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의 효심, 장릉의 뽕나무

--왕릉 산책일기

by 물푸레



장릉에는 다른 릉과는 다르게

릉의 좌우로 암, 수 뽕나무 두 그루가 심어져 있다.

암뽕나무는 나무 둥치가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며 그 모습이 단아하지만

수뽕나무는 두 갈래로 갈라진 거대한 나무 둥치가 서로를 감싸 안듯 꼬여있어

넓은 하늘에 가지를 펼치며 장엄함을 연출하고 있다.

신록이 푸르른 날에 수만 개의 싱싱한 잎사귀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몇백 년의 시간을 이어주는 이 나무가 신비롭게만 느껴진다.


이 나무들은 인조가 자신의 부모님을 종묘에 모시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심었다고 한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아버지를 추존왕으로 만들고자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선조의 양자로 입적되었던 인조는 자신의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함으로써

왕의 아들이라는 정통성을 가지려 신하들의 반대 여론을 누르고

10여 년의 노력 끝에 아버지를 원종으로 추존하고 종묘에 신위를 모시게 된다.


인조가 정원군(원종)을 위해 뽕나무 신주를 만들고 다시 밤나무로 바꾸는 그 복잡한 절차를 고집한 이유는, 뽕나무가 가진 '정성'과 '생명력'의 이미지를 빌려 자신의 미약한 정통성을 보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단처럼 귀하게 부모를 모시고, 하늘의 뜻(부상 신화)을 받아 왕이 되었다"는 메시지를 예법이라는 틀 안에 담고 싶어 했던 것이다.


뽕나무는 단순히 신주를 만드는 재료를 넘어, 동양 문명사에서 '국가의 근본'이자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나무'로 대접받아 왔다.


죽음을 위로하는 나무

장례에서 뽕나무는 '임시 신주(우주, 虞主)'의 재료이다.

뽕나무 '상(桑)'자가 상례 '상(喪)'자와 음이 같아, "부모를 잃은 슬픔이 이 나무에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뽕나무는 비단을 만드는 누에의 생명줄이다. 죽음(상례)이라는 슬픈 사건을 생명의 근원인 뽕나무에 의탁해, 고인이 평안히 저승으로 건너가기를 바라는 '부활과 재생'의 의미가 담겨 있다.


농상(農桑)은 국가의 대본

조선 시대 왕에게 뽕나무는 권력을 지탱하는 경제적 기반이었다. 친잠례(親蠶禮)를 시행하며 왕이 직접 쟁기를 잡고 밭을 갈듯, 왕비는 직접 뽕잎을 따서 누에를 치는 시범을 보였다. 이를 통해 백성들에게 양잠을 권장했다. 현재 서울의 '잠실'이라는 지명도 조선 시대에 뽕나무를 대량으로 심고 누에를 키우던 국립 양잠소가 있었던 데서 유래하였다. 뽕나무는 곧 백성의 옷감(비단)이자 국가의 부를 상징했다.


하늘로 통하는 통로

고대 동양 신화에서 뽕나무는 매우 신비로운 존재로 묘사되었다.

부상(扶桑): 해가 뜨는 동쪽 바다 끝에 있다는 거대한 뽕나무는 열 개의 해가 이 나무에 걸려 쉬다가 차례로 하늘로 올라간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공상(空桑): 성인이 태어나거나 신령이 머무는 신성한 장소로 자주 등장한다.

뽕나무는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우주수(宇宙樹)'이다.


버릴 게 없는 나무

실제 생활에서도 뽕나무는 유용함 그 자체이다.

열매(오디)는 '상심자'라 하여 귀한 약재와 먹거리로 쓰였다. 초여름 푸른 열매가 붉은 자줏빛에서 까만 열매로 익어가는 모습은 인간에게 생명의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잎(뽕잎)은 누에의 먹이일 뿐만 아니라 차로 마시면 당뇨 등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껍질(상백피): 한방에서 호흡기 질환을 치료하는 약재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인조의 효심을 품고 생명을 이어온 장릉의 뽕나무.

오늘도 자유분방한 가지를 장엄하게 하늘로 펼치며

인간의 역사를 품고 오늘을 내일로 이어간다

푸른 생명과 풍요의 나무, 뽕나무!*

장릉의 암 뽕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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