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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그린 Jul 02. 2024

아이들은 점점 영토를 잃어간다

'노키즈존'을 반대하며


어느새 <노키즈존>은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문구가 되었다. 내가 어릴 때는 특별히 성인용 공간이 아닌 이상 어린이이기 때문에 어딘가에 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그냥 깔끔하게 생긴 카페에도 출입문 옆에 '노키즈존'임을 써 붙여 둔 곳이 많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힙하다'는 감각을 주는 가게일수록 그러하다. 이제 '어리다'는 속성은 '멋있다'의 반의어가 되어버린 걸까?


온라인으로 검색하면 볼 수 있는 가게 정보에 크게 노키즈존임을 광고한다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사회적 비판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글씨로 표기한 후, 함께 들어오려는 어른과 아이에게 '여기는 노키즈존이니 죄송합니다.'라고 입장을 거절하는 곳도 많아 양육자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애써 걸음 했는데 참 난감하겠다 싶다.


노키즈존이 유행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무개념 부모'이다. 업주를 힘들게 하는 무개념 부모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무개념 아저씨도, 무개념 젊은 여자도, 무개념 고등학생도 존재한다. 영역을 나눠 그을 수 있는 모든 범주 안에는 대응하기 힘든 고객들이 존재할 텐데, 왜 어린이만 콕 집어서 배제하는 것이 이토록 쉬워진 걸까?  


첫째는 어린이들에게는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아직 사고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고, 어른의 말을 배우고 따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는 어린이 출입 금지인 구역이에요' 라고 했을 때 그것에 반발하거나, 반발의 근거를 생각해 내거나, 결집하여 대항하는 것이 쉽지 않다. ('노키즈존'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보고 배운 아이들이 자라면 어떤 어른이 될까?)  


둘째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점점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만 해도 가구마다 어린이가 두셋씩은 있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제는 어린이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 이들만이 그 경험을 공유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가깝지 않으면, 굳이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거나 배려할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아동은 시끄럽고 민폐를 끼친다'라는 아동 혐오 정서가 만연해질수록 양육자들은 자신이 무개념 부모가 되지 않을지 전전긍긍하게 된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향한 배제에 대응하지 못한다지만 양육자들이 적극적으로 이 역할을 해주지도 못하게 되는 이유이다.  


정말 상대하기 힘든 아이와 부모가 업장을 다 뒤집어 놓았을 때, 자영업자가 그 피해를 전부 뒤집어쓰고 감당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이 상관없이 진상 손님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거나, 퇴거 요청 및 배상 청구를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된다. 지금도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신고와 처리의 과정이 쉽지 않다. 법적으로는 유사시 공권력이 빠르게 개입해 점주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마련되어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동료 시민으로서 몰상식한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무관용의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대기 시간을 늘어나게 한다고 장애인의 출입을 일괄적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 설명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노인의 출입을 일괄적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 약자의 배제는 오로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이유로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지, 기득권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행해져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출입 금지 조치로는 성인용 클럽이나 성인용 공연 등이 있다) 이때 아이들을 높은 층고, 날카로운 모서리, 뜨거운 국물 등에서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노키즈존을 시행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데 이것은 궤변이다. 세상 어느 곳에든 존재할 수 있는 일반적이고 잠재적인 위협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는 것은 그 보호자의 역할이지, 타인이 미리 나서서 금지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물론, 실제로 아이가 다치는 일이 발생했을 때 정말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면 점주의 책임을 면하거나 덜어 주는 안전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사진: UnsplashMarkus Spiske)


노키즈존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아이들을 아주 편리하게 삶의 울타리 바깥으로 밀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아이들의 삶과 생각을, 울고 떠드는 속성에 대해 점점 더 이해할 수 없어진다. 눈앞에서 어린이가 사라지게 되면, 그다음은 이제 장애인, 노인, 외국인, 저소득층일까? 선을 긋는 사회에서는 자꾸 선이 더 생길 수밖에 없고 어린이를 지우는 나라에서 어린이의 숫자는 늘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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