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법부

by 서운인혜

미국의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 사법부의 역할을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더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알렉시스 토크빌이 쓴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사를 제도화하는 동시에 그 다수가 법의 경계를 넘어설 위험을 내포한다. 다수결이 절대적 권력으로 변질될 경우 소수의 권리와 절차적 정당성은 쉽게 훼손될 수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킬 수 있다. 이때 법치주의를 지키고 권력의 남용을 막는 최후의 보루는 사법부이다. 사법부는 권력을 제약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가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구조적 기능을 수행한다. 미국 헌법은 이러한 기능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미국의 헌법이 권력 분립과 국가 기구의 구조를 규정하면서도 사법부의 구체적인 작동 절차나 사법권력의 범위를 세세히 나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공백은 제도적 결함이 아니라, 후대의 역사적 경험과 해석이 스며들어 헌법이 시대와 함께 숨 쉬는 문서로 남도록 한 입법자들의 의도된 설계였다. 매디슨이나 해밀턴과 같은 건국의 아버지들은 헌법이 시대 변화에 맞춰 해석 가능해야 한다고 보았고, 이를 통해 권력의 경직성을 피하고 제도의 유연성을 확보하려 했다. 이에 따라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가 실질적 힘을 갖게 되는 과정은 헌법이 남겨둔 이 해석의 여백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달려 있었다.


미국 연방헌법 제3조 제1절은 “미합중국의 사법권은 하나의 연방 대법원과, 의회가 수시로 정하고 설립하는 하급 법원에 귀속된다”라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사법권의 주체를 지시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 특히 법률이 헌법에 위반될 경우 사법부가 이를 심사하고 무효화할 권한에 대해서는 명문으로 부여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매버리 대 매디슨 사건(Marbury v. Madison, 1803)'이 헌정사적 전환점을 만든다. 퇴임을 앞둔 존 애덤스 대통령은 이른바 ‘자정 판사(Midnight Judges)’ 인선을 통해 다수의 연방 판사와 '치안판사(Justice of the Peace)'를 임명하였다. 연방주의자와 반연방주의자 간의 정권다툼이 치열하던 시기에, 애덤스는 자신과 같은 노선에 있는 연방주의 성향의 판사들을 정권 교체 직전에 임명하려 한 것이다. 이 중 치안판사는 공증, 체포·수색영장 발부, 경미한 사건의 재판 등 일상적 공권력 행사를 담당하는 준사법적 공직으로서, 연방 판사보다는 적은 권한을 지니고 있었지만 지역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는 상원의 인준을 거친 후에 형식적인 절차인 국무장관의 임명장 송달로 임명되게 된다. 윌리엄 매버리는 애덤스의 지명과 상원의 인준을 통과하여 실질적으로는 임명되었으나, 시간 부족으로 임명장이 송달되지 못한 상태에서 제퍼슨 행정부가 출범하였고, 반연방주의자였던 신임 국무장관 제임스 매디슨은 임명장 송달을 거부하였다. 이에 매버리는 연방대법원에 직접 청구하여, 매디슨에게 임명장 송달을 명하는 행정집행명령을 내려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의 법적 근거는 1789년 의회가 제정한 '법원조직법(Judiciary Act of 1789)'이었다. 일반적으로 대법원의 관할권은 하급 법원의 판결을 심사하는 것이지만, 행정집행명령의 경우는 직접 연방대법원에서 1차적으로 심리를 할 수 있도록 명시한 것이 법원조직법의 내용이었다.


새로 취임한 연방대법원장 존 마셜은 정치적·제도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었다. 그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한 인물은 전임 대통령 애덤스였고, 애덤스의 인선에 포함된 윌리엄 매버리의 승소 가능성은 임명 절차의 형식적 성격상 높았다. 그러나 매버리의 손을 들어줄 경우, 현직 대통령 제퍼슨을 포함한 반연방주의자들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 분명했다. 존 마셜은 이 사건을 세 가지 질문으로 조직했다. 첫째, "매버리는 법적으로 임명된 것인가?" 마셜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인준을 완료한 순간 임명의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고 보고, 매버리가 임명장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둘째, "그 권리 침해에 대해 사법적 구제가 가능한가?" 마셜은 정치적 재량의 영역과 법률상 기속 된 직무를 구분하며, 후자의 경우 법원이 구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중요한 것은 세번째 질문이었다. "매버리에 대한 법적 구제 권한이 대법원에 있는가?" 마셜은 법원조직법의 해당 조항이 대법원의 1심 관할권을 헌법 제3조가 허용한 범위를 넘어 확장했다고 보고, 그 부분을 위헌이라고 선언하였다. 그의 핵심 논지는 다음과 같다. “법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은 사법부의 고유한 책무이며, 헌법과 충돌하는 법률은 법으로서 효력을 가질 수 없다.” 이어서 그는 헌법 제6조의 최고 규범성에 비추어, “헌법에 배치되는 법률은 무효”라는 원칙을 정립하였다. 결과적으로 매버리는 실질적 구제를 받지 못했지만, 대법원은 스스로 위헌법률심사라는 권한을 체계화하여,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이라도 헌법의 경계를 넘으면 사법부가 이를 무효화할 수 있음을 선례로 확립하였다. 마셜 대법관은 행정부에 대한 관할권의 자제라는 형식 속에서,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을 심판할 수 있는 사법부의 제도적 권위를 확립한 것이다.


한편 '미합중국 대 닉슨 사건(United States v. Nixon, 1974)'은 행정부의 권력에 사법적 경계선을 그은 사례였다.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 과정에서 특별검사는 백악관의 녹음테이프 제출을 요구하는 문서제출명령을 법원에서 받아냈다. 닉슨 대통령은 ‘대통령의 특권’을 주장하며 제출을 거부했다. 대통령의 특권이란 국가 안보나 외교, 고위 정책결정 과정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인정되는 제도적 권한으로, 닉슨은 법원의 명령이 대통령의 비밀 유지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비밀 유지의 필요성은 형사재판에서의 진실 발견과 공정한 재판이라는 헌법적 가치 앞에 절대적으로 우선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판결문은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권력 분립의 원리나 대통령 직무의 비밀 유지라는 일반적 필요만으로는, 절대적이고 무제한적인 대통령 특권을 정당화할 수 없다.” 또한 대법원은 “형사 절차에서 구체적이고 입증된 증거 필요성이 존재하는 경우, 일반적 차원의 특권 주장은 그 필요성에 양보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대법원은 대통령의 특권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범위를 ‘한정된 특권’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사법 심사와 비례 판단의 틀 속에 편입시켰다. 닉슨은 결국 판결에 따라 테이프를 제출했고, 그 내용은 그의 정치적 몰락을 가속하여 그는 결국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법률의 지배와 사법부의 명령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을 제도적으로 각인한 판례였다.


이 두 사건은 사법부가 서로 다른 두 권력을 상대한 것이지만, 공통적으로 법원의 언어로써 권력의 경계를 규정했다는 점에서 같은 헌정적 의미를 지닌다. '매버리 대 매디 사건'은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을 사법부의 판단에 놓이게 하였으며, '미합중국 대 닉슨 사건'은 행정부의 모호한 특권을 법적으로 판단 가능한 범주로 환원하였다. 이로써 사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라는 양대 권력과의 팽팽한 긴장 관계 속에서 권력의 분립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권력 분립이 안정적으로 정립된 배경에는, 법원뿐 아니라 다른 국가 권력 주체들의 제도적 관용이 작동하고 있었다. 매버리 사건에서 대법원은 위헌법률심사라는 결정적 권한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버리 개인에 대한 구제 명령은 자제함으로써 정치적 충돌을 최소화했다. 닉슨 사건에서도 사법부는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했지만, 이후 의회와 정치권은 탄핵과 강제 수사로 대통령을 몰아붙이기보다 사임과 사면이라는 절차적 출구를 선택했다.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음에도 스스로를 절제하는 이러한 관용은, 헌법 규범이 실효성을 가지면서도 제도 간 균형을 유지하게 만든 숨은 토대였다. 결국 미국식 삼권분립이 실질적인 제도로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헌법의 간결한 문장이 법원의 판결을 통해 현실 정치에 구속력을 지니는 규범으로 구체화되는 과정과, 그 규범이 권력 주체들의 상호 절제와 관용이라는 정치문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해 온 역사적 경험이 맞물린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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