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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인문학 독서모임 - 책읽기 1

by 양심냉장고

인문학으로 책읽기 모임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어린 왕자』를 읽어보기로 했다.

2주의 시간을 두고, 책을 읽고 400자 이상의 독후감을 작성하기로 했다.

독후감을 작성하다보니 400자가 아니라 그 이상, 4,000자의 분량이 나와버렸다.

『어린 왕자』는 다시 읽어 보니 참 매력이 많은 동화이다. 어른들이 읽어야 하는 동화.



1. 작가의 삶에 대한 이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éry, 1900~1944)

출생: 1900년 6월 29일, 프랑스 리옹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남.

가족사: 아버지는 어린 시절 사망, 어머니와 형제자매들과 함께 성장.

어린 시절부터 상상력이 풍부했고 문학과 기계에 관심이 많았음.

비행기와 조종에 매료되어 청소년기부터 하늘을 동경함.

1921년 프랑스 공군에 입대하여 조종사 훈련을 받음.

1926년부터 민간 항공기 조종사로 활동, 우편 항공기 조종사로 일함.

아프리카, 남미, 사하라 사막 등을 비행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음.

낙오, 추락, 조난 등의 극한 상황을 여러 번 겪음. 이러한 비행 경험은 그의 문학 작품에 깊이 반영됨.

비행과 삶의 철학을 결합한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

1944년 7월 31일, 정찰 임무 중 비행기로 실종됨. (지중해 상공 추정)

2000년대 초 그의 비행기 잔해가 발견되었지만, 정확한 사인은 여전히 미스터리.

죽음조차도 그의 전설적인 삶과 연결되며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함.


2. 『어린 왕자』의 배경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 머물며 집필, 1943년에 출간.

동화 형식을 취했지만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작품.

순수함, 우정, 책임, 사랑,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음.

그의 생애와 세계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이 책에 모두 스며 있음.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 자신을 투영한 존재로 해석되기도 함.



3. 『어린 왕자』를 인문학적으로 읽어보기


한 번은 공감해 주기.

- '보아뱀이 맹수를 잡아먹는 그림'을 보고 주인공 '나'가 그린 제1호 그림



"아니, 모자가 뭐가 무섭다는 거니?"
"어른들은 언제나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본다. 물론 일리는 있다. 모자처럼 생긴 걸 모자라고 말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틀린 말이 전혀 아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중요하다. 어른들은 아이의 설명을 듣고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게 문제다. 아무리 어이없는 듯 해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한 번은 공감해주는 게 필요하다.


"나에게 속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보아뱀 그림은 집어 치우고 지리나 역사, 산수, 문법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충고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여섯 살에 '화가'라는 멋진 직업을 포기해 버렸다."


그런 어른들의 두 가지 태도는 한 아이의 꿈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사막에서 만난 '어린 왕자'는 마음 속 '어린 아이'

아무도 없는 '사하라 사막'은 어디인가? 유치환의 '생명의 서'라는 시가 있다.


"나의 지식이 독한 삶의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 지지 못하여 /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중략)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유치환이 『어린 왕자』를 읽고 이 시를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분명히 읽었을 것이니, 시창작에 깊은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라비아' 사막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바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곳이다. 비행기 조종사였던 주인공은 사막에 불시착하여 '어린 왕자'를 만난 것도 이와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아무도 없는 고독의 현장에서 '나'는 '나'와 닮은 '또 다른 나'를 만난다. '어린 왕자'는 어린 시절의 '나'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지 않고, '나'가 그린 '보아뱀'을 볼 줄 알고, '상자 안의 '양'을 보는 어린왕자는 또 '다른 나'임이 분명하다.


"이건 상자야.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속에 있어. 그러자 놀랍게도 이 어린 친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이 아닌가."


'작가' 생텍쥐페리나 "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한가? 어린왕자의 모습이 바로 어린 시절 작가의 모습이며 동화 속 '나'의 모습일 것이다. '장미'와 같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상처를 입기도 했으며, 한 번 호기심이 생기면 끝까지 질문을 이어가던 모습이 바로 그렇다.


불시착한 사하라 사막의 한 가운데에서, 죽음 직전까지 가는 고독의 상황에서, 그는 실제로 그의 내면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린왕자'인 자기의 내면을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통합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어린왕자가 잠이 들어 나는 그를 안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가슴이 벅차 올랐다.
깨지기 쉬운 어떤 보물을 안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은 '거울'이라는 시에서 한 인간의 정신분열의 양상을 그렸다. 의식과 무의식의 분열, 또는 내면의 또 다른 '나'와의 대립. 우리는 이런 상태를 정신 분열이라고 한다. '정신분열'이 뭐 대단한 것이 아니다. 정신의 분열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다. 의식과 무의식, 자라오면서 어디에 두고 온 또 다른 '어린 아이', 어디서 울고 있는 외로운 어린 아이가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완벽히 정상은 아니다.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
악수(握手)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이상 '거울'에서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나'와 '내면의 나'는 자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유치환의 '생명의 서 '를 보면, 간절히 자신의 자아와 본질을 찾고 통합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한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여 '트라우마'나 '컴플렉스'를 치료하는 방법들이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입은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상처받은 '어린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울고 있는 '어린 아이'와 화해하지 못한 어른이 있다면, 이런 사람을 '어른 아이'라고도 부른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불시착을 한 사하라 사막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너무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 성장하면서 포기했던 꿈, 상처 받고 고독했던, 또 다른 어른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어린 나를 만나서 하나가 된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이 내용은 너무나 정확하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어디 아파트, 몇 평에 사는지에 따라 아이들도 계급이 나뉜다. 반에서 몇 등이냐도 매우 중요하다. 이런 모습을 아이들은 어디서 배웠을까?


" 그 친구의 목소리는 어떠니?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그 친구도 나비를 수집하니?
이렇게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 애는 몇 살이지? 형제는 몇 명이니? 몸무게는?

아버지의 수입은 얼마지?라고 묻는다."


어른들이 진짜 궁금한 건 '아버지의 수입'이다. 앞에 몇 살인지 몇 명인지는 수사적 표현일 것이다. 바로 수입을 묻기에 너무 속물적으로 보일까봐 포장을 한 것 뿐이다. 어른들은 사람이나 사물의 본질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어른들은 아이의 본질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틀에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앉아 있는
아주 멋진 장밋빛 벽돌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을 머릿속에 떠올리지 못한다.
'저는 오늘 10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해야 '와! 정말 멋지겠네!'라고 외친다.


아이들은 어른의 모습을 보고 자란다. 그래서 아이들도 조금만 크면 똑같은 어른이 된다. 하긴 누가,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본질을 더 가치있게 여기며 살겠는가? 철없는 어린 아이들이나 숫자 같은 걸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치열한 경쟁이 난무하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돈으로 자기를 증명하는 사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소행성 B612

"얘야, 너는 어디서 왔니?" '네가 사는 곳'이란 도대체 어디니?
내가 그려 준 양을 어디로 데려 가려는 거지?"

"나는 어린 왕자가 떠나온 별이 소행성 B612라고 믿는다.
이 소행성은 1909년에 터키의 어느 천문학자가 망원경으로 딱 한 번 본 적 있는 별이다."


인문학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인간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다시 어디로 돌아가는가?"


좋은 작품은 수많은 인문학적 질문을 던진다.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 좋은 작품인 이유도 이러한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양계장에 갇힌 '잎싹'은 자신이 왜 여기에 갇혀 있는지 질문한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 것인지 질문하고 마음 아파한다. 그리고 탈출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꾼다.

이러한 질문은 근원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어디로 부터 왔을까?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굶어죽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은 그리 필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지독한 삶의 회의'가 올 때나 아니면 '딜레마의 상황'에서 결정적인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올바른 세계관을 갖기 위해, 이런 질문들을 수시로 던져야 한다. 이런 질문을 통해 확고한 세계관이나 인간관, 그리고 가치관이나 윤리관을 갖고 있지 않다면,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길 때' 누가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인가? 어린왕자처럼, 43번이나 해가지는 걸 보고 싶은 날에, 정말 우울해서 힘든 날에 무엇을 바라며 힘을 얻을 것인가?


'어린왕자'가 별에서 만난 6명의 어른들


첫 번째 별에는 왕이 살고 있었다.
두 번째 별에는 허영심으로 가득찬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 다음 별에는 술꾼이 살고 있었다.
네 번째 별에는 사업가가 살고 있었다.
다섯 번째 별, 그곳에는 가로등 하나와 가로등을 켜는 한 사람 자리 외에는 없었다.
여섯 번째 별은 먼저 별보다 10배나 큰 별이었다. 그 별에는 엄청나게 큰 책을 쓰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어른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사람들이다. 어른들은 권력을 탐하고 허영심으로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명예를 갈망한다. 그리고 사업가가 되어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한다. 그렇게 사느라고 정신도 없고, 스스로 본질적인 삶이 아닌 현상에 매몰되어 살아가면서, 소외당하기도 한다.

그런 소외된 삶 속에서 슬픔과 부끄러움을 잊기 위한 방어기제로 술을 마신다. 뭐가 부끄럽냐고 물었더니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게 부끄럽다'는 어이 없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게 사실 어른들의 모습이기는 하다. 그나마 괜찮은 사람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일에 열중하는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명령에 따라 일하는 '군인'이나 ' 공장의 '노동자'를 형상화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반복된 삶 속에서 전혀 쉬지를 못한다. '쉬고 싶다'는 말만 할 뿐, 다른 대안을 제시해도 변화를 두려워하며 그냥 주어진 일만 반복한다. 사실 그게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기는 하다.

여섯 번째 별에 사는 노인은 '지리학자'이다. 10배나 큰 별은 그나마 작가가 가장 존중하는 마음으로 설정했을 것이다. 탁상공론을 하는 모습이 조금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왕자'가 대놓고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린왕자는 이 사람으로 인해 별의 장미가 '일시적인 존재'임을 알고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처음으로 별을 떠나온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어린왕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는 비슷하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


사실 어른들이라고 해서, 어린왕자의 말에 대꾸할 게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린 것이 뭘 안다고... 우리도 뭐 이렇게 사는 게 마냥 좋은 줄 알아?'



방어기제

'방어기제'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두렵거나 불쾌한 정황이나 욕구 불만에 직면하였을 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하여 자동적으로 취하는 적응 행위. 도피, 억압, 동일시, 보상, 투사 따위가 있다.
네이버 사전 '방어기제'


인간은 '불안'이라는 감정을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불안은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다고 한다. 가장 멀리는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당장 내일 학교나 회사에 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어 불안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지만 나쁜 사람도 많다. 어린왕자가 사는 아주 조그만 행성에도 마찬가지다. 아주 작은 행성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지구에서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린 왕자의 별에도 좋은 풀과 나쁜 풀들이 있다.
그건 곧 좋은 씨앗과 나쁜 씨앗이 있다는 뜻이다.
(중략)
그게 만약 무나 장미의 싹이라면 제 맘껏 자라게 내버려 두어도 좋다.
그렇지만 나쁜 식물의 싹이라면 눈에 보이는 즉시 뽑아버려야 한다.
그런데 어린왕자의 별에는 무시무시한 씨앗들이 있는데
바로 바오밥나무 씨앗들이다.

그렇게 작은 별에 무시무시한 '바오밥 나무'라니, 잠깐이라도 방치하면 큰일이 난다. 세상 어디나 다 그렇다. 그런 무시무시한 나무를 그냥 두면 큰일이 난다. 하지만 '장미'라고 해서 마냥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장미꽃은 겸손하지 않다. 허영심이 많다. 바람도 까다롭다고 투덜댄다. 너무나 모순된 존재다. 그래서 '어린왕자'는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우울하다. 하지만 장미도 마찬가지다. 장미라고 왜 처음부터 '어린왕자'를 힘들게 하고 싶겠는가? 장미는 별을 떠나는 어린왕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안해, 나는 바보였어. 그리고 행복하길 바래."


사람들은 사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수많은 '바오밥 나무'를 만나고 '장미꽃'도 만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답할 때도 너무나 많다. 사회생활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마흔 세 번이나 지는 해를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어떤 날은 마흔세 번이나 해가 지는 걸 보았어.'
그리고는 잠시 후에 말을 이었다.
'마음이 슬플 때는 지는 해의 모습이 정말 좋아...'


그래서 사람들은 적당히 감추고 산다. 다양한 가면을 만들고, 가시를 만들고 산다. 가면은 '페르소나'라고도 하고 가시는 '방어기제'라고도 한다. 이런 것들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다 여러 가지 가면도 가시도 가지고 산다. 아주 사소한 습관 같은 가면이나 가시도 있고, 남들이 뭐라 하는 가시와 가면도 있다. 가장 극단적인 방어기제는 자기를 무책임하게 죽게 만드는 것이다.


"꽃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거야.
가시를 가지고 있으면 자기들이 무서워 보일 거라 믿고 있는 거라구."


그러니, 사람들을' 길들이고', '유일한 관계'를 맺으려면, 상대방의 가시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왕자는 '가시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 것에 분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꽃들이 왜 그렇게 힘들이며 가시를 만드는지 이해하는 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양들과 꽃들의 전쟁이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이야?
그게 얼굴이 붉은 뚱뚱한 아저씨가 하는 계산보다 더 중요하지 않단 말이야?"


사람들은 누구나 가면과 가시를 가지고 산다. 그리고 누구에게든 공감과 이해를 받고 싶어 한다.


여우같은 스승님

어린왕자 여우.png

그렇게 어린왕자는 장미꽃을 떠나서 서서히 알게 된다. 이해하게 된다. 장미꽃이 '일시적인 존재'이기에 자신이 더 보호해 주어야 하고, 평범한 수많은 장미 중의 하나가 아닌,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임을 알아간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그런 깨달음을 주는 지혜로운 친구이자 스승이다. 여우의 말은 매우 지혜롭고, 현명하다. 여우의 말은 '어린왕자'를 읽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장미꽃들을 다시 가서 봐. 너는 너의 장미꽃이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거야.
그건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때문이야.
너는 네 장미에 대한 책임이 있어.


어린 왕자는 정원에 들어가서 수많은 장미꽃들을 본다. 똑같은 꽃들이 5천 송이도 넘게 피어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어린왕자는 이곳에서 상심과 슬픔에 빠진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이 너무 작고 초라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행복하려면, 행복의 기준을 낮추면 된다고 한다. 반대로 불행하려면 끝없이 남과 비교하며 더 빨리, 더 많이 얻으려고 달리면 된다. 어린왕자도 자기 별이 너무나 작다는 것이 부끄럽고, 자기가 가진 장미꽃이 너무나 평범하다는 사실에 슬퍼한다. 불행해진 것이다.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꽃을 가졌으니 부자인 줄 알았는데 ...
내가 가진 꽃은 그저 평범한 한 송이 꽃일 뿐이야.
내 별에는 작은 화산 세 개와 평범한 꽃 한 송이뿐이야.
그것만으로는 난 위대한 왕자가 될 수 없어 ...

이런 생각에 어린왕자는 풀밭에 엎드려서 엉엉 울었다. 이런 어린왕자에게 찾아온 존재가 바로 '여우'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우하면 '교활하다'는 말이 먼저 떠오르지만, '어린왕자'가 만난 여우는 지혜자이다. 이후 여우는 어린왕자와 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준다. 함께 놀기 위해, '길들이다'는 말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 아무런 관계가 없던 사물이 의미를 갖게 되는 이유를 말해준다. 여우에게 아무 의미 없었던 '노란 밀밭'이 어떻게 의미를 갖게 되는지 알려준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이 마음을 잘 표현한 시로는 유치환의 '행복'이나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과 같은 시가 있다. 아마 이들도 '어린왕자'에게서 사랑하는 마음과 기다림의 행복을 배운 것 아니었을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시를 짓는 방법에 대하여

사람들은 좋은 시를 쓰고 싶어한다. 누가 읽어도 감동을 주는 문장을 쓰고 싶다. 하지만 좋은 방법은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 다만,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시창작을 가르칠 때 써먹기 좋은 문장을 찾았다.


밀은 내겐 아무 소용도 없는 거야.
밀밭은 나에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그건 서글픈 일이지!
하지만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 거야!
그렇게 되면 황금빛이 물결치는 밀밭을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날 테니까
그렇게 되면 나는 밀밭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도 사랑하게 될 테니까

여우는 한참 동안 말없이 어린왕자를 바라보았다.


여우와 밀밭은 아무 상관이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어린 왕자'를 매개로 아주 근사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밀밭을 통해 그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도 사랑하게 된다. 시창작을 할 때 전문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말이 '낯설게 하기'이다. '전경화'라고도 좀 더 어렵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냥 쉽게 말하면, 뒤에 있는 배경, 곧 별로 주목받지 않던 것을 앞으로 끌어와 드러낸다는 의미다.

사물을 새로운 의미로 해석하고 바라본다는 의미도 된다. 위에서 여우는 아주 훌륭한 지혜자인 동시에 시인이기도 하다.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밀밭을 소재로 한 편의 멋진 시가 만들어진 것이다. 시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오늘 내 주변에 있던 사물에게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게 시창작의 시작이다.


자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시 어디로 돌아가는가?


『어린 왕자』에서 '뱀'은 누구인가?

'뱀'은 어린 왕자가 지구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존재이며, 동시에 지구에서의 삶을 끝내는 존재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뱀을 삶과 죽음의 상징으로 이해한다.

사람들 속에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뱀이 말했다.
난 배보다도 더 먼 곳으로 너를 데려다 줄 수 있어. 뱀이 말했다.
난 그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으니까. 뱀이 말했다.
네 독은 좋은 거지?
나를 오랫동안 아프게 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지?
뱀은 사나워. 괜히 장난삼아 물기도 하고...
자 이제 다 끝났어.
그리고 나무가 쓰러지듯 그는 스르르 쓰러졌다.


어린왕자는 뱀에게 물린다. 사람들, 특히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어린왕자는 100% 죽은 것이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자신이 죽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껍데기 같은 몸을 버려야 자기가 온 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해석은 열려있다. 어린 왕자는 죽기도 한 것이고 살아있기도 한 것이다. 죽은 동시에 살아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시에 죽은 존재이다. 누가 어떻게 관찰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어린 왕자'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다.

내 안에도 나와 닮은 또 다른 '어린 왕자'가 산다.


작가 생택쥐페리는 어린왕자를 만나러 갔나?

신비롭게도, 『어린 왕자』 이야기가 나온지 1년 정도 지난 즈음에 생텍쥐페리도 실종된다. 1944년 7월 31일, 정찰 임무 중 비행기가 사라진 것이다. 물론 한참 뒤에는 지중해 어느 곳에서 그의 비행기로 추정되는 잔해가 발견되었고, 독일의 한 전투 비행사는 자신이 그 비행기를 격추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의 실종 당시 많은 사람들은 정말 작가가 어린왕자를 일부러 만나러 간 것은 아닌지 많은 상상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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