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학교 앞에 몇 군데의 떡볶이집이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한 군데였다. 그곳은 특색 있는 떡볶이로, 여느 떡볶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맛이었다.
마늘 떡볶이
알싸한 다진 마늘이 듬뿍 들어 있었지만 마늘 특유의 매운맛은 거의 없었다. 전분이 섞여 탕수육 소스처럼 걸쭉한 소스는 달달했고, 마늘은 그 달콤함 속 느끼함을 잡아주며 끝맛에 약간의 개운함을 남겼다. 단맛과 향, 질감이 묘하게 균형을 이루던 맛.
하교 후 그 마늘떡볶이 하나를 사 먹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피로가 씻겨 내려가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학교 앞 다른 분식집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그 떡볶이집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예전 아이들 사이에서는 “아줌마네가 건물을 샀대”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 집만 장사가 잘되니 그런 말도 자연스레 붙었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는 그곳을 두 번 정도 갔다.
한 번은 혼자, 그리고 한참이 지나 다른 사람들과 한 번.
왜 두 번 뿐이었을까?
예전의 맛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게는 더 큰 곳으로 이전했고, 여전히 그 아줌마가 만들고 있었는데도, 예전 그 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 번 가고 발길을 끊었다.
그러다 타 지역에 사는 분이 “그 마늘떡볶이 유명하잖아요”라고 말하길래, 약간의 기대를 갖고 다시 한번 찾았다.
하지만 역시 아니었다.
예전에는 다진 마늘이 훨씬 많았고, 그 특유의 향이 먼저 올라왔었다
이 이야기를 지인에게 했더니,
“네 입맛이 변한 거 아닐까?”
“…어.”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정말 내 입맛이 바뀐 걸까?
객관적으로 확인하려면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다. 그들도 같은 말을 한다면, 답은 분명해질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답이 아니다.
관점의 전환이다.
우리는 쉽게 말한다. 맛이 변했다고, 사람이 변했다고, 시대가 변했다고. 그러나 어쩌면 변한 건 세상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나는, 교복을 입고 하굣길에 떡볶이를 먹던 나였다. 시험이 끝난 해방감, 사소한 고민, 그 나이 특유의 허기와 설렘이 뒤섞여 있었던 나. 그 모든 감정이 함께 어우러져 ‘그 맛’을 완성했던 건 아닐까.
맛은 혀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으로도 완성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음식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같은 맛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때의 나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그 맛은 영영 사라진 걸까?
우리는 종종 세상의 변화를 의심한다. 하지만 가끔은 조용히 물어야 한다.
“혹시 내가 변한 건 아닐까?”
그 질문 하나로,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결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