며, 과자며, 입에 집어넣었다. 친한 동료 선생님이 ‘다이어트 중인데 그만 좀 먹으라’며 놀렸다. ‘치팅’이라는 무적의 말로 받아쳤다. 통하진 않았지만.


4교시가 끝나니 5교시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이 생겼다. 학생들 빨리 집에 보내야 하니 답안지 빨리 확인하라고 해서 정신이 없었다. 4교시는 탐구라서 문제지에 보관 봉투에 뭐가 많아서 더 정신이 없었다. 선생님들도 정신이 없었는지 감독관 도장을 실수로 빠트리거나, 허공을 멍하니 보곤 했다. 다들 피곤에 잔뜩 절여져 있었다.


5교시가 끝나고 대충 정리를 하고, 교육청으로 답안지 제출하러 간 부장님을 기다리고, 교무부 저녁 회식을 하고 퇴근했다. 해가 뜨기 전 출근해서 해가 진 후 퇴근하니 오히려 시간이 하나도 안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가 왔다. 저녁 회식 메뉴 초밥은 맛있었다.


바로 집에 갈까 고민하다가 헬스장으로 향했다. 피곤하니까 근력운동 딱 1세트만 하고 와야지, 마음먹었는데 하필 운동 좋아하는 졸업생을 만났다. 계획에도 없는 간이 PT를 받았다.


집에 돌아오니 9시가 넘었다. 피곤하다. 내일이 재량휴업일로 급하게 변경되어서 다행이다. 내일은 조금만 늦게 일어나야지.

작가의 이전글 생각 놓아두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