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와 루이비통 05

사회복지사와 루이비통

by 즉흥적인 하루
사치가 아닌 자존감의 표현
나는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면 피로가 밀려올 때도 있지만, 그 안엔 여전히 희망이 있다.

어떤 날은 지쳐서 말 한마디조차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다음 날 아이들을 마주하면 마음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아마도 내가 이 일을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사회복지사를 ‘좋은 사람’이라 부른다.

하지만 좋은 마음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전문성이 필요하고, 분명한 경계가 있어야 한다.

감정의 거리두기와 따뜻한 시선은 함께 가야 한다.

그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도 함께 흔들리고 만다.


아이들과 마주하는 날이면 늘 비슷한 옷을 입는다.

‘너무 화려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몸에 밴 듯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머리를 풀고, 단정한 옷을 입는다.

튀지 않지만, 나름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꾸밈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리는 감정 속에서, 나 자신을 중심에 세우기 위한 작은 장치들이다.


그리고 어느 날, 루이비통 가방을 들었다.


특별한 날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갖고 싶었고, 마음이 허락했다.

그 가방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의 느낌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내가 나를 대접하고 있다는 기분.


하지만 그날, 후원자 한 분이 상담실을 방문했을 때

그의 시선이 내 가방을 훑고 지나갔다.

표정은 읽기 어려웠지만, 마음 어딘가에 조용한 파문이 일었다.


‘혹시 내가 들면 안 되는 걸까?’

‘이 일은 그런 걸 가져선 안 되는 건가?’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오랜 시간 ‘희생’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왔다.

누군가를 돕는 사람, 늘 부족한 상태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

하지만 누군가를 돕는다는 이유로 나 자신을 소모해야 한다면,

그건 건강한 관계도, 지속 가능한 삶도 아니다.


사회복지사도 누군가의 딸이고, 친구이고, 한 사람의 여성이고,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직업인이다.

그리고 그 ‘직업’은 전문성과 품위를 가져야 한다.

루이비통은 내게 있어 브랜드가 아닌 태도다.

나는 스스로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누구의 시선에도 작아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나의 마음을 조용히 지지해주는 것 중 하나가 이 가방이다.

어쩌면 그건 작은 상징일 뿐이지만,


사회복지사의 정체성을 ‘비워냄’이 아니라 ‘채움’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이제는 더 많아져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이 일을 좋아한다.

누구보다 진심으로 아이들의 삶을 걱정하고, 그 곁에 서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그 애씀 위에, 나의 삶도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루이비통을 든 사회복지사는 ‘불편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존중하며, 타인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말하듯, 나 자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너도 괜찮아. 반짝여도 돼.”


그 말이 불편하지 않은 세상.

그런 세상이야말로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진짜 건강한 세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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