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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그린 Sep 22. 2024

딥페이크 성착취 엄벌 촉구 시위 참여 후기

24.09.21 혜화역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이때까지 시위에 참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었다. 대학생이던 2016년쯤에 여성혐오 관련 시위가 활발히 일어났던 때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는 오히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도 지금보다 적었던 것 같고, 시위까지는 나가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몇 주 전 웹서핑을 하다 '딥페이크 성 착취 엄벌 촉구 시위'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브런치에 글이나 쓰면서 행동하는 일에는 쏙 빠진다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이 되어서인지 주변에서 페미니즘 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전보다는 활발하지 않아서, 나 하나라도 더 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시위라는 것은 나에게 멀고 두렵게 느껴지는 것이어서 개최 며칠 전까지도 갈지 말지 고민했다. 계속 망설였으나 가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드레스코드인 검은 색조의 옷을 입고 떨리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끝없이 이어지는 검은 물결 "우리가 증거다"

본디 토요일에 비 예보가 있어 우비도 챙기고 앉아 있는 것이 힘들지 걱정했는데, 날씨도 도와주는지 비가 그치고 선선한 기온이었다. 혜화역 근처 환승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는 중 그곳에서부터 시위에 참여하러 온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옷의 여성들이 많았다. 나처럼 혼자 있는 사람도 있고, 여럿이서 모여 있는 사람들도 있고. 대충 보아도 그 칸에만 열 명은 되어 보였기 때문에 혹시 생각보다 사람이 적을까 봐 걱정하던 내게는 위안이 되었으며 어떠한 연대감도 느낄 수 있었다. 말을 걸지는 못했지만 서로의 존재를 확실히 느끼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혜화역 2번 출구에 도착하자 시위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서 차례대로 입장하고 있었다. 경찰들이 시위대가 있는 면적을 따라 쭉 늘어서 있었고, 행인들은 뭘 하는 건지 궁금한 눈빛으로 까만 물결을 쳐다보았다. 3시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더니 꽤 앞 블록에 앉게 되었는데, 들어가는 길에 부스를 통과하며 피켓 2장과 까만 천을 일일이 나누어 주는 주최 측 모습이 상당히 체계적으로 보였다. 시위의 구성은 크게 구호 제창, 노래 제창, 자유발언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따라서 외치거나 박수를 치고 피켓을 흔들며 참여했다. 자유 발언 시간에는 실은 너무 무섭지만 이 자리에 섰다는 고등학생의 발언, 열정적으로 기업 규제를 촉구하는 경남 지역 여성의 발언 등 마음을 찡하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노래 중 사과 같은 내 얼굴을 개사한 '가해자 같은 네 얼굴', 퍼포먼스 중 '테무에서 산 경찰, 사법부, 국회' 등 유머가 돋보이는 프로그램 작명들이 많았다.


아래는 주최측에서 알려 준 구호의 일부이다. 혼자서 큰 목소리를 내는 게 어색하지만 함께 외치는 재미가 있다. 괄호 안이 시위 참여자들이 다 같이 외치는 부분이다.


유포의도/(없었다고)/봐주는게/(말이되냐)

혼자봐도/(범죄고)/같이봐도/(범죄다)

만든놈, 판놈, 본놈/(모조리/처벌하라)


주최측에서 받은 피켓


자리에 앉은 지 3~40분이 넘어서까지 검은 옷의 행렬은 계속 줄지어 들어왔다. 약 5,000명의 인원이 모였다고 들었는데, 기존 참여 조사에서 추산하던 3,000명을 크게 웃도는 숫자다. 모르는 사람에게 '이거 좀 드셔 보시라고 주셨어요.'라며 과자도 받았다. 첫 시위이기에 이게 어느 정도 규모인지에 대한 감은 없지만 뛰어서 시위대 맨 앞에서 끝까지 조금 힘든 느낌이 들었으므로 많은 편이 아니었을지 생각해 본다. 시위 대열에 앉아서 좌측으로는 버스와 차들, 우측으로는 행인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하나 같이 시위대를 놀란 듯 바라보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기를 바란다.



추가 후기, 시위대 맨 끝의 동반석

1시간 정도 시위에 참여한 후 나는 시위대의 맨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중간부터 함께 하기로 한 일행이 남성이었고, 남성 혹은 남성을 동반한 일행의 자리는 따로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는 무대에서 하는 이야기도, 시위대의 구호도 잘 들리지 않았기에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구호라도 열심히 따라 외치려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해당 석에서는 다른 시위 참여자들의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기 위해 구호 제창도 금지되었다고 한다. (동반석 모두에게 해당인지 동반석의 남성에게만 해당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남성의 모습, 목소리, 존재가 다른 사람들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되면서도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 의제에 대해 남성들도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낯설고, 우선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방증 같아서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최근 인도 여성 의사 강간 살해 사건에 대한 시위에 많은 남성들이 섞여 있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실제로 남성 동반석에 있는 남자 수는 열 명 남짓 될까 했으니 주최 측 입장에서도 그냥 변수로 관리할 정도의 크게 유의미한 숫자는 아니어 보였다.)


다만 동반석에서 보이는 재미있는 풍경으로는 꽤 다양한 형태의 그룹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혼자 온 남성, 커플로 온 연인,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아 남아들과 함께 온 어머니들까지. 운동에서 일단 하나의 형태를 추구하고 선을 명확히 긋는 것이 가지는 추진력과 힘에 대해서 최근에 이해하게 되었지만, 미래에는 동반석의 풍경이 메이저한 것으로 될 수 있을까 상상해 본다. 그냥 꿈같은 상상인 것은 안다. 일단 한국의 성 착취적인 남성 문화부터 해결이 안 되었는데, 뭘 바라겠어? 나는 여전히 이상주의자적인 면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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