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아래 낫을 든 여인들

--공공 근로의 기록 2화

by 물푸레

하천변에서 보고용 사진을 찍던 평온한 한낮, 정적을 찢는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나는 앞뒤 재지 않고 비명이 터져 나온 하천 아래로 내달렸다.

그곳에는 지옥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여자들은 두 패로 나뉘어 서로를 향해 낫을 치켜들고 있었다. 한쪽은 그 사나운 여자의 무리였고, 다른 한쪽은 청각장애인 막내와 그 동료였다. 서슬 퍼런 낫이 햇빛을 받아 번뜩이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달려들어 낫부터 뺏어 들었다. 간담이 서늘했다.


태양은 미친 듯이 쨍쨍했다.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한 열기였다. 이 햇빛 아래서라면 그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나는 두 패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이야기를 듣고 중재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성의 목소리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애가 있는 막내를 두둔한다는 이유로 나조차 공격의 대상이 되어 온갖 비난을 받아내야 했다.


사실 그 사나운 여자는 작업 초기부터 골칫덩이였다. 모두가 허리를 굽혀 호미질하며 비지땀을 흘릴 때, 그녀는 앉아서 손으로 풀을 뜯는 시늉만 하며 시간을 때웠다. 참다못해 내가 다가가 "민원이 들어오니 일 좀 제대로 해달라"고 한마디 하면, 다음 날 보란 듯이 손목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나타나 시위하는 이였다.

그렇게 쌓여온 뻔뻔함과 악의가 8월의 폭염을 만나 폭발한 것이다. 낫을 든 채 서로를 씹어 삼킬 듯 노려보던 그 눈빛들. 그날 하천은 단풍잎돼지풀을 뽑아내자 바닥에 나타난 새로운 복병 환삼덩굴과 근로자들이 새로운 전투를 시작한 날이기도 했다.


낫을 들었던 그날의 소동 이후에도 하천변의 공기는 조금도 식지 않았다. 오히려 가해자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집요하고 치졸해졌다. 그녀는 막내가 화장실에 가면 뒤쫓아가 발로 문을 쾅쾅 차며 위협을 가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막내가 느꼈을 공포는 좁은 화장실 안에서 얼마나 거대하게 증폭되었을까.

공격의 화살은 중재자인 나에게로 향했다. 말이 어눌한 막내를 감싼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oo을 다른 팀으로 보내버려요!"라며 으름장을 놓는 그들의 당당함 앞에 나는 아득함을 느꼈다.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상식적으로 유배를 떠나야 할 사람은 그 빌런이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수적으로 우세하고 드센 가해자 무리 속에 막내를 남겨두는 것은 사지로 몰아넣는 것과 다름없었다. 결국 나는 막내와 그녀를 도왔던 동료를 예전에 일하던 외진 곳으로 '유배' 보내기로 했다.


"그날 한 일을 사진 찍어 보고하세요."

내 지시에 막내 일행은 오히려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괴물 같은 얼굴들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에겐 그 유배지가 안식처였던 셈이다. 멀어져 가는 막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단단히 결심했다. 이 여름이 끝나고 다음 기수가 시작될 때, 저 사나운 여자의 이름은 반드시 명단에서 지워버리겠노라고.


다행히 유배지로 떠난 막내는 평온을 되찾았다. 곁을 지켜준 언니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비로소 사람다운 웃음을 회복했다. 그렇게 그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공근로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해 뙤약볕 아래서 남의 쓰레기를 치우고, 그 안에서조차 왕따와 멸시를 견뎌야 하는 공공 근로의 삶이란 얼마나 고달픈 것인가. 그들에 비하면 육체적 고생도 덜하면서 더 많은 급여를 받는 내 처지가 문득 불공정하게 느껴졌다. 내가 누리는 이 미미한 기득권이 그들의 땀방울 앞에서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기수가 끝나자 나는 그 '빌런'만큼은 다음 기수에서 반드시 제외해 달라고 담당 주사님에게 신신당부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정의였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허망했다. 그녀의 집요한 전화 공세에 시달리던 주사님은 결국 그녀를 다른 작업장으로 배치했다고 덤덤하게 전했다.


"다른 곳으로 보냈어요."

주사님에게 그것은 단순히 골치 아픈 민원 하나를 처리한 결과였겠지만, 내게는 무거운 패배 선언과 같았다. 직접 현장의 칼바람을 맞지 않은 이들에게 그 여자의 존재가 얼마나 암적인 존재였는지 실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 산적한 업무 속에서 그 빌런의 집요한 전화에 시달리는 일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기간제 근로자라는 나의 위치, 실권 없는 관리자로서 마주한 한계가 뼈저리게 다가왔다. 그 빌런은 그렇다치치고 그 빌런에게 동조해서 약자를 몰아세우는 동조자들의 얼굴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선량한 여인네들로만 보였는데... 하천의 오물은 치울 수 있었지만, 사람 마음속에 깃든 오물과 세상의 불합리함은 끝내 치워내지 못한 채 8월의 뜨거웠던 여름이 답답하고 지루하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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