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의 모습으로 영원히 살고 싶다.
영생이라고 해야 할까. 더 어려질 필요도, 더 늙을 필요도 없이, 이 모습 그대로 계속 살아가는 것.
지금도 나는 계속 경험하고 성찰한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 나이가, 내게는 가장 균형 잡힌 시기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나답게’ 존재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만 영원히 산다면, 그것은 너무나 외로울 것이다.
나는 미래가 몹시 궁금하다. 아마도 타고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과거는 책과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만 가능할 뿐,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100년 후의 세상도 궁금하고, 1000년 후의 세상도 궁금하다.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지금 이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 찰나를 사는 인간에게 미래는 끝없이 멀게 느껴진다.
만약 우주의 시간만큼 살 수 있다면 어떨까.
내가 상상해 본 ‘영원히 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의학적 방법이다. 노화를 멈추거나 되돌리는 기술은 이미 연구되고 있다. 실제로 실현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부작용 또한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몸을 유지한 채 늙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두 번째는 안드로이드나 휴머노이드의 몸으로 옮겨가는 방법이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지만, 피지컬 AI와 로봇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보면 완전히 공상처럼만 보이지도 않는다. 뇌를 그대로 이식하거나, 뇌의 기능을 디지털화해 칩에 옮긴 뒤 새로운 신체와 연결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그 존재는 과연 ‘나’ 일까.
뇌의 정보를 복제한 존재가 나와 동일한 기억과 성향을 지녔다고 해도, 그것을 진짜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연속성이 끊기는 순간, 나는 사라지고 또 다른 존재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복제된 나는 나를 기억하겠지만, 나는 그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영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래서 지금의 나는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하고 싶다. 먼 미래에는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인간의 몸이 좋다. 때때로 아프고, 불완전하고, 취약하지만, 그 감각까지 포함해 지금의 내 몸을 사랑한다.
만약 이 상태로 더 늙지 않고, 아프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아직, 나로서 살고 싶다.
영원이 온다면, 나는 복제된 내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나로 남고 싶다.
하지만 영원 속에서도,
나는 끝까지 ‘나’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