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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처돌이 Aug 25. 2021

유지어트는 쉬울 줄 알았는데: 플렉스가 하고 싶어서

36kg를 감량한 탄수화물 중독자의 유지어트 이야기







길고 길었던 회사의 야근 시즌이 얼추 끝났다. 아직도 자잘한 일이 남긴 했지만 10시가  되어 집에 들어가는 일은 아마도 없을  같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것은 물론 아직 업무가 손에 익지 않아 크고 작은 실수를 연발했다.  자신에게 실망하는 일도 잦았다. 실수하면서 배운다지만  완벽주의자인 나에게는 자꾸만 생각나고 후회스럽다.  잘할  있었는데 하는 마음에 조급해지기도 한다. 사회인으로 멋지게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싶기도 하다. 조급함과 함께 딸려오는 불안은 사람을 흔들리게 한다. 지난 7월, 8월은 많이 후회하고 배운  달이었다.


야근 덕분에 운동은 물론 식단도 허술하고 피폐해졌다. 사람은 피곤해지면 보상 체계가 단순해진다. 충실히 이행했던 브런치나 취미 생활은 사치재로 바뀌었다. 지하철에서 보던 인터넷 강의는 무념무상으로도   있는 유투브로 바뀌었다. 집에 와서 식사를 하면 11시가 훌쩍 넘을때도 있었다. 분명 피곤하고 일찍 자야하는게 맞는데도 1시까지 핸드폰을 보며 밍기적 댔다. 오랜 경험으로 확신하건데, 수면이 부족해지면 살은 빠지지 않는다. 긴축 재정에 들어간 몸은 살을 붙잡아 두려고 애를 쓴다. 일시적으로 빠질지는 몰라도 건강한 패턴을 회복하면 다시 돌아온다. 다이어트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낼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다이어트는 체중 감량이 가능한 사회적 시스템과  방법에 따른 경제적 조건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 지속가능한 다이어트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요새 세상이 얼마나 좋은데, 집에서도 홈트가 가능한데, 다이어트 음식도 많아져서, 나땐 이렇게 편하게 살빼는거 꿈도  꿨어 어쩌고 저쩌고... ...


하지만 9 to 6 직장인에게 운동을 위한 하루 한 시간 내는 것도 빠듯하건만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무조건 의지박약이니 하며 비만인들을 괴롭게 만드는 언어적 폭력은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비교적 성공적인 감량 케이스인 나조차도 일상의 평범함이 침범당하는 순간이 오면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어쨌든 망가진 유지어트 리듬을 붙잡기 위해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달리기다. 사실 달리기라고 하는건  거창하고, 천천히 걷고 뛰며 하루에 5km 정도를 30 정도 보내는 식이다. 유명한 달리기 도움 어플을 설치하고, 무선 이어폰을 꽂으면 준비 완료다. 그런데 며칠 뛰다보니 옷도 운동화도 불편했다. 아무래도 최근에는 필라테스만 하다보니 레깅스며 필라테스복 밖에 없었고 오래전 구매한 후 사이즈가 헐거워진 신발은 더더욱 필요가 없었다. 체육관에 다녔던 시절 운동복을 입어보았으나 살이 많이 빠졌기에  볼품 없었다.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궁상맞고 빈티났다. 가뜩이나 엄마는 내가 다이어트 이전 시기의 옷을 입는걸  좋아한다. 조금 고민했으나 괜찮은 운동복과 런닝화를 사는  앱에서도 적극 권장한데다, 오랜 기간 체중이 워낙 많이 나갔기에 무릎이 좋지 않은 것도 신경쓰였다.


일단 뭐가 되었든 한 번 결정하면 바로 시작해보는게 나의 몇 안 되는 장점이다. 퇴근 길에 곧장 런닝화와 운동복을 구매했다. 런닝 전용 운동화는 통통튀는데다 편안해서 확실히 느낌이 좋았다. 괜찮은 장비를 갖추니 달리기도 조금 더 즐거워졌다. 운동할 때 신는 신발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게 좋다고 해서 고이 모셔두고 주 2~3회 달리기 할때만 신는다. 확실히 기분이 다르달까, 그 시간만을 위한 물건이 있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비록 적지 않은 금액을 '플렉스' 해버렸지만 야근 스트레스로 홧김에 지를뻔한 옷이나 음식보단 낫다는 생각으로 쓰린 속을 달랬다. 통장은 가벼워졌지만 역시 달리기는 신기한 스포츠다. 필라테스와는 다르게 내 속도를 조절하면서 뛸 수 있는 점도 색달랐다. 어플의 칭찬에 못 이겨 억지로 달리기 시간을 꼬박 채우면 후련하고 해냈다는 기분도 든다. 아무리 다이어트를 오래 해도 운동을 좋아할 수 없는 나에게는 이런 기분 전환이 아주 중요하다.


나는 운동에 쉽게 질리거나 그만 두었기 때문에, 비싼 장비를 갖추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몸에 맞는 운동복을 찾기 힘들뿐만 아니라 플러스 사이즈로 나온 옷들은 솔직히 말해  예쁘다. 지금은 플러스 사이즈를 위한 운동복이  대중화 되었다지만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에서 아직도 꿋꿋하게 여성 의류 L 사이즈 이상의 제품을 내지 않는  발견하면 뭐랄까, 기만적인 기분도 든다. 운동을 위한 옷을 만들면서 진짜로 운동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제품을 내진 않는다니? 경제 논리로 굴러가는 시장으로부터 외면 받은 기분도 들었고 선뜻 입어보지 못하는  자신도 싫었다. 살을 빼야만 입을  있는 스포츠 웨어가 존재한다는게 조금 슬프다.


마스크를 끼고 달리다보면 엄청나게 답답하고 숨이 차다. 처음 달리기 시작할때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든다. 잡념이 들기 시작하면 다이어트는 고생스럽고 짜증스러운 행위로 바뀐다. 가끔은 무념무상으로 그냥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는데, 달리기가 그렇다. 그냥 달려야 한다.  달리고 있지? 언제까지 달려야 하지? 같은 의문은 필요가 없다. 나처럼 고민도 생각도 많은 번잡스러운 성격에게는 나름대로 궁합이 맞는 운동이다.


여름 내내 뛰며 바람의 온도가 바뀌는 것을 피부로 체감함다. 곧 달리기 하기 좋은 계절이 다가온다. 습도 높은 가을 장마가 지나가면 아주 쾌적하게 달릴  있을  같다. 금방 겨울이 오겠지만 다시 필라테스로 돌아가면 그만이고, 그게 싫다면  다른 실내 스포츠를 찾으면 그만이다. 다시 다가올 플렉스의 압박이  두렵기도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기회는 좀처럼 없다. 서른이 넘은 내가 좋은 런닝화를 오로지 뛰기 위해 고를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운동용으로 점찍은 신발을 신으면 착 붙는 느낌이 참 좋다. 간만에 마음 먹었으니 오늘도 꼭 뛰어야겠다.



+) 알림이 엄청나게 쌓여 무슨 일인가 했더니 브런치 메인에 글이 걸렸다. 이것 때문에 글을 올린 건 아니지만, 조금은 영향을 받았다 ^^; 많은 분들이 들러주신다는 것 자체로도 나름대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는구나 싶다.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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