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
'누칼협', 신조어라고 하기엔 약간 오래된 단어이지만 2023년을 가장 뜨겁게 달군 밈이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함?"의 줄임으로, 누군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 불평할 때 그건 다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결과이지 않냐며 입을 막는 용도로 쓰인다. 예를 들어 공무원이 과한 업무량에 대해 불평할 때 "그러게 누가 공무원 하라고 칼 들고 협박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이라면 세상 모든 불만을 일축할 수 있다. 이 단어는 2021년부터 남성 위주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주로 사용되었으며 실존하는 불합리를 모두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 즉 자신의 책임으로 취급하는 위험한 밈이라고 비판받은 바 있다.
여성 위주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밈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듯하였으나, 요즘 이 밈은 형태를 바꾸어 여초에도 수입되고 있다. 바로 '죠' 밈이다.
영화 <기생충>의 유명한 대사 "그래도 사랑하시죠?"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연애와 결혼 생활에 대한 담론이 활발한 여초 특성상 누칼협과는 달리 연애, 결혼 주제에 한정되는 경향성이 있다. 과거에는 남편 혹은 남자 친구에 대한 고민 상담 글을 올렸을 때 보는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거나 분노해 주었다면, 이제는 '죠?' 라는 댓글만 우르르 달리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도 사랑하시죠?'를 줄여 '죠 ?'만 쓰는 것인데, 그런 남자를 만나는 것도 헤어지지 못하는 것도 화자의 잘못이며 어차피 헤어지지도 않을 것이니 읽는 이는 감정 소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기껏 같이 욕을 해 주었더니 갑자기 남자 친구 편을 들거나, 이혼만은 못 한다는 식으로 일면 답답한 태도를 보인 사람들도 많았기에 더 이상 헛된 시간 및 감정 낭비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들불처럼 퍼지는 '죠?' 밈은 기혼과 비혼의 편 가르기, 그리고 기혼자 혐오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러게 왜 결혼해서', '그러게 왜 남자와 연애해서'라는 전제로 누군가의 피해자성을 연애/결혼을 한 본인의 책임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다.
가정 폭력에 준하는 상황에 처해 도움을 구하는 글을 올렸는데, 그런 남자와 결혼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거나 아예 결혼 같은 것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원론적 책임론만을 제시한다면 어떤 피해자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얘기하기 어려워질수록 피해자는 피해 안에서 고립될 뿐이다.
또한 연애나 결혼, 출산을 하는 것은 누구나 가질 수도 있는 욕망이고 할 수 있는 선택 중 하나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가부장제에 복무하는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고, 그 관점에도 공감하는 면이 있지만 가부장제를 선택한 여성이 꼭 불행해질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선택을 했으니, 그에 따른 나쁜 결과 또한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며 당해도 싸다' 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에게 자신의 욕망을 죽이고 선택지를 줄이도록 강제하는 반자유적 메시지를 준다.
'누칼협', '죠' 는 개인이 받은 피해는 오롯이 개인의 문제라는 너무나도 냉소적인 태도이다. 이런 종류 댓글이 인터넷 창을 지배하게 되면 공감을 해 주려던 사람조차 이에 동조하거나 적당히 무시하고 지나가게 되어 전체적으로 냉소주의적이고 초개인주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듣기 싫다면 듣지 않아도 좋다. 대답하기 싫으면 대답하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찬물을 끼얹지는 말자. 개인들끼리 서로 입을 막으면 뒤에서 웃는 것은 그 책임을 진짜 져야 할 정치권력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