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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그린 Jul 04. 2024

달을 보랬더니 손가락을 보고 혐오라고

GS, 넥슨, 르노 '집게손 사태' 언제까지 반복되나?




'견지망월(見指忘月)'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본다는 뜻으로 본질을 외면하고 상관없는 것에 집착한다는 사자성어가 있다. 작금의 세태에 참으로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페미 손가락 음모론'을 주장하는 온라인상의 안티-페미니스트들이 그 중심에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 진짜로 손가락만 보고 있다. 


구글에 '달과 손가락' 이라고 검색해서 찾은 수많은 아무 사진 중 하나


집게손가락 포즈가 남성 혐오의 표식이고, 그것을 회사의 산출물에 은밀하게 집어넣으려는 세력이 있다는 주장은 2021년 GS25 포스터 논란으로부터 시작했다. 뜨거운 소시지를 집으려는 손가락 모양이 자연스럽지 않으며, 하고 많은 요소 중 소시지를 사용한 것도 남성 성기를 나타낸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논란이 된 GS25 포스터


애플 및 구글 이모지에도 있는 � 손동작이 남성 혐오 표식이라는 주장은 2017년 폐쇄된 여성 커뮤니티 메갈리아'의의 로고에 있는 손 모양과 닮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손동작은 수백 가지가가 있지만, 그중 이모지로 만들어지는 것은 그만큼 흔하게 쓰인다는 뜻이다.)   


'메갈리아'의 로고


해당 로고에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가 작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고 한다. 메갈리아의 로고가 그러한 의미를 담고 만들어졌는지는 현재 적확한 자료로 확인하기 어렵다. '동등함'을 뜻하는 부등호 '=' 를 표시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필자의 눈에는 메갈리아 이름의 유래인 '이갈리아의 딸들' 표지 그림을 본딴 것으로도 보인다. 아무튼 설령 혐오의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 진짜라고 하더라도 이미 오래전 폐쇄된 사이트의 소위 '남혐 정신'을 직업적 리스크를 지고 전파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거 존재한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필자는 여러 여초 커뮤니티를 종종 눈여겨보고 있고 그 안의 혐오 재생산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지만 어디에 손가락을 몰래 표시하자는 음습한 공모 같은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작년에는 넥슨에서 서비스하는 게임 '메이플스토리'가 집게손가락 논란으로 이슈가 되었다. 수천 장을 이어 붙인 애니메이션 중 한 프레임에 해당 손동작이 들어갔다는 이유다. 이러한 창조적인 논란들은 결국 실체를 가지고 그 대상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GS25, 넥슨에서 극악무도한 사상범을 색출하고 보니 결과는 어떠했는가? GS25 포스터 디자이너는 아들과 남편이 있는 워킹 맘이었으며, 메이플스토리 애니메이션의 해당 프레임 작업자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극우 성향 남초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에서 일베 로고를 다른 기업 로고 등에 교묘하게 숨겨 놓는 행위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일부는 이것이 메갈리아 집게손가락 이슈와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둘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일베 로고'는 틀린 그림 찾기처럼 숨겨져 있기 때문에 찾아내기 힘들지만, 일단 찾기만 한다면 그것은 원본과 명확하게 구분된다. 하지만 '메갈 손'은 그렇지 않다. 애초에 일상적인 손동작과 같은 동작이기 때문에 만일 행위자가 정말로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양측 모두 그렇다 아니다를 증명할 명확한 방법 없이 서로에게 반대하기만 하는 소모전에 빠진다. 이는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 증가와 끊임없는 상호 비방의 재생산으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쟁점은 '남성 혐오 손짓을 해도 된다.' 대 '남성 혐오 손짓을 하면 안 된다.' 가 아닌, '아무 의미가 없는 동작이다.' 대 '남성 혐오 손짓을 하면 안 된다.' 이기 때문에 해당하는 제스쳐를 아예 무시하고 지나간다면 그 동작에 지금처럼 의미가 실릴 일도 없다. 애초에 혐오 표현을 담은 동작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양측의 의견이 대립하는 부분이 아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기업들의 대응이다. 물론 영리기업의 특성상 소비자가 민원을 넣으면 그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해자가 없는데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만 속출하는 이 상황을 어영부영 사과로 넘기게 되면, 기업이 그것을 인정한 꼴이 되기 때문에 '메갈 손' 주장자들에게 자신이 피해를 당했다는 확신을 키우게 되고, 기업을 쥐고 흔들었다는 효능감 또한 커진다. 그러면 타깃은 다음 기업, 혹은 이미 한번 자신들의 말을 들어 준 전적이 있는 해당 기업이 되고, 같은 일은 반복된다. 실제로 넥슨 사태 이후 게임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해당 게임의 그래픽에 대해 점점 세세한 잣대를 기준으로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림자나 머리카락의 모양이 해당 손가락의 모양으로 보인다는 둥 'ㄷ' 모양과 조금이라도 닮았다 싶으면 발작적으로 시정을 요구한다. 이런 논쟁이 피곤한 유저들은 점차 이탈하여 해당 기업의 소비자는 점점 '혐오 피해 주장자들'로 좁혀지기 때문에 기업은 그들이 어떠한 요구를 하더라도 끊임없이 들어줄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다. 


중세의 마녀사냥이 떠오르는 손가락 사냥 현상이 양상이 과열되는 가운데, 이번 르노 그룹에서 '페미'로 지목된 직원이 더 걱정되는 이유는 이미 얼굴과 신상 정보가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안이든 간에 다수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비난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사람은 극도의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기업이 직원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에서 서술했듯, 직원 개인의 책임이라며 꼬리를 자르고 사과로 무마하는 행동으로는 기업 또한 장기적 악순환에 빠질 뿐이다. 무의미한 사회적 비용을 더 소모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대응의 원칙을 세울 것을 권한다. 소비자도 기업도 무의미한 손가락 대신 달을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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