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 근로의 기록 1화
3월의 도촌천은 내가 알던 봄의 하천이 아니었다. 답사 차 도착한 그곳에는 생명의 온기 대신 기이하고 황량한 풍경이 가득했다. 허연 긴 막대기들이 얼기설기 엉킨 채 하천변을 뒤덮고 있었는데, 마치 거대한 짐승의 뼈들이 흩뿌려진 전장 같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낯선 잔해들의 정체는 '단풍잎돼지풀'이었다. 풀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굵고 딱딱해서, 차라리 나무에 가까운 형상으로 지난 계절의 위세를 증명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건너온 이 침략자들은 도촌천의 본래 주인들을 밀어내고 하천을 완전히 잠식하고 있었다.
"올해 주된 업무는 저 생태 교란 식물들을 제거하는 겁니다."
담당 주사님의 설명에 나는 묘한 고취감에 휩싸였다. 외래종으로부터 우리 토종 식물을 지켜낸다는 사명감과 우리 풀꽃에 대한 애정이 "꽃만 탐하고 다니지 말고 너도 의미있는 일 좀 해보지 그래."라고 말하고 있었다.그러나 거친 남자들 속에서 일을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마음 한편을 누르고 있었다. 그래도 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알 수 없는 마음이 나를 이기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맞서야 할 것은 저 질긴 풀떼기들만이 아니라, 그 풀보다 더 억척스럽고 다루기 힘든 인간 군상이라는 것을. 무지는 용감했다. 나는 그렇게 도촌천이라는 거대한 생태계 속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현장 답사 때 보았던 허연 단풍잎돼지풀의 잔해를 치우기도 전, 내 앞에는 더 거친 '말의 덤불'이 우거졌다.
출근 첫날, 명단을 부르고 운영 규칙을 발표하는 내 목소리는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근로자들의 아우성에 묻혀버렸다.
"비가 와서 일을 못 하는데 왜 돈을 안 줍니까? 이게 돈 줄려고 하는 사업 아니에요?
"우리가 하늘을 조절합니까? 가난한 사람 구제한다더니 순 거짓말이네!"
자연재해 시 임금 미지급 조항. 비가 오면 일을 못하고 당연히 임금은 없다!
그들의 항변은 구구절절 옳았다. 뙤약볕 아래서 낫을 휘두르는 노동의 대가가 날씨라는 변수 앞에 무력해지는 것은 내가 보기에도 가혹했다. "주사님과 상의해 보겠다"며 당장의 불길은 껐지만 "민원 게시판에 올리겠다."
는 한 여성 근로자의 눈빛은 매서웠다.
시청으로 돌아온 나를 기다린 것은 또 다른 벽이었다.
근로자들의 처지를 대변하려 입을 뗐을 때, 과장님은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관리자가 근로자 편에 서면 일 못합니다. 중심을 잡으세요."
그제야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보였다. 근로자들에게 나는 사용자인 '시청 사람'이었고, 시청에게 나는 근로자들에게 휘둘리는 부화뇌동하는 '미숙한 관리자'였다. 단풍잎돼지풀 잔해가 엉켜 있는 도촌천 물길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징검다리. 그것이 나의 위치였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못한 채 양쪽에서 쏟아지는 물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곳은 단순히 풀을 베어내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존의 논리가 부딪히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는 것을.
토론장에는 유독 목소리의 결이 다른 두 남자가 있었다. 거친 노동 현장에서 작업반장으로 뼈가 굵은 이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기세가 있었다. 한 명은 묵직한 침묵으로 좌중을 압도했고, 다른 한 명은 불손한 농담을 섞어가며 내 눈치를 살폈다.
" 매니저님, 작업은 이론으로 하는 게 아네요. 우리가 다 해봤으니까 우리말대로만 하세요!"
그들은 하천 작업을 하려면 하루에 몇 킬로미터의 일을 해야 하고 조별로는 어떻게 일을 나눌지 상세히 알려주었다. 작업 경험이 없는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 현장을 굴려야 하는 처지에서 그들의 노련함이 절실했기에, 썩은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그들을 작업 반장으로 대우해 주었다.
상업적인 공간이 아니기에 인간적인 분위기로 팀을 이끌고 싶었고 서로 협력하면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에 출근하면 나이 든 여성근로자들과 손을 잡으며 따듯하게 인사를 나눴다. 불편 사항을 이야기하면 귀 기울여 잘 들었다. 예전엔 사무적인 분위기에서 주어진 일만 하던 근로자들은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부상을 입고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넘버 2에게도 김치통을 건네며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려 했다. 건방진 놈으로 치부하다가도 한편으론 불우한 젊은 삶이 안쓰럽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진심으로 밀고 나가자. 특별한 수완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밖에 없었다.
근로자들 눈에는 다 같은 풀로 보일 뿐 어떤 새싹이 단풍잎돼지풀인지 구별하는 것부터 많이 어려워했다. 작업 초기에 숲해설가인 내가 나서서 단풍잎돼지풀의 생태에 대해 알려주고 제거하는 방법까지 시범을 보이며 알려 주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단순히 풀을 베는 일이 아니라 '우리 토종 식물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설명하니 단순 노동이 따분했던 많은 분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하게 되었노라고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성실하고 바른 사람들이 많구나'라고 느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조의 일이 끝나면 늦게 끝나는 조의 일까지 하고 함께 일을 마쳤다. 다리 위의 난간이나 쓰레기 가득한 위험한 곳까지 아줌마들도 몸을 사리지 않고 열일을 했다. 안전한 길 위에서 보고용 사진을 찍는 나는 미안함과 함께 인간적인 감동으로 몸을 떨었다.
뿌리 뽑힌 단풍잎돼지풀은 워낙 번식력이 강해서 흙만 닿아 있으면 바로 살아났다. 기겁할 만큼 놀라운 생명력이었다. 이 풀은 미국의 미시시피 강변에서 수많은 홍수와 가뭄을 겪어내며 괴물스러운 강한 번식력을 획득했다. 풀 한 포기에서 2만 5천 개의 씨앗을 생산하는 어마무시한 녀석들이다. 하천은 이 단일종으로 점령 당해 작은 새싹들이 복제된 존재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반장 자리를 꿰찬 그는 노련했다. 남들이 종일 매달릴 분량의 일을 단숨에 해치우는 괴력으로 실력을 증명한 뒤, 인절미며 아이스크림을 사 나르며 사람들의 환심을 샀다. 그의 영향력은 도촌천을 뒤덮는 단풍잎돼지풀처럼 처럼 무섭게 뻗어 나갔다. 그가 만드는 '즐거운 노동 현장' 뒤편에서 그는 서서히 태업의 씨앗을 뿌리며 나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안 움직이면 이 일은 안 돌아갑니다"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하지만 무성한 덩굴 식물이 모든 땅을 차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 기세에 눌리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거칠게 군림하는 반장의 태도에 반감을 느낀 여성 근로자들은 오히려 '시청 사람'인 나를 옹호하며 곁을 내주었다. 그녀들이 내게 건넨 마음은 투박하지만 묵직했다. '받을 수 없다'는 말에 몹시 서운해하며 솜씨 좋은 뜨개질 가방을 들이밀던 분, 다음 기수에도 꼭 같이 일하고 싶다며 백설기 한 말을 머리에 이고 오신 할머니. 나에게 무슨 권한이라도 있는 듯 오해하시는 그 미안한 진심들에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반장의 인절미가 '세력'을 위한 투표권이었다면, 할머니의 백설기는 척박한 삶을 버텨내는 이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도촌천변 그늘진 곳에서 보일 듯 말 듯 피어난 작은 풀꽃들처럼, 그녀들은 그렇게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