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은 그냥 일어난다.
2주 전 보직해임을 통보받은 이후 1주일 전에 조직개편이 발표되었고,
오늘은 직원들의 새로운 부서가 결정되는 후속 인사발령 게시되어 우리 팀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지난 몇 년간 내 모든 시간을 갈아 넣었던 순간들의 실체가 사라져 버렸다.
지난 2주간 수많은 "만약"의 상황을 생각했다.
올해 억지로 저가 수주를 했더라면 팀이 사라졌을까?
사업부에서도 축소 정도로 계획했고 모두가 축소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떤 경로로 대표이사까지 해체의견이 올라갔고 누구의 결정으로 해체까지 가게 되었을까?
나에게는 깔끔한 이유가 필요했다. "목표 대비 50% 이하 평가를 받은 팀은 해체"와 깔끔한 이유.
그러나 26년간의 내 경험을 돌이켜 보면 회사 내 정치역학은 생각보다 복잡해서
부서 간 경쟁하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의사결정이 나오기도 하고
사업부장이나 대표이사의 개인적 경험에 의해 어이없게 좌절되는 사업도 있다.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난다."
26년 전 이 회사에 입사한 것도 싱가포르에 근무하면서 와이프를 만난 것도 그냥 일어난 일이다.
지금의 회사를 다니던 선배가 학교로 지원서를 가져왔을 때 학교 정문에서 우연히 만났고,
와이프가 싱가포르에 처음 오는 날 팀장이 나에게 공항 픽업 업무를 시켰고 그날 저녁을 같이 했다.
이런 일들이 없었다면 지금 회사에 다니지도 않을 것이고 아이들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겠지.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낯선 도시에서 어머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도 존재하지 않았겠다.
원자폭탄 투하로 히로시마에서 약 20만 명이 죽었는데 최초에는 교토가 표적이었다고 한다.
표적 도시가 바뀐 이유는 원자폭탄 표적 선정 위원회 소속 장군의 개인적 경험 때문인데
그 장군의 신혼 여행지가 교토였다고 한다.
한 사람의 개인적 경험이 20만 개의 사연이 있을 20만 명의 죽음과 삶이 결정했다.
나는 비관주의자 또는 염세주의자는 아니다.
나쁜 일이나 슬픈 일이 나의 일상을 주저앉히려 할 때 나는 항상 생각한다.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난다."
현실주의자인 나에게 이런 철학적 고찰도 때때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