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마지막날. 나는 상반기 가계부를 정리했다. 성급한 판단이였을까? 1월부터 7월까지의 소득 내역와 지출 내역을 추렸고 대출 상환 기록을 복기하며 나름대로 아끼며 잘 살았다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나서 8월 마지막 남은 휴가를 떠났다.
사건은 휴가지에서 터졌다. 지인들과 함께 간 8월초의 속초는 무척이나 더웠고 엄청난 인파로 복잡했다. 그러던 중 내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입수했다. 바다 침수폰이 된 순간이다. 핸드폰은 돈 주고 살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지난 5년간의 사진과 영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이들의 모습과 우리 가족의 추억이.
멘탈을 부여 잡으며 지인들과의 일정을 마치고 일요일 댓바람부터 속초를 떠나 용산으로 향했다. 바다 침수폰은 부식이 될 수 있어 되도록 빨리 데이터 복구를 맡겨야 한다는 말에 일요일에도 접수해주는 데이터 복구 사설 업체를 찾아간 것이 두 번째 액땜이였다. 그 업체는 실로 대단한 업체로 시간을 질질 끌면서 계속해서 추가금을 요구하는 업체였다. 일단 업체에 데이터 복구를 의뢰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갑으로 변해 온갖 부정적인 상황을 주입하고 결국에는 돈을 지불하게 하는, 알고도 속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업체였던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사진과 영상을 살리는 데이터 복구 여부 소식을 듣는데 총 11일이 걸렸고, 그 후로부터 7일 뒤에 데이터를 찾으러 오라는 소리를 들었다. 제대로 된 업체를 찾아갔다면 3~4일 안에 데이터 복구 여부를 알 수 있고 늦어도 십일 안에 모두 해결 될 일을 나는 무려 18일이 걸린 것이다.(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데이터는 아직 받지도 못했다. 그저 데이터 복구 소식만 들었을 뿐) 여기에 금액은 51만원. 속이 쓰린 금액이였지만 지난 5년 간의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자료이다.
데이터 복구에 집중하는 중에 어머니가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소 타고 다니는 소형 오토바이를 타다가 넘어져서 가벼운 뇌출혈과 어깨뼈 골절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방의 의료원에 응급 이송되었으나 큰 병원으로 갈 것을 권유받아 용인 세브란스 상급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것이다. 일주일 간 입원하여 여러 검사를 받고 있다.
8월초부터 갑자기 들이 닥치는 여러 일들에 나는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다들 액땜했다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핸드폰 침수와 데이터 복구 업체와의 실랑이, 금전적인 손해, 스트레스. 어머니의 입원과 병간호... 이 모든 것들이 '액땜'이라는 이름으로 두리뭉실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왜 유독 안 좋은 일들이 쓰나미가 밀려오듯 무자비하게 오는 것일까?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다는 내 생각이 오산이라고, 세상 일이 네 마음대로 될성싶으냐고 하늘이 말하는 것만 같았다. 절망속에서 거진 십일 정도는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지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렇게 저렇게 하나씩 나아가는 일들을 보면서 서서히 내 정신도 돌아왔다.
"그래, 이건 액땜이야. 좋은 일이 오려고 액땜한거야. 그중에서도 나는 가장 값싼 액땜을 했지. 돈을 주면 데이터가 복구 될 것이고, 어머니도 큰 수술없이 쾌차 하실 수 있으니까."
사람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가장 값싼 액땜을 했노라고.
돈으로 막을 수 있는 액땜이 가장 값싼 액땜인 것이요, 불행 중 다행인것이다.
2025년 8월 13일 : 신촌 세브란스 병원 어머니 병간호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