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알아차림
엄동설한.
1월 중순이 되니 정말 춥다.
산책길에 나설까 말까 망설이다
저녁이면 후회할 걸 생각하고
챙겨둔 가방을 메고 후다닥 집을 나선다.
산책길에 나서면 늘 보는 나무들과 다정한 인사를 나눈다.
울타리로 심어져 겨울에도 늘 푸른 잎을 자랑하는 사철나무는
초록 주머니 안에 빨간 열매를 보석처럼 달고 있다.
작고 빨간 열매들은 춥고 메마른 겨울 풍경을 환하게 밝히는 요정들이다.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식물이지만
사철나무 열매가 '얼마나 예쁜지' 지나가는 사람들 다 불러서 보여주고 싶다.
왁스로 코팅을 한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잎들이
오늘은 얼어서 우글쭈글 후줄근한 낯빛을 하고 있다.
반짝거리던 동그란 잎도 데친 배춧잎같이 풀 죽은 색이 되어버렸다.
"너도 추워서 바짝 얼었구나!" 안쓰러운 한마디를 던졌더니
"괜찮아요. 날이 풀리면 다시 반짝반짝할 거예요!"라고 한다.
나무들에게도 겨울은 힘든 계절이다.
겨우겨우 살아 겨울이라니!
젊은 날,
엄동설한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겨울은 지나가기 힘든 계절이었다.
마치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듯이 겨울의 시간은 몇 해동안 계속되었다.
몸이 그 시간을 기억하여 때가 되면 먹구름이 내려와 온몸을 무겁게 한다.
가슴에는 얼음이 박힌 것처럼 마음이 추웠다.
'내 고향 남쪽 바다~~'
설거지 할 때마다 나는 노래를 부르며 고향 바다를 그리워했다.
내 고향은 겨울에도 따듯한 바람이 부는데
이 도시는 이상하게 바람도 불지 않는데도 뼈 속까지 시렸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폭우가 내리는 날이면
들판의 풀들은 죽은 듯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
순간, 풀들이 다 죽었구나! 생각했다.
다음 날 숲에 가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풀들은 햇빛과 바람에 몸을 나부끼고 있었다.
이제는 얼어있는 사철나무의 안부를 덜 걱정하게 되었다.
식물의 생명력은 기적 같으니까.
어릴 적 놀던 집 뒷동산,
저 멀리 바다에서 불어오던 아까시나무를 휘몰아치던 바람은
내 몸과 마음을 남김없이 씻어주었다.
그 바람을 맞고 있으면 내 몸통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나무를 타고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고 싶었다.
그 바람이 나를 숲으로 이끌었고 어머니 숲은 나를 치유해 주었다.
이제는 엄동설한 한겨울에 꽃을 기다린다.
남몰래 꽃을 기다리는 그 마음이 마법처럼 마음을 화사하게 한다.
혹독한 겨울에도 나무는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어 꽃을 만들고 있었다.
겨울에는 겨울을 만나러 숲으로 가자.
가을부터 정성을 다해 만들어진 겨울눈.
엄마가 아기를 품듯이
나무는 꽃과 잎을 품고 겨울을 난다.
목련 나무는 보송보송한 털옷을 여러 겹 껴입고
칠엽수는 두꺼운 갑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바람 속에 서있다.
꽃망울을 터트릴 봄을 기다리는 것도 기쁘고
쨍한 추위를 이마에 맞으며 씩씩하게 걷는 것도 좋다.
당신의 겨울 속에도 봄이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