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와 루이비통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치가 아니라,
지친 마음이 스스로를 살려내는 회복의 방식이다
나는 왜 반짝이는 것과 꽃,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할까.
예쁜 것을 좋아하고,
좋은 향을 품고,
단정하게 나를 가꾸고 싶은 마음은
지친 감정이 회복을 원할 때 나타나는 작은 신호다.
그 욕망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이었고 회복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꽃을 좋아했다.
작은 화병 하나에 담긴 계절의 색,
그 조용한 아름다움 앞에서 마음이 차분히 정리되곤 했다.
장식으로 써라기보다는 삶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위로의 언어였다.
무엇인가를 돌보고 보살피는 일을 하는 나에게
그 조용한 존재들은 말없이 “괜찮다”는 말을 건네주었다.
빛을 내는 액세서리나 물건, 향기로운 것들.
그 모든 반짝임에 나는 쉽게 끌렸다.
반짝이는 것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어둡고 무거운 일상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 끌림을 쉽게 허락하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이런 걸 좋아해도 될까?’
‘나에게 이런 것들이 어울릴까?’
그 질문들은 결국 나 자신을 의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나는 수많은 아픔과 마주했다.
아이들의 상처를 곁에서 지켜보며,
그들의 슬픔에 내 감정도 함께 닳아갈 때가 있었다.
어느 날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손을 잡아주는 일조차 가슴이 먹먹할 만큼 힘겨웠다.
나의 지친 마음을 회복시키는 방법 중 하나하나의 것들은 결코 사치가 아니었다.
감정을 다시 따뜻하게 데워주고, 무너진 마음을 조용히 다시 세워주는 힘이었다.
나는 사회복지사이기 전에 한 사람이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가꾸어 가는 것.
그 마음은 부끄럽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감각을 깨우고 감정을 지켜주는 조용한 방패가 되었다.
그저 ‘예쁜 것들’이 아니라, 무너질 때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은 기도의 조각들이었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만큼 무딘 현실을 견디며 살아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빛에 이끌리는 건, 어쩌면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으려는 본능이었을 것이다.
아름다움을 사랑할 자격은 살아내는 모든 사람에게 있다.
그것을 스스로 허락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따뜻하고 단단한 존재가 된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단정한 옷차림, 조심스러운 향기.
그 모든 것들은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며, 오늘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한 준비다.
그건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꾸밈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건네는 작고 단단한 응원의 표현이다.
마음이 지칠 때마다 나는 작은 반짝임을 찾아 나선다.
그 빛을 따라 걷는 동안, 내 안의 상처들은 조금씩 아물어 간다.
아이는 내게 묻는다.
“이모는 왜 예쁘게 하고 다녀요?”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예쁜 걸 좋아해서."
그리고 나도,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