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와 고데기 그리고 시집

-- 공공 근로의 기록 3화

by 물푸레


김 반장님은 하천의 잡풀을 베다가 허리를 펴고 먼 산을 보며 혼잣말처럼 내뱉는다.

"낼모레면 부도가 날 판인데, 거래처 물건 대금부터 챙겨주고 있더라고.

내가 원래 그런 인간이야."


그 말은 후회라기보다, 자기 삶의 방식에 대한 쓸쓸한 확인에 가까웠다. 한때 전자기기 제조 회사를 운영하며 중산층의 탄탄한 성벽 안에 살던 그는, 경제라는 거대한 성벽이 무너지며 성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성실함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성실해서,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지 못하는 그 '착한 성정' 때문에 그는 자신을 지킬 기회를 놓쳤다. 공공 근로에서는 굿은 일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며 사람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니 여성근로자들은 큰오빠 같다며 '오라버니'라 불렀다.


이제 그는 딸의 집에 얹혀살며 손녀를 돌보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낮에는 하천의 오물을 치우고, 저녁에는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한다. 한때 수십 명의 직원을 호령하던 손은 이제 딸의 눈치를 보며 청소기 손잡이를 잡는다.

그의 생일날, 나는 평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아껴두었던 와인 한 병을 건넸다. 사위와 오붓하게 한잔하시라는 내 인사에 그는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치더니, 다음 날 낡은 종이 가방 하나를 내밀었다.

"전에 팔다 남은 건데... 줄 게 이거밖에 없네."

가방 안에는 그가 한때 세상에 내놓았던, 이제는 구형 모델이 되어버린 고데기가 한 대가 들어 있었다. 창고 구석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가져왔을 그 물건은 김 반장님의 마지막 자부심이자, 무너진 중산층의 서글픈 유품 같았다. 상자에서 고데기를 꺼내 들며 김 반장님처럼 정직하게 땀 흘려온 사람들의 평생이 왜 '재고품'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천변에 앉아 하염없이 흐르는 물만 바라보던 사람, 인수(가명)님. 대기업에서 매트리스를 연구하던 연구원이었던 그는 공공근로 현장에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정돈된 옷차림은 그가 평생 '흙먼지 없는 곳'에서 살아온 사람임을 짐작케 했다.

시청 가는 길에 동행하며 듣게 된 그의 사연은 생각보다 참담했다. 후배의 배신으로 야심 차게 시작한 사업은 모래성처럼 무너졌고, 그는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던 날 "운동화 하나만 신고 쫓겨 나왔다."고 했다. 평생을 '안락한 잠'을 연구하며 살았던 그가, 정작 자신은 누울 곳조차 잃어버린 채 거리로 내몰린 것이다.

그는 임대 아파트에서 마음이 병든 아내와 살고 있었다. 자살예방센터 직원이 일주일에 한 번씩 아내를 찾아올 정도로 그들의 삶은 벼랑 끝에 서 있었다. 평상시에는 한없이 인자하던 그가 가끔 불면증에 시달려 날카롭게 말을 내뱉을 때, 나는 그가 견디고 있는 삶의 무게가 얼마나 가파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개그맨 정준하를 빼닮은 홍 씨는 첫날부터 기이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양손에 낡은 의자를 하나씩 들고 어슬렁어슬렁 거구를 이끌고 나타났다. 하나는 본인이 앉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옆 사람에게 권할 것이라고 했다.

"학원 운영할 때 쓰던 거예요."

그가 건넨 의자는 한때 아이들의 꿈이 머물던 곳이었으나, 이제는 공공근로 현장의 거친 흙바닥 위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홍 씨 역시 경제적 파고를 넘지 못하고 가정이 해체된 이였다. 부인과 이혼하고 아들과 단둘이 산다는 그는 넘치는 덩치와 달리 쉬는 시간마다 천변 끝자락에 홀로 앉아 있었다. 남에게 의자를 권하던 그 넉살 뒤에는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고립된 슬픔이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매트리스를 연구하던 인수님, 고데기를 만들던 김 반장님,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던 홍 씨.

어느새 나는 공공근로 현장의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왜 그리 되었는지 묻지 않아도 그들은 속병처럼 삭혀온 이야기를 내놓았다. 그것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라, 자신들이 게을러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성실했다. 착하고 정직했다. 하지만 경제라는 거대한 파도가 덮치자 개인의 성실함은 방파제가 되어주지 못했다. 중산층이라는 튼튼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하천 바닥으로 내려앉는 광경. 그것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우리 사회의 허리가 끊어지고 있다는 서늘한 징후였다.

그들이 내민 재고품 고데기와 낡은 학원 의자, 그리고 먼 산을 보던 눈동자들을 나는 잊지 못한다. 경제가 무너지면 사람도 무너진다. 하지만 무너진 파편들 사이에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애쓰던 모습들이 잊히지 않는다. 나라가 주는 돈이지만 공돈은 결코 가져가지 않겠노라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던 모습들이 눈물 나게 감동적이었다.


공공근로가 끝나는 마지막 날,

인수님이 내게 시집 한 권을 내밀었다. 안도현의 시집이었다. 작은 풀꽃을 사랑하여 생태교란식물 모니터링도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시던 그 섬세함으로 골랐을 시집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시인의 글귀를 마주한 기쁨보다, 그가 시집을 고르기 위해 서점의 서가 사이를 거닐며 타인에게 건넬 문장을 골랐을 그 '마음의 여유'가 되살아난 것 같아 코끝이 찡해졌다.

이제 인수님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일이 끝나면 조원들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망한 이야기를 안주 삼아 웃기도 하고, 친구가 되어 서로의 등을 두드려준다. 뙤약볕 내리쬐는 뜨거운 천변에서 함께 땀 흘리며 고생한 시간은 그들을 단순한 동료가 아닌, 인생이라는 전장에서 함께 살아남은 '전우'로 만들어주었다.


하천은 그들에게 단순한 일터가 아니었다. 쏟아낼 곳 없던 울분과 회한을 흐르는 물에 씻어 보내고, 부서진 자존감을 서로의 온기로 메워가는 치유의 공간이었다. 국가가 제공한 것은 비록 최저임금의 단기 일자리였을지 모르나, 그 안에서 그들은 스스로 친구를 사귀고 마음을 나누며 다시 일어설 '삶의 근육'을 회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경제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폐허 속에서도 누군가는 의자를 내어주고, 누군가는 고데기를 선물하며, 누군가는 시집을 건넨다. 그렇게 우리는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사람'을 발견하며 힐링을 얻는다. 공공근로의 하천변은 그렇게 중산층의 몰락지가 아닌 새로운 생존의 시작점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땡볕아래 낫을 든 여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