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젠더화된 언어에 대한 유쾌한 성찰...어맨다 몬텔, <워드슬럿>
욕설을 내뱉는 행위는, 솔직히 재미있다. 페미니스트 화자인 내가 반여성적 어원을 가진 단어를 사용할 때 죄책감과 함께 미묘한 쾌감이 따라온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사실, 사람들이 욕설을 좋아하는 데는 논리적인 이유가 있다. '씨발', '썅', '좆까' 같은 단어들은 발음하기 재미있는 강력한 파열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린이는 쓰면 안 되는 금단의 영역 같은 짜릿함과, 명사·동사·형용사를 넘나드는 문법적 다재다능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 등이 욕설을 보다 더 흥미로운 언어의 범주로 만든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욕설은 오랫동안 금단의 영역이었다. '퍽fuck'같은 단어들은 여성이 쓰기에는 너무나도 저급해서 이와 같은 단어를 입에 담는 여자에게는 부정하거나 숙녀답지 못하다는 꼬리표가 달렸다.
결국 현대의 욕설은 대부분 남자 성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의 몸과 섹스, 판타지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못하다. 저속함의 힘은 남성을 위해서만 발휘되는 것이 그래서이다. (p244)
어맨다 몬텔은 더 페미니즘적인 욕설을 내뱉기 위한 전략의 한 가지로 현재의 욕설이 자신의 몸을 고려하지 않았거나 임파워링을 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새로운 욕설을 만들어 낼 것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클릿'(클리토리스의 줄임)을 써 볼 수 있다. '클릿'은 활동적인 신체 부분이며, 다채로운 음성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모욕적인 욕설의 기능을 하기에 적절하다는 주장이다. "홀리 클릿!" 꽤 자연스럽고 괜찮은 어감이다.
매일 사용하는 언어, 페미니즘적으로 뜯어보기
<워드슬럿>은 욕설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어의 범주를 다루는 흥미로운 11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각 챕터에서 작가는 성 불평등한 문화를 구성하는 불평등한 언어에 대해 유쾌하게 꼬집고, 비틀고, 전복한다. 말하고 쓰는 사람으로서 언어를 다룰 때 어딘가 찜찜한데, 왜 찜찜한지를 설명할 수 없어 답답한 상황에 종종 봉착한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부분들을 다듬어서 내가 재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 벼려 주는 듯한 시원함을 느꼈다. 캣콜링은 어째서 칭찬이 아닐까? 왜 '게이 같은' 말투는 있는데 '레즈비언 같은' 말투는 없는 것일까? 십 대 소녀 같은 말투는 왜 전문성이 없게 느껴지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그 해답을 언어화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단어창'을 기다리며
'슬럿slut'은 난잡하게 많은 사람과 성관계하는 여성에 대한 멸칭이다. 이 단어는 명사 뒤에 붙으면 무언가에 제대로 미쳐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되는데 그 대상에게 완전히 열려서 난잡해질 정도로 좋아한다는 뜻이다. 국내에도 들어와 있는 샌드위치 브랜드 '에그슬럿egglsut' 은 계란에 미친 사람이라는 뜻이고 국내에도 비슷한 비속어로 -창 ('헬창' 등) 이 있다.
따라서 '워드슬럿' 이라는 제목은 '슬럿이라는 단어', 그리고 '단어에 미친 여자'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진다. 단어에 미친 여자는 곧 작가이기에, 제목부터 아주 재치가 넘치는 책이다.
아쉬운 부분은 영어에 익숙한 독자가 아니라면 이런 맛깔스러움이 크게 와닿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실제로 책 내의 예제들이 대부분 영어에 국한되어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알기 힘든 속어들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나름대로 영어를 한다고 하는 필자도 한참을 찾아봐야 하거나 대충 넘겨야 했던 페이지들이 있다.
언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한국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지만, '한국어로도 이런 책이 있다면 좋을 텐데...' 라는 바람을 읽는 내내 지울 수 없었다. '워드슬럿'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단어창' 이 되려나? 이 책을 접한 한국의 유쾌한 '단어창' 분들이 한국어판을 집필해 주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