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산책 일기
치타의 등을 닮은 덕수궁의 살구나무
친구와 덕수궁 미술관을 관람한 뒤 고즈넉한 산책길을 걸었다. 고목 아래서 인자한 인상의 한 어르신이 비닐봉지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줍고 계셨다. 미리 봉투까지 챙겨 오신 솜씨가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닌 듯했다. 가까이 가보니 높은 가지에서 떨어진 살구 열매가 바닥에 가득했다. 우리가 다가가자 어르신은 인심 좋게 살구 몇 알을 건네며 먹어보라고 권하셨다.
흙 묻은 열매를 선뜻 입으로 가져가기가 망설여졌지만, "아주 맛있다"며 재차 권하시는 호의에 근처 화장실에서 깨끗이 씻어 한입 베물었다. 그간 맛보았던 살구는 신맛이 강했는데, 이 살구는 단맛과 신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향기로운 내음은 마치 "살구란 바로 이런 맛이야!"라고 외치는 듯했다. 기름진 땅에서 극진한 돌봄을 받으며 수백 년의 세월을 통과해 온 나무, 그 풍요로움의 정수가 바로 이 열매 속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콤한 맛에 취해 살구를 몇 알 수확하고 나니, 비로소 나무의 몸체인 수피(樹皮)가 눈에 들어왔다. 45도쯤 비스듬히 몸을 기울인 살구나무의 껍질을 보며 친구가 감탄했다. "와, 정말 치타의 등 같아!" 친구는 마치 맹수의 잔등을 쓰다듬듯 나무를 어루만졌다. 크고 작게 갈라진 수피의 문양들은 역동적으로 굽이치며 아름다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조금 전 미술관에서 정교한 예술 작품들을 관람하고 나왔지만, 대자연이 빚어낸 이 경이로운 무늬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내게 나무의 껍질은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다가왔다.
심학산에서 만난 숯덩이 굴참나무
그로부터 얼마 뒤, 산불 현장을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나무들이 시커먼 숯덩이가 되어 우뚝우뚝 서 있는 광경은 참혹했다. 봄바람은 불어오는데, 숲은 여전히 겨울 한복판에 멈춰 서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 절망적인 풍경 속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굴참나무 둥치에서 연둣빛 새싹 하나가 돋아나고 있었다. 화마를 뚫고 솟아오른 생명의 기적에 순간 전율이 일었다. 코르크층이 두껍게 발달한 굴참나무는 자신의 겉몸을 다 태우면서도, 그 두터운 갑옷으로 심장부인 형성층을 필사적으로 보호해 낸 것이다. 새까만 수피와 대비되는 선명한 연둣빛 새싹, 세월이 흘러도 그 장엄한 생명의 서사는 결코 잊히지 않는다.
골이 깊어 골참나무
본래 굴참나무는 '수피에 골이 깊게 패어 있다'라고 해서 골참나무라 불리던 것이 굴참나무로 이름이 굳어졌다고 한다. 참나무 종류 중 코르크층이 가장 두꺼워 손가락으로 누르면 탄성 있게 들어갈 만큼 폭신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회갈색 수피는 세로로 깊고 굵게 갈라지는데, 이 거친 질감이 굴참나무 특유의 웅장함을 만든다.
이 두터운 껍질은 예부터 민가에서 '굴피집'의 지붕 재료로 귀하게 쓰였다. 공기층이 많고 기름기가 있어 비가 와도 물이 스며들지 않으며, 겨울에는 온기를 지키고 여름에는 열기를 막아준다. 한번 지붕을 올리면 20년이 넘도록 썩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 나무에게는 자신을 지키는 '방화복'이 되고, 인간에게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안식처'가 되어준 셈이다.
상처 없는 나무는 없다
나무의 수피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주름살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나무가 세상과 온몸으로 소통하며 견뎌온 흔적이다. 치타의 등처럼 매끄럽고 아름다운 수피를 가진 덕수궁의 살구나무가 축복받은 삶이라면, 산불을 견디고 멧돼지에게 뜯기며 옹이가 박힌 참나무의 삶은 숭고하다.
참나무는 맛있는 도토리를 내어주는 죄로 짐승의 이빨에 할퀴고 사람의 몽둥이에 맞아 상처 입는다. 그 틈으로 곤충이 깃들고 때로는 속이 썩어가기도 하지만 나무는 그 모든 상처를 묵묵히 받아내며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살아간다.
상처 없는 나무는 없다. 나무의 삶이나 사람의 인생이나 매한가지다. 나무는 상처를 극복하며 새로운 옹이를 만들고, 그 자리에 더 단단한 결을 채워 넣으며 자신만의 서사를 써 내려간다. 그러므로 옹이는 부끄러운 흉터가 아니다. 치열하게 살아남아 더 단단해졌음을 증명하는 영광스러운 '훈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