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시절인연이 되고 싶은가

찰나가 영원이 되는 순간

by 지구별여행자

시절인연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가 말하는 시절인연의 정의는, 그때 만나는 사람들, 그 순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의 인연이라 했다. 그런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시절인연의 원래 의미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불교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단순히 순간적인 만남을 뜻하지 않는다. 시절은 알맞은 때를, 인연은 원인과 조건을 뜻한다. 즉 어떤 일도 수많은 조건이 무르익은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드러난다는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남’이 아니라 ‘때’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은 우연한 조우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원인과 조건들이 겹겹이 쌓이고, 그것이 성숙했을 때 비로소 모습이 드러나는 결과다. 어떤 별이 탄생하기까지 오랜 시간 물질과 압력이 축적되듯이, 인연 또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현실이 된다. 그러니 시절인연을 관계에 한정해 말한다면,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조건이 맞물려 가능해진 ‘결정적인 만남’에 더 가깝다.


이 ‘때’라는 개념은 우주적 시간과도 닮아 있다.

『Cosmos』에서 Carl Sagan은 광활한 우주와 영겁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산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다고 말한다. 수십억 년의 시간 끝에 같은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동시대성이 아니라, 수많은 조건이 맞아떨어진 하나의 사건처럼 느껴진다.


우연이라 부르기엔 섬세하고, 필연이라 부르기엔 기묘한 사건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인연의 의미와 우주적 관점은 어딘가 맞닿아 있다.


그런 특별한 만남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우연이 아니라, 수많은 조건과 시간의 축적 끝에 드러나는 한 순간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나는 무교이지만, 불교 철학은 우주의 시간과 존재의 질서를 설명하는 또 다른 언어처럼 느껴진다. 그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면, 만남 또한 단순한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시절인연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상반된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나는 그저 그 시절에 잠시 만난 사람, 또 하나는 모든 조건이 성숙하여 이루어진 결정적인 만남.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의미의 시절인연이 되고 싶은 걸까.


잠시 스쳐 지나가는 존재로 남고 싶은가. 아니면, 수많은 시간과 조건이 겹쳐 이루어진 인연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사람마다 선택은 다르겠지만, 소중한 사람에게만큼은 두 번째 의미의 시절인연이 되고 싶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한 순간이 서로에게 오래도록 남는 인연.


우주의 시간 속에서는 찰나일지라도, 서로의 삶 속에서는 영원으로 남는 그런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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