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재판

by 서운인혜

법정에 선 바울 사도-사도행전 25~26장 KLB(현대인의 성경)

사도 바울의 이야기가 너무 감명 깊어 이 내용을 국어 지문으로 한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기독교 국어 지문을 자주 쓸 예정입니다.


<법정은 개인의 유무죄를 가리고, 사회의 정의와 부정의를 판별하는 진실의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문헌 속에만 존재하던 법이 현실로 드러나고, 사람들의 의식 속에 내재해 있던 정의의 관념이 구체적 형태를 갖추게 된다. 또한 법정은 국가와 사회의 통치 이념이 은밀한 베일을 벗고 드러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법정은 원고와 피고, 개인과 국가가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갈등의 장이기도 하다. 그 갈등은 때로 격렬하고 심지어 잔혹하기까지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의견과 신념을 더욱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 때로는 갈등의 한가운데서 진실은 더욱 선명하게 현현한다. 나아가 법정에서 촉발된 논쟁은 법정을 넘어 법정 밖 공간에까지 파급력을 미치곤 한다.

사도 바울을 둘러싼 로마의 법정은 당대 로마의 제도와 유대인들의 신념, 그리고 사도가 신앙하는 기독교의 본질이 밝혀지는 곳이다. 고대 로마 제국은 방대한 영토를 통치하면서도 피지배민의 종교와 관습을 전면 폐기하지 않고 정치적 충성만 보장된다면 종교적 다양성을 수용하는 관용 정책을 유지했다. 이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종교 운동이 기존 사회 구조를 위협하거나 공공질서의 동요를 야기한다고 판단될 경우, 로마는 무력과 법을 동원해 이를 억제했다.

사도행전 25~26장에는 이러한 로마 통치와 종교적 신념의 충돌이 생생히 드러난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체포되어 유대인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성전 모독과 율법 위반, 더 나아가 사회 불안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고소당하였다. 총독 베스도는 바울의 혐의가 로마법상 반역죄에 해당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예루살렘 송환을 제안했다. 그러나 바울은 이를 거부하며 총독 베스도 앞에서 “나는 황제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겠습니다”라며 로마 시민권자로서 '황제 상소권(provocatio ad Caesarem)'을 행사했다. 이는 속주 총독의 사법 재량권과 로마 시민권자의 상소권이 충돌할 때, 최종 판단권이 황제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황제 상소권'은 공화정기 로마에서 시민이 참주적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였으나, 제정기에 들어와서는 황제의 최종 재판권을 확인하는 통치 장치로도 기능했다. 이 권리는 단순한 피고인의 권리 주장 이상으로, 로마법이 규정한 시민권 개념과 속주 통치 구조의 본질을 드러낸다. 실제로 로마 시민은 지방 총독의 사법권에 복종하되, 사형이나 중대한 형벌이 예상될 경우 황제에게 최종 판결을 청원할 수 있었다. 또한 황제 상소권은 ‘황제 숭배’가 로마의 통치이념이었던 시대에 시민이 황제의 직접 판단을 받음으로써 정치적 충성의식을 확인하는 절차적 장치이기도 했다. 즉, 상소권은 법적 권리이자 황제 숭배 질서의 표현이었다. 로마법은 표면적으로는 ‘법 앞의 평등’을 표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황제권을 강화하는 구조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이사랴의 법정에서 바울은 총독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의 혐의에 대해 변론하였다. 그러나 이 상황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정식 재판(trial)이라기보다는, 로마법 체계상 ‘예비 심문(preliminary hearing)’ 혹은 ‘공판 준비 절차(pre-trial examination)’에 해당한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후 가이사랴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벨릭스 총독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여러 차례 심문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당시 총독이었던 베스도는 바울의 혐의가 로마법상 형사범죄에 해당하는지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는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의 사건을 설명하면서, “그에 대해 무엇이라 적어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언급한다. 이는 베스도가 바울에게 형벌을 선고하기보다는, 황제에게 사건을 송부하기 위해 그 성격과 혐의 내용을 확인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심문 과정에서 바울의 무죄 논증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법적 관점에서 그는 자신이 유대인의 율법, 성전, 혹은 로마법을 어긴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유대인들의 고소가 구체적 증거 없이 이루어졌음을 지적하였다. 다음으로 신학적 관점에서 자신이 믿는 부활 신앙은 유대교인들이 이미 인정하는 교리임을 강조하고, 자신의 신앙이 유대인들이 믿는 경전인 구약의 일관된 논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님을 강론하였다. 사도는 예수를 만난 개인적 회심 체험을 증언하여 자신의 신앙이 새로운 이단이 아닌 메시아 예언의 성취임을 논증한다. "지금 내가 여기서 심문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에 희망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바울은 고백한다. 유대교인들이 믿고 기대했던 성경의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전파함으로, 도리어 성경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고소당한 상황의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바울 자신이 과거에 바리새파였다는 사실은 당시 부활의 교리를 굳건하게 믿고 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정작 예수의 부활에 관해서는 불신하는 위선적 모습을 드러낸다. 로마법상 바울은 '변호인(advocatus)'을 서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혐의가 단순한 형사사건이 아니라 기독교 교리의 문제임을 인식하였고, 이를 복음 증언의 기회로 삼고자 스스로 변론하였다. 법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도 당시 심문의 성격상 형벌을 선고받는 단계가 아니었기에, 법적 대리인의 필요성도 낮았다.

결국 아그립바 왕은 “이 사람이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더라면 석방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바울의 무죄를 인정한다. 그러나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무죄를 인정하면서도, “네가 이 몇 마디로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것 같으냐”라고 반문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완강히 거부하였던 당시 유대교인들의 인식을 보여준다. 로마의 총독 베스도 역시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다”고 말했는데, 여기에는 로마 지식인 사회가 초자연적 계시와 부활 신앙을 '광기(mania)' 혹은 '미신(superstitio)'으로 간주한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당시 유행했던 스토아 철학이나 플라톤주의에서 ‘로고스(logos, 이성)’로 검증되지 않은 진술은 비합리적 영역에 속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결국 바울은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황제에게 상소한 이상 로마로 이송되어 장기간 구류 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다면 그의 상소는 로마 시민권이 보장해 준 자유권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바울이 로마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겪은 여러 권리 침해 사례들을 고려해 보면 그의 법적 권리 행사, 즉 상소권의 행사가 진정한 자유의 확대였는지, 아니면 또 다른 구속의 시작이었는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자연법적 권리가 국가 권력 안에서 어떻게 규정되고 실현되는지를 평가할 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할 수 있다. 즉, 국가가 보장하는 권리가 단순한 ‘형식적 권리의 선언’에 그치는지, 아니면 ‘실질적 자유의 보장’으로 이어지는지를 문제 삼는 현대 법철학의 주요 논의와도 연결된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법정 변론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피고인으로서의 그의 논변이 단순히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는 마치 법정의 시간을 여러 사람 앞에서 복음을 전파할 기회로 생각하고 자신이 믿는 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치중하고 있으며, 자신의 무죄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 행동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크리톤>에 나오는 소크라테스를 연상하게 하는 듯 보인다. 유벤이 말한 바와 같이 철학과 정치 간의 갈등 속에서,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탈옥을 거부하며 자신의 가르침이 진리임을 입증하고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소크라테스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바울의 이야기는 한 인간이 법정에서조차 자신의 신념과 사명을 우선시하는 철학적 태도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의 증언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의 주장은 소크라테스의 그것과 분명히 다른 지점을 내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법 앞에서 인간의 정의와 사회적 질서라는 자신의 가르침을 수호하였다면, 바울은 법적 판단을 넘어서는 초월적 진리의 선포 자체를 자신의 궁극적 사명으로 여겼다. 즉, 바울의 변론은 자신의 무죄를 논증하거나 사회계약적 정의를 수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법정을 복음 증언의 장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그 본질적 의미가 있다. 바울이 전하려던 것은 어떠한 신념이나 가치관, 가르침으로는 정의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 자체였기에 증언의 장으로 변한 공간 속에서 자신이나 자신을 향한 변호는 부차적인 문제로, 혹은 증언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또한 바울의 증언은 현실 국가와 사회를 상대로 도덕적 우위에 선 상태에서 전해지는 '철학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전파하는 복음 그 자체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복음이 성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온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초대'일진대, 바울의 증언에서는 증언 내용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복음을 듣는 청자였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그의 간절한 외침에 담겨있다.

“말이 적든 많든 왕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묶인 일 외에는 다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바울의 증언은 단지 법정에 모인 사람들에게만 울려 퍼진 것이 아니었으며, 그는 법정을 매개로 법정이라는 제한적 공간을 넘어 온 세상의 사람들을 향해 선포하고 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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