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중심을 잃지 마

지나가 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

by 지구별여행자

여행의 묘미


재작년 태국을 한 달간 여행하며 많은 여행자들을 만났다. 나에게 여행의 묘미는 그 나라의 풍경을 보는 것, 로컬의 삶을 엿보는 것, 그리고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과 만나 대화하고 교류하는 데 있다.


그래서인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래 남는다. 그중 몇 사람은 이렇게 글로 남기고 싶어진다.

독일에서 온 21살 간호사


그녀는 독일에서 여행 온 21살의 간호사였다. 숙소에서 2인 1실을 함께 쓰게 되었고, 왜 그녀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는지는 아주 긴 이야기가 있지만, 그건 생략하고 그녀 자체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녀는 자신을 러시아계 독일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전형적인 독일인과는 얼굴 골격이 다르다고 했다. 키가 작고 얼굴이 둥글었으며, 러시아인의 인상이 보였다. 독일인들은 보통 자기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꽤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담배를 피웠고 대마초도 피웠다. 당시 태국은 대마초가 합법이었고, 그녀는 우리가 함께 쓰는 숙소 테라스에서 하루 종일 대마초를 피웠다.

테라스에서 피웠지만 강한 향은 금세 방 안으로 퍼졌다.

나는 머리가 아팠다.


예전에 미국 웨스트우드, UCLA 근처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맡았던 대마초 냄새가 문득 떠올랐다. 미국도 대마초가 합법이라 대학생들이 많이 피우는 것 같았다.


그녀가 말한 자유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자기는 하고 싶은 건 다 해볼 거라고 했다. 나쁜 일도 다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데이팅 앱에서 만난 남자들과 원나잇을 많이 했다고 했다. 전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웠고, 그 일로 크게 상처를 받아 더 이상 진지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독일에서 마약중개상을 아는데, 감옥에도 다녀온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은 항상 호화롭고 그는 돈이 아주 많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굳이 판단하려 들지 않았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모두 이렇게 개방적인 것은 아니다. 남자임에도 굉장히 보수적인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봐왔고, 사람은 어디서나 각양각색이다.


나는 일반적인 한국인들보다 더 보수적인 편이지만,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려고 한다.


공허한 눈


그녀가 대마초를 필 때면 아주 오랜 시간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그때의 그녀 눈은 공허해 보였다.


무언가를 잊고 싶은 것 같기도 했고,

무언가를 붙잡고 싶은 것 같기도 한,

어디에도 정확히 닿지 않는 표정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힘들게 했을까.


부모님은 매우 사이가 좋다고 했고, 그녀 자체도 착한 편이었다. 간호사의 일이 힘들었을까.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내가 해줄 수 있었던 말


그 나이는 그럴 수 있지.

이제 겨우 스물하나다.

그 시절을 지나가 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었던 말은 하나뿐이었다.


“너의 중심을 잃지 마.”


나쁜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은 이미 굳어져 있었고, 그 시간은 누구도 대신 지나가 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인생 어딘가에 단 한 명이라도 그녀를 붙들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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