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더 섬세한 정의가 필요하다
요즈음 혼인 상태로 사람을 분류하는 방식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전통적인 기혼·미혼, 그리고 요 몇년 사이 부쩍 포털 검색 결과가 늘어났다는 '비혼' 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었다. 미혼과 비혼은 둘 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미혼은 아직 하지 않은 것, 비혼은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나는 혼인 상태를 기준으로 자신을 분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마다 다소 난처한 기분이 든다. 미혼과 비혼의 정의를 고려했을 때 '미혼'이라고 말하면 언젠가는 결혼을 하거나 결혼이라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고, '비혼'이라고 말하면 평생 절대 결혼하지 않아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그렇게 확고하게 정해놓는 미래가 얼마나 있을까? '언젠가는 도자기공예를 배우고 싶어' 나 '스페인에 살면 재밌지 않을까?' 같이 어떠한 결과를 바라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이루어지기를 굳이 적극적으로 바라지 않거나 아주 막연한 사건으로 느낄 수도 있다.
3가지 분류 중 꼭 선택한다면 나는 '미혼'이다. 미래에 결혼하게 될지, 하지 않게 될지는 모르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하지 않을 마음은 없고 결혼이라는 선택지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비혼'이라는 말에는 엄청난 무게와 일종의 엄숙함까지 담겨 있어서 비혼이라고 말했다가 마음을 바꾸거나, 어쭙잖은 마음으로 비혼을 선언했다가는 다른 비혼인들에게 '진짜 비혼이 아니다', '너 같은 애들이 비혼 욕을 먹이는 거다'라며 질타를 듣기 일쑤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신념 혹은 종교를 바꾸는 일이 결혼하지 않을 마음을 바꾸는 것보다 어려운 선택인 것 같은데, 요즘에는 오히려 결혼하지 않을 마음을 바꾸는 게 더 욕을 얻어먹는 것 같다. 그래서 미혼으로 자신을 정의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석연찮은 점이 생긴다. 내가 결국 평생 결혼할 마음을 딱히 먹지 않는다면, 나는 그냥 영원히 '결혼 대기' 상태인가?
주변 사람들에게 혼인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면 확신을 가지고 "꼭 결혼할 거야!"나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야!"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심지어 평생 연애와는 먼 삶을 잘 살아가는 친구도 "비혼주의까지는 아니긴 한데…." 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면 이제는 "비혼주의까지는 아닌데…." 라는 말에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처럼 미래를 확정 지어두지 않은 사람들이 불편함 없이 자신의 상태를 정의할 수 있는 그런 단어 말이다. 앞에서 서술한 예시처럼 확고하게 결혼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어떠한 어길 수 없는 신념처럼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반혼'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를 '결혼 대기 중' 이라고 굳이 정의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비혼'이라는 단어를 대신 쓰는 것도 괜찮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