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재나 붙이면 될 걸
왠 호들갑이야!

--- 공공 근로의 기록 4화

by 물푸레


예상했던 대로였다.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기 시작하자 작업반장은 보란 듯이 태업을 시작했다. 매일 해야 할 작업량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비가 와서 못 하겠다, 너무 더워서 못 하겠다며 몽니를 부렸다. 당일 보고를 마쳐야 하는 내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게 하고 싶었지만, 내게는 그럴만한 권한이 없었다.


퇴근길, 전철에서 마주친 그의 추종자는 내 속도 모르고 '정 반장' 칭찬 릴레이를 이어갔다. 그가 얼마나 팀원들을 정성껏 챙기는지, 얼마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는지 열을 올리며 말했다. 어제는 맥도널드에 모여서 아이스크림 파티도 했노라며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는 자기 우산 아래로 사람들을 모으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다. 기간 내에 일이 마무리되어야 하니 "알아서들 하시라!"며 배짱으로 맞서기로 했다. 그의 우산이 방패가 될지, 혹은 우리 모두를 젖게 할 구멍 난 우산이 될지는 이제 그들의 몫이었다.

사건은 예고 없이 터졌다. 정반장이 단풍잎돼지풀을 베다 낫에 손을 베였다는 소식이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구급차는 그를 싣고 떠난 뒤였다.

경위를 묻자 곁에 있던 할머니 근로자가 혀를 차며 말씀하셨다. "내가 봤는데 조금 베었어. 옛날 같으면 담뱃재나 붙이면 될 걸 웬 호들갑이야!" 주변에선 "무슨 그런 무식한 소리를 하시냐"며 퉁박을 줬지만, 내 속은 복잡했다. 그 '호들갑'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튿날 찾은 병실에서 우려는 확신이 되었다. 정반장은 "왜 이제야 오느냐!"며 나를 몰아세웠다. "근로자가 입원했는데 과장님은 왜 안 오느냐!"며, 무슨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거들먹거렸다. 심지어 매니저가 얼굴도 안 비친다며 동료들에게 흑색 선전까지 해댔다. 집에 돌아오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이 어려운 일을 왜 맡았을까!" 도끼로 내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었다.


보고를 받고 일에 파묻혀 지내는 주사님까지 음료수 박스를 들고 병원을 찾아왔다. 내 잘못으로 벌어진 사고는 아니었지만, 땀에 젖은 주사님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주사님은 병원비를 산재사고로 처리해 주었고 정반장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지난 기수에 정반장과 같이 일했다는 청년 근로자가 나에게 얘기를 청했다. 이런 사고가 지난번에도 있었고 단순히 손가락 베인 것 가지고 그렇게 많은 병원비가 나올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사고에서도 똑같이 그 병원에 입원했노라고 말했다. 나는 그제야 의문이 한퀘에 풀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 근로자가 하신 말 '담뱃재나 붙이면 될 것을 호들갑 떤다'라고 하신 그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가 퇴원하고 하천으로 돌아왔을 때 상처가 잘 아물었는지 보여달라고 했다. 손가락의 흉터는 낫에 베인 자국으로 보일 뿐 수술까지 했다고는 보이지 않았다. 이건 내 추측일 뿐 증거가 없으므로 어찌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주사님에게 넌지시 이 이야기를 해보았으나 무표정한 얼굴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공공근로 일은 신경 많이 쓰이는 맡고 싶지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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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나는 그를 불러 추어탕을 사주며 마음을 전했다.

"입원 생활 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같이 못사는 사람들끼리 싸우지 말고, 협력해서 일해 봅시다.

단기 일자리지만 서로 좋게 마무리했으면 좋겠어요."


그날 이후, 그의 태도는 눈에 띄게 수긋해진 기색이었다. 나 역시 일부러 그에게 자문을 구하며 대우를 해주었다. 주변에서는 그가 "날마다 꽃이나 보러 다녔지, 뭘 알겠어!"라며 코웃음을 쳤다고 전했지만, 사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거친 노동의 세계에서 나는 그야말로 '쌩초보'였으니까. 이 일은 숲해설가와 작업 반장이 동시에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한손이 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인정하고 칭찬해 주는 말에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듯했다. 홍수 경보가 발령되었을 때는 직접 자전거를 타고 하천을 점검하더니, 물이 넘칠 것 같다고 아침 일찍 보고해 주었다. 시청 공무원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공공근로자가 나서서 하천이 넘칠 것을 걱정하며 몸으로 뛰고 있었다. 능력과 에너지가 많은 사람인데, 단기 일자리만 전전하느라 그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어찌보면 양아치 같기도 하고 괜찮은 사람 같기도 한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인간에 대한 공부는 원없이 한 셈이 되었다.


공공 근로를 마치면서 나이 지긋하신 근로자분이 '한여름에 그만 둘줄 알았는데 고생이 많았다' 등을 두드려 주셨다. 나도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실랑이하며 버텨 온 날들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들 중에는 공근이 끝나면 식당 일이나 농사일을 또 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어렵게 번 돈으로 아침마다 커피를 나누고 간식을 나누느라 급여의 절반은 쓰는 것 같았다. 매니저에게도 뭐라도 챙겨주고 싶어서 애쓰는 그 마음들이 참 고마웠다. 없이 살면서도 늘 나누고 서로 챙기는그 따스한 마음들이 응원이 되어 그 뜨거웠던 여름날을 잘 버텨낸 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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