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와 산 자의 공간

-- 왕릉 산책 일기 3

by 물푸레

홍살문을 지나며 약간은 마음이 경건해진다.

죽은 자의 공간, 왕의 공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박석에 발을 딛고 천천히 오르막 길을 오르면

정자각이 점점 커지며 내 눈앞으로 다가온다.


능침은 정자각의 엄호를 받으며 은폐되어 있다.

지엄하신 릉의 속살을 함부로 내보이지 않는다.

정자각으로 올라가서야 비로소

다정한 쌍릉의 모습이 액자가 되어 창문으로 보인다.

홍살문-- 정자각-- 능침이 각각 위계를 달리하며 왕릉의 위엄을 보여준다.


능침에 누운 왕은

조산이 바라보이는 탁 트인 시야로 자연경관을 품에 안는다.

그 공간은 왕의 영혼이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공간이다.

정자각에 서서 산자의 시선과 죽은 자의 시선을 교차하며

왜 유네스코가 우리의 왕릉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택했는지 실감한다.


조선 왕릉은 주산과 조산이 일직선으로 마주 보는 곳에

왕이 하루 안에 행차할 수 있도록 궁에서 100리 안의 지역에서 선택되었다.


김포 장릉의 주산은 성산이다.

해발 70미터의 낮은 산이지만 왕릉을 감싸 앉고 있는 아늑한 형상을 하고 있다.

주산은 릉에 기운을 불어넣고 릉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릉의 좌우에는 푸른 소나무가

피톤치드를 내뿜으며 좌청룡 우백호로 호위무사 역할을 한다.


릉 앞으로는 조산인 인천의 계양산이 멀리 보였다.

조산은 주산의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게 예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장릉의 능침은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는 자좌오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왕이 남면(南面)하여 신하를 다스리는 형상을 상징하며

정면의 계양산을 향해 기운이 뻗어 나가는 구조이다.


생전의 왕을 부러워해 본 적은 없으나 돌아가신 왕의 자리는 부럽기도 하다.

햇살 따스한 양지녁에 누워 앞산을 바라보며 자유로운 영혼이 멀리 뻗어나가는구나.

생전의 치열했던 권력을 다 내려놓고 죽어서야 비로소 취하는 진정한 휴식이다.


그러나 이제는

계양산까지 탁 트인 전망과 뻗어나가던 기운은 사라지고

거대한 왕릉뷰 아파트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은 건축물 뿐만 아니라

주변의 자연경관까지 다 포함하여 세계문화유산인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백성들이 순라꾼을 조직하여

왕릉의 10리 밖까지 꽃나무를 심어 왕릉 주변을 가꾸고 순찰까지 돌았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왕릉의 턱 밑까지 아파트를 짓는다.

우리 조상의 탁월한 미적 감각과 과학적인 건축 유산은 내팽개치고

그 자리에 자본주의 상징인 시멘트 건축물을 심었다.


오호 통재라!

이는 우리의 시대의 흑역사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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